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욕심 줄여야 멀리 보여...이왕이면 착한 척, 겸손한 척, 멋진 척" 백종원

by조선일보

"욕심없는 척, 겸손한 척… 척척 했더니 그렇게 됐다

"위만 보면 만족 못해… 동의해준 소유진에게 감사"

"아이들에게 물려줄 생각 접으니, 돈에 미련 사라져"

"제주 ‘연돈' 부부는 보석… 관광한국 위한 큰그림"

"초보 사장들, 음식값 내려야 기회 생겨"

사업실패로 홍콩서 극단적 선택하려다 "먹고 죽자"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백종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팔리는 브랜드를 넘어서 신뢰받는 브랜드가 됐다. 주말 오후가 되면 나는 리모콘을 들고 그가 출연한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을 몰아 보며 일주일의 피로를 씻는다. 때론 입맛을 다시고 때론 혀를 차고, 때론 눈물을 흘리거나 감동에 젖어.


‘골목식당’은 무너져가는 전국의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한 맞춤 솔루션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은 외면받는 지역 특산물로 가정 레시피를 만들어주는 농촌 상생 프로젝트다. 백종원은 눈치 빠른 김성주와 성실한 정인선(‘골목식당'), 재기 넘치는 김희철, 김동준, 양세형(‘맛남의 광장') 등의 조력자들과 함께 이 리얼한 ‘음식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손님이 끊겨 막막하던 식당과 판로가 막혀 한숨 쉬던 지방의 농민들은 백종원을 만나 경이로운 반전을 이뤄낸다. 우연과 진정성이 스파크를 일으키는 이 ‘공익쇼’는 백종원 특유의 돌직구 화법, 불같은 추진력과 만나 방송 내내 보는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백종원은 게으름이나 자기중심성이 얼마나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후루룩거리며 단번에 흡입하는 ‘면치기’나 뼈 안쪽까지 살뜰하게 살점을 훑어 먹는 그의 육식 행위를 보면, 혀 밑에 침이 흥건해지는데, 정작 입가를 훔치며 그가 내놓는 언어는 가차 없었다.


"이 시래기는 쓰레기 맛이에요!" "이건 내가 먹어본 최악의 떡볶이에요."


백종원의 꼼꼼한 맞춤 레슨을 지켜보며, 나는 나 자신의 일하는 태도를 수시로 점검하곤 했다. 나의 글이 독자들의 입맛을 제대로 캐치하고 있는지, 단일 메뉴로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 혹 좋은 댓글에 취해 개선의 여지를 차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의 비법은 단순하고 정확했다. 역지사지. 손님의 입장에 서는 것. 그가 젊은 시절 운영했던 쌈밥집 주방에 백종원은 ‘쌈을 아끼면 쌈밥집은 망한다'는 표어를 붙였다. 자신 있는 단일 메뉴로 승부했고, 알아보기 쉽게 메뉴판을 제작했고, 손님이 오면 밝게 인사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각각의 사연으로 바닥을 친 자영업자들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한때 ‘슈가보이' ‘백주부'였던 호칭이 점점 ‘백선생님' ‘백대표님'으로 바뀌어갔다. 권위는 전문성과 헌신에서 나온다.


정직하고 욕심 없는 포방터 돈가스집의 제주도 이전은 ‘백종원표 기적'의 클라이맥스였다. 왜 그가 움직이면 지방 골목에도,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심지어 한산하던 마트에까지(못난이 감자를 사러) 사람이 구름떼같이 몰리는 걸까.


‘먹어야 사는 남자' 백종원을 만났다. 상생의 에너지가 쌓여 몇 미터 앞에서도 아우라가 느껴졌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쇼의 메인 호스트이자, 사업가, 음식탐구가, 컨설턴트인 그는, 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왔다고 했다. "방송은 인연의 판타지"며 "욕심을 버려야 살기 편해진다"고 했다.


-5년 전 ‘마이 리틀 텔레비전'으로 처음 TV에 나올 때부터 넉살이 좋았어요. 방송이 체질이지요?


"제가 부탁해서 출연한 게 아니잖아요(웃음).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고, 떳떳하니까 기죽을 이유가 없죠."


-골목에 사람이 몰리고, 버려지던 농산물에 길이 열리고, 토종 레시피로 식탁이 산뜻해졌어요. 방송대상이 아니라 노벨평화상 감이라는 농담도 들려요(웃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는 저한테 도움 되는 일을 해요. 저도 바보가 아닌데요… 하하. 다만 좀 멀리 봐요. 어떤 일들은 내가 은퇴하고 나서 좋아질 일들이죠. 먼 후일을 바라보니까 눈앞에 욕심은 안내요. 백종원이 처음부터 호랑이를 그린다? 아녜요. 그리다 보면 이거 잘하면 호랑이도 되겠네, 감이 오는 정도죠."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큰 그림은 뭔가요?


"예전엔 외식문화를 정착시키겠다, 였는데 요즘엔 조금 커졌어요. 우리나라 성장동력은 관광업이에요. 사람이 몰리는 관광지를 보면 반드시 볼거리와 함께 먹거리가 있어요. 그런데 홍콩, 도쿄, 상하이… 유독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은 또 확연히 다른 점이 보여요.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참 반듯해요. 저는 그 출발이 외식문화에서 비롯된다고 봐요.


식당 하는 사람들도 손님 중심으로 태도를 개선해야지만, 오는 손님도 바뀌어야 해요. ‘내가 식당 주인이라면, 내 부모나 친구가 식당을 한다면…’ 이런 가정만으로 아량이 생겨요. 그렇게 외식 환경이 성장하면 국민들도 바깥손님인 외국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요. 환대의 매너가 잡히는 거죠."


관광 한국을 하나의 식당으로 비유하면 가게 주인은 주방을 책임지고 국민은 홀서빙을 담당하는 격이라고. "그런데 손님 역할을 많이 해본 사람이 매너도 좋아요(웃음)." ‘골목식당'이니 ‘맛남의 광장'이니 방송으로 자영업자와 농민을 돕는 건, 결국 외식업과 관광업의 파이를 키워 ‘나 살자'고 하는 일이라며, 그가 사람 좋게 웃었다.


-멀리 보는 이유가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그럼요. 제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니까 어떤 분들은 빈정대며 그러세요. 방송 나오지 말고 "너 나 잘하세요!" 그런데 가맹점이 1천 개가 넘어가면 개별 점주들을 일일이 가르치기 힘들어요. 방송에서 포괄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효과가 좋죠(웃음). ‘가격 낮추라'는 말도 그래요. 당장 제가 하는 저가 시장에선 경쟁자를 키우는 거지만, 강한 경쟁자가 들어오면 점주들도 강해져요. 왜 어항에 포식성 강한 어종 넣으면 다른 물고기도 움직여서 전체 체력이 좋아지잖아요."


-최근 포방터시장에서 제주도로 이사한 돈가스집은 여러모로 화제가 됐습니다.


"방송을 오래 했지만, ‘연돈' 돈가스집 부부는 정말 특별했어요. 대개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식당을 해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부부는 보석 같은 분들이었어요. 때 묻지 않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7천 원 짜리 돈가스 100개를 팔아, 외부 대기실까지 운영한다는 건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백대표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는 부부의 말을 듣고, 그는 휘파람 불듯 단숨에 말했다. "제주도로 갑시다!" 주변 민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넓고 쾌적한 공간이 그들 부부에게 무상으로 제공됐다. 그동안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과 달리, 전 재산 3천만 원에, 트렁크 하나가 짐의 전부인 가족이었다.


-전국적으로 ‘돈가스 붐’을 일으킨 키다리 아저씨가 됐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방송도 인연이죠. 그런 인연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제가 무협지를 좋아하거든요. 왜 절박한 상황에서 다치고 절벽에 굴러떨어졌는데, 그 옆에 무림 고수를 만나서 천하제일의 무인이 되고 부모의 원수도 갚잖아요. 말도 안 되는 인연으로 대반전이 일어나는데, 얼마나 가슴이 뛰어요. 저한텐 그런 판타지가 있어요(웃음).


사실 저도 그동안 ‘골목식당' 하면서 스트레스가 좀 많았겠어요. 처음엔 ‘돈 욕심 없어요' 해서 가르쳐주면 나중에 딴짓해서 음식 수준을 떨어뜨려요. 한숨이 나죠. 그 와중에 ‘연돈' 부부에게서 한 줄기 빛을 봤어요. 이렇게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들이면, 복권 당첨될 자격이 있다. 욕심 안 부리고 멀리 가겠다..."


-돈가스집 사장님이 "내가 뭐라고 이런 대접을 받나…" 울먹이는 모습을 보며 ‘선한 영향력이 저기서 다시 시작되겠구나’ 했어요. 한편 ‘맛남의 광장'에서는 버려지는 ‘못난이 감자’에 정용진 부회장이라는 키다리 아저씨를 즉석에서 매칭해주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하이퍼커넥트 사회가 되면서 ‘우연성과 진정성’이 이 시대의 큰 화두인데, 그 두 가지가 백종원의 레시피로 뚝딱 조리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성격이 급해요(웃음). 못난이 감자가 상품성이 없어서 버린다는 말을 들으니 맘이 안 좋았어요. 순간 그분이 떠올랐어요. 바이어는 결정을 못 해요. 최상의 품목을 원하니까요. 그런 결정은 오너가 해야죠. 어쩌면 ‘윈윈'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소비자는 싸게 살 수 있고, 마트는 사람을 모을 수 있잖아요."


궁금한 건 바로 전화하는 급한 성격,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태생적 ‘오지랖’ 덕분에 많은 문제가 술술 풀렸다. 제주도 감귤 와인 농장을 돕기 위해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인터뷰 중에도 전화로 몇몇 연예인들에게 홍보와 참여를 권했다. 깃발 든 자가 사심이 없으니 너도나도 같이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항간에서는 골목식당은 흥하는데, 정작 골목마다 있던 새마을 식당은 안 보인다는 우려의 소리도 들립니다.


"하하. 우리 CFO한테 물어봤더니 사업은 순항 중이랍니다. 불경기에도 매출이 2,100억 정도였어요. 제주에 오픈한 호텔도 입실률이 99% 예요. 어떤 분은 ‘연돈' 돈가스로 ‘백종원 호텔 홍보하는 거 아니냐?’ 하시는데, 아니에요. 호텔은 그전에도 이미 객실이 3개월 예약 대기예요.


말씀하신 새마을식당도 괜찮습니다. 더 늦게 나온 유사 브랜드가 많이 없어진 것에 비해, 새마을식당은 적정 개수를 유지하고 있어요. 브랜드도 유행이라는 게 있어요. 한동안 인기 있다가 성장 동력이 떨어지기도 하죠.


개수로는 현재 ‘빽다방’이 가장 많지만, 요즘엔 ‘인생설렁탕’, ‘롤링파스타’, 중식 포차인 ‘리춘시장'도 잘 돼요. 저는 브랜드 만드는 일을 좋아해요. 프랜차이즈 회사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건 시장에 순기능이에요. 자체 공장을 세워 이익을 취하는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 브랜드를 론칭해서 협력사 역할을 하는 거니까요."


-3년 6개월 전 인터뷰할 때는 프랜차이즈로 ‘골목 상권을 해친다’는 공격을 받고 풀이 죽어있었는데, 지금은 ‘골목을 살리고 농촌을 살린다’고 박수를 받아요. 회심의 반전인가요? 자연스러운 흐름인가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뿐이에요. ‘맛남의 광장'도 기획을 제가 했어요. 평소에 덜 알려진 지역특산물이나 과잉생산돼서 버려지는 농산물을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여수 갓이, 공주 밤이, 제주 당근이 얼마나 좋은 데 소비가 안되나. 이걸 집에서 해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를 알려주면 되거든요. 그 과정에 휴게소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현재 전국의 휴게소 음식이 다 비슷하니, 지역 특산물로 1일 식당을 차리면 서로 흥하겠다 싶었죠."


-음식을 중심으로 ‘상생'을 파고드니 해법이 쏟아지는군요.


"제가 황보경 작가와 ‘백종원의 3대 천황'부터 함께 했어요. 같이 지방을 돌면 버스 안에서 뭐하겠어요. 주야장천 아이템 얘기만 했죠. 그 버스 안에서 ‘푸드트럭' ‘골목식당' ‘맛남의 광장'까지 다 나왔어요. 기획을 제가 했으니 대본도 필요 없어요. 다 즉흥이죠. "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실감이 나요. 업주들의 문제점을 지적할 땐, 거울을 보듯 제가 다 뜨끔합니다(웃음).


"자연스레 빙의가 돼요. 내 동생 대하듯, 자식 대하듯, 우리 점주 대하듯이요."


-그렇게 요리의 멘토에서 사업의 멘토, 삶의 멘토로 가면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더군요. ‘욕심을 줄여라.’


"살아보니 욕심 안 부리고 사는 게 제일 편해요. 그 맛을 논현동에서 쌈밥집 하며 처음 알았어요. 처음엔 욕심을 내서 쌈과 고기 포함 9천 원에 팔았어요. 비싸게 파니 손님 비위, 직원 비위 맞추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안 되겠다, 손님이 내 눈치 보게 해야지, 값을 확 내렸어요. 그랬더니 "이렇게 팔아도 남느냐"며 너무들 좋아하세요. "이문 덜 남기고 맛있게 드시면 좋쥬." 나 편하자고 한 일인데, 손님들 앞에서 욕심 없는 척을 한 거예요. 신기한 게 그 ‘척'이 내 몸에 잘 맞았어요."


-원래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욕심 없는 척을 했다?


"원래부터 착한 놈이 어딨어요(웃음)? 제가 사실 입도 거칠어요. 그런데 방송하려니 도리가 없어요. 겸손한 척, 착한 척, 순화해야지. 방송에서 하던 대로 밖에서도 말하니, 처음엔 직원들이 "어디 아픈가?"했대요(웃음). 참 이상한 게, 사람들이 저의 ‘척'을 진심으로 받아주니까, 자꾸 ‘이런 척' ‘저런 척' 더 하고 싶어져요. 그렇게 출연료, 광고료 여기저기 기부도 하면서 마음 부자가 돼가요. 저 원래 그런 놈이 아닌데, 점점 ‘척'대로 되어가요(웃음)."


욕심 없는 척을 했더니, 정말 욕심이 없어지더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가장 무서운 자는 사심이 없는 자라고 했던가. 욕심 없는 백종원이 작은 카메라를 들고 경쾌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장들은 혼비백산해서 그를 맞는다. 친밀하지만 무서운 포스에 허둥대며 그 앞에 음식을 차려놓는다.


10평도 안 되는 작은 가게는 한 가족의 희로애락과 히스토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왜 부부는 온종일 서로를 외면하는지, 왜 엄마는 딸을 믿지 못하는지, 왜 아들은 TV만 보고 나태함으로 일관하는지, 왜 청년은 피로에 쩔어 피자를 구우며, 왜 할머니는 오랫동안 상한 양념장으로 떡볶이를 만들어왔는지… 쪽박을 차기 직전에 나타난 백종원은 이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주는 해설가이자 마스터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그가 주방을 헤집으며 더러운 냉장고와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지적하고, 해묵은 재료와 짜임새 없는 양념을 바로잡아갈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카오스의 세계가 점점 질서의 세계로 진입하면, 어느새 식당 문 앞엔 이를 축하할 자발적인 관객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놀라운 쇼이고, 리얼한 삶이다.


-좁은 주방에서 함께 일하다 갈등이 생긴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했던 사장들이 개과천선하기도 해요. 짧은 시간에 ‘척척’ 변화하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비결이 있나요?


"카메라가 있잖아요. 제가 설득도 하지만 이후에 또 관리가 들어가니까요. 그분들은 관계도 장사도 벼락치기 공부한 셈이에요. 작가들이 방송 끝나고도 계속 체크를 해요. ‘겨울특집' ‘여름특집'으로 불시에 긴급 점검을 하니, 이게 웬 난리래요(웃음)? 일종의 경고죠."


-‘거제도 긴급점검 편'을 보면, 장사가 잘되니 1년도 안 돼 초심을 잃더군요. 재료는 줄이고 가격은 올리고… 당장의 회전율, 마진율을 높이고 싶은 유혹을 이기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어려워요. 90%가 유혹에 져요. 도와주고 믿었는데 약속을 쉽게 저버리면 화가 나죠. 그래서 ‘연돈' 부부가 대단한 거예요. 오직 감사한 마음으로 그 유혹을 이겨냈으니."


-‘음식값을 싸게 받으라’고 가르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지요?


"80% 이상의 골목식당이 경험 부족이에요. 연륜이 다 다른데 1년 한 국숫집이 10년 한 국숫집과 똑같이 7천 원을 받아요. 이상한 거죠. 좀 부족해도 가격 메리트가 있으면 손님이 오고 경험이 쌓여요. 3년 걸려 쌓을 기술을 반년 만에 쌓을 수 있어요. 수련하고 버티려면 메뉴를 줄여야 해요. 기회를 얻기 위한 솔루션 중 하나죠.


둔촌동 초밥집은 좀 달라요. 실력 있는 집이라 그 정도 초밥 도시락이면 9천 원보다는 비싸야 했어요.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가면 더 받을 수 있지만, 그 장소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가격을 낮추는 게 답이었죠."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젊은 시절 당신 사진을 깜짝 보고 놀랐어요.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더군요. 당시엔 욕심도 야망도 상당했던 모양입니다.


"그랬어요. 뜬구름 잡던 시절이었죠. 음식점 하다 목조주택 사업을 벌였어요. 정주영 회장이나 김우중 회장처럼 집 지어서 쭉쭉 뻗어 나가고 싶었어요. 욕심내다 쫄딱 망했어요."


-당시 17억 빚을 진 후 홍콩에 극단적 선택을 하러 갔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침사추이, 스타페리에서 뛰어내려 죽으려고 했죠. 그런데 제가 수영을 잘해요. 물속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면 얼마나 창피해요. 그래서 빌딩에서 뛰어내리려고 홍콩섬엘 갔어요. 그런데 빌딩 사이사이에 음식점이 무지 많은 거예요. 죽겠다는 놈이 왜 먹고는 싶은 건지… 일단 ‘허기나 채우고 죽자’고 했는데, 배부르니 죽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요(웃음). 안 먹어본 게 너무 많으니, 못 죽겠더라고."


오히려 거기서 외식사업의 흐름을 보고 왔다고 했다.


"빚 갚고 다시 일어나야 하니 음식점 하면서 광대 가면을 썼죠. "어서 옵쇼! 아드님, 잘 생기셨네!" 간 쓸개 다 빼주고 굽신거리고 있자니, ‘이 일을 어떻게 평생 해?’ 싶었어요. 오래 하려고 판을 바꿨어요. 목욕탕에서 만나도 ‘안녕하세요' 편하게 인사할 정도만 친절하자, 그 에너지를 음식에 넣고 돈 덜 받자, 그제야 숨통이 트였어요."


-대학 때 쓰러져가는 호프집을 인수한 일화는 물론이고 일찍부터 시장의 이치에 밝았던 거로 압니다. 장사 수완도 타고 나나요?


"돈이 모이는 과정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공병을 수집해서 팔았죠. 낚시를 해도 남들은 세월을 낚는다지만, 저는 물고기 잡는 어부처럼 낚았어요. 좋은 미끼에 투자하고 그물도 치고 밤을 새워서 잡죠. 뭔가 투자해서 결과를 보는 게 적성에 잘 맞아요."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당시의 전공이 지금의 사회 공헌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짐작했습니다만.


"(손사래를 치며)아녜요. 집안에서 사학재단을 운영하니까 떠밀려 간 거죠. 대학 시절 제 별명이 ‘슈퍼 부르주아’였어요. 일찍부터 장사해서 주머니가 두둑했죠. 과에서 MT 가면, 제 돈으로 장 봐서 술상 차리고 아침이면 친구들 밥 해 먹였어요. 그때 교수님께 건방지게 따진 적이 있어요. "진정한 사회복지는 돈 달라고 해서 돕는 게 아니라, 돈 벌어서 돕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 말이 지금 씨가 됐네요(웃음)."


-‘염치를 지킨다' ‘나눈다'는 정신은 혹시 집안의 가풍인가요?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시골 장에 가도, 오가는 어르신들 꼭 대접하고 밥 먹이셨어요.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대장부셨어요(웃음)."


-아내 소유진 씨와도 생각이 잘 맞는지요?


"아내가 통이 커요. 남자 같아서, 제가 큰 결정을 하기가 수월해요. 고맙죠. 15살이나 차이 나는데, 저를 받아줬어요. 먹는 거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배려도 잘해요. 저는 40대 중반에 결혼해서 늦게 세 아이를 낳으면서 욕심이 현저하게 없어졌어요."


-무슨 말인가요?


"큰아이가 7살이에요. 너무 어리죠. 나 죽기 전에 사업 물려줄 일은 없겠구나 싶으니, 돈에 미련이 없고 공정해져요. 제일 좋은 건 회사가 오래 유지되는 거죠. 그런데 내가 젊을 때를 생각해봐도, 부모에게 돈 더 받은 아이들은 사고 치기 좋지, 더 나을 것도 없더라고. 욕심부릴 이유가 없으니, 착한 척하기가 더 쉬워졌어요(웃음)."


그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위만 보고 살면 욕심이 끝이 없잖아요. 아내가 그 말을 잘 받아줬어요." 현재 더본코리아는 국내외 20여 개 브랜드, 1,400여 개의 직영 및 가맹점을 운영하는 중소기업이다. 샐러리맨보다는 더 벌지만, 사람들 생각만큼 부자는 아니라며, 그가 웃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작년 말에 시작한 유튜브도 화제가 되고 있어요. 1시간에 10만, 이틀 만에 100만 구독자로 죽죽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경이롭습니다.


"제가 욕먹는 걸 싫어해요(웃음). 제 것이 아닌 레시피가 돌아다니니 더는 두고 못 보겠더라고요. 그런데 유튜브를 공부하다 보니 이 세계가 무궁무진해요. 앞으로 한국 음식 소개하는 외국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을 키워보려고요.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면 외식업도 타격이거든요. 외국인들이 들어와야, 전체적으로 사 먹는 끼니 수가 늘어나죠. 홍콩, 도쿄처럼 3~4천 원에 커피까지 먹을 수 있는 아침 시장까지 열리면, 전체 외식업의 파이가 커질 거예요."


사람 모으는 데 천부적인 그이기에, ‘외국인 관광객을 한국에 모아 먹이겠다'는 백종원의 계획은 매우 현실적으로 들렸다.


-‘먹어보겠다’고 식당 앞에서 장사진을 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죠?


"고맙죠. 꼭 밥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체험이고 응원이에요. 즐기면서 응원하는 거죠. 그분들은 골목식당에서 욕먹은 집도 가서 응원해요. 그런 열정이, 운동에너지가 골목의 힘이죠. 그런 화제성이 없으면 어떻게 기적이 일어나겠어요?"


-‘맛남의 광장'에도 각지에서 사람이 밀려들지요?


"1일 식당 휴게소가 공지되면 시민들이 전날 밤 10시부터 줄을 서요. 메뉴 짤 때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성원이 큰 힘이 되죠. ‘가성비 안 나오는' 고된 촬영이지만 ‘참 잘했구나' 싶어요."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갓김치로 끓인 찌개나 매콤하게 끓인 광어 밥 등 지역 특산물로 만든 레시피의 상상력이 끝이 없더군요.


"전 늘 머릿속으로 먹을 생각만 해요. 하하하. 병적이죠. 식구들한테도 아침 먹고 나면 점심 뭐 해줄까, 제작진 만나도 회식은 어디서 할까,부터 얘기해요."


-그렇게 먹으면 자기 관리도 중요할 텐데요.


"워낙 많이 움직여요. 간간이 동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죠. 호텔 헬스장은 안 가요. 누가 와서 인사하나, 어떤 차가 와서 실어 가나... 쓸데없는 경쟁에 힘 빼기 싫거든요(웃음). 시간 관리도 그래요. 저는 시간 아까워서 골프도 안 쳐요. 주 업무가 회사 관리가 아니라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라, 예전에도 방송에 쓰는 시간만큼 해외 시장 돌아다니며 공부했어요."


-방송에서 만난 자영업자 중에서 특히 더 애틋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연돈 부부와 홍탁집 아들이죠. 포방터 시장에 애정이 많았어요. 홍탁이는 1년간 하루 루틴을 문자로 보고받았으니, 정이 들었죠. 그래도 성실성은 언제 변할지 모르니, 계속 두고 볼 겁니다. 가장 안타까운 곳은 이대 백반집이에요. 정성을 많이 들였는데 개선이 안 되면 맘이 안 좋습니다."


-솔루션을 잘 흡수해서 개과천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조언을 쑥쑥 잘 받아서 더 해주고 싶은 분들이 있어요. 선선한 평택 떡볶이 할머니에겐 쌀 튀김까지 전수해 줬어요. 그분 운이죠(웃음). 반면 너무 깐깐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눈치 없는 분은 못 받아요. 매정한 말이지만 장사가 안되는 집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도 방송의 힘은 커요. 불특정 다수가 그 집을 찾아온다는 건 대단한 기회죠. 앞으로 그 기회를 잡을지 못 잡을 지는, 태도와 본질의 문제예요."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방송가에서의 포지셔닝처럼 프랜차이즈 사업가로서의 백종원도 진화하고 있나요?


"브랜드의 생명력은 점점 짧아져요. 저는 계속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죠. 기본적으론 외식사업 시작하는 분들에게 식자재, 경영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잘 준비되면 독립시키는 게 저희 일이에요. 식자재 시장은 대량매입이 아니라 장기계약을 해야 이익이 남는 구조라, 가맹점 숫자보다는 점포를 오래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모든 게 ‘장기전’이죠. 오래 같이하려면 점주들이 딴짓하면 안돼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골목식당' 방송으로 점주들에게 사인을 주는 거죠. 돈 벌어서 골프 치러 다니지 말고, 손님을 위해 가게에 재투자하라고요."


-이젠 백대표가 무슨 말을 해도 대중들이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스스로가 자랑스럽겠습니다.


"고맙죠. 진심이 통했으니 말도 못 하게 기뻐요. 제가 진심이 아니면 제가 하는 행동이 나중에 제 발목을 잡을 거예요. 미디어가 재밌기도 하지만 무서운 게, 모든 말과 행동이 기록에 남거든요."


-누구에게 가장 감사한가요?


"부모님이죠. 제게 입맛을 주신 분들이니까요. 전 자수성가했다는 말을 잘 안 해요. 사업 시작할 때 돈은 1원도 안 받았지만, 경험을 물려주셨어요. 우리 가족이 입맛이 까다로워 매 끼니 외식하러 가면 5곳을 옮겨 다녔어요. 하도 많이 먹으니 중국집에선 식사 후에 요리를 먹었죠."


-언제 가장 행복합니까?


"먹을 때, 그리고 먹는 걸 상상할 때요. (미소지으며)요즘엔 애들이 잘 먹는 거 볼 때가 최고 행복이지요."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떤 가치를 위해 일했습니까?


"저는 정말 저를 위해 일했어요. 다만 좀 멀리 봤을 뿐. 수익을 남기기 위해 플러스알파를 했는데, 그게 칭찬으로 돌아왔죠. 칭찬에 맛 들여 욕심을 줄이니 사는 게 편해졌어요. 내 삶이 좋아지려면 주변 여건도 좋아져야 해요. 슈퍼카 타고 싶으면 길을 뚫어야죠. 비행기 띄우려면 활주로를 내야 해요. 비포장도로에서 나 혼자 달리면 무슨 맛이에요? 굳이 따지자면 그 세상 이치가 제 가치 기준이 됐어요."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권장하나요?


"척이요. 착한 척, 겸손한 척, 멋있는 척. 처음엔 허언이고 허세라도 일단 내뱉고 나면 보는 눈들이 무서워 행동이 따라가요. 어찌나 효과가 좋은지 제 인생 모토가 ‘척 척 척'이 됐어요. 하하하."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제주를 돈가스의 성지로 만들어 관광객을 모으겠다'는 선언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백종원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고 싶다. 삶에도 장사에도 진정성의 힘은 얼마나 위대한가.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