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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3500원짜리 우동…
그런데 면발이 살아 꿈틀거린다

by조선일보

[정동현의 허름해서 오히려] 서울 신길동 '즉석우동짜장'

 

멀리서 하얀 불빛이 아른거렸다. 보라매역 근처, 서울 신길동 이면도로 한편이었다. 키 큰 가로수에 막혀 가게 간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름이랄 것도 없었다. '즉석 우동 짜장'이라고 크게 쓴 글씨가 전부였다. 월요일로 넘어가는 일요일 밤이었다. 다음 날부터 다시 시작될 생계의 악다구니가 떠올라 마음이 번잡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차를 몰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좁은 탁자 몇몇과 주방에 바로 맞닿은 기다란 '다찌' 좌석 앞에 사람들은 어깨를 비비며 앉아 있었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유리창이 크게 달린 환한 카페에 기대 서 있는 몇몇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돋보인 그림이었다.

 

식당 안에는 한 중년 남자, 졸린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온 피곤한 얼굴의 부부, 심야의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이 앉아 있었다. 이 집 메뉴는 간판에 적힌 대로다. 면이 싫은 사람을 위해 짜장밥도 판다. 값은 모두 3500원. 짜장 곱빼기는 500원을 더 받는다. 음식을 기다리며 가게 끝에 매달린 텔레비전을 봤다. 화면 위로 구호를 외치는 정치인들이 보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좁은 가게 밖으로는 남자 둘이 음식을 기다리며 담배를 피웠다. 앞이 탁 트인 주방에서 면을 뽑고 국물을 담는 여자는 이곳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다. 야구 모자를 쓴 그녀는 주문이 들어가자 그제서야 반죽을 뜯어내 제면기에 집어넣었다. 한 번에 뽑는 양도 3인분을 넘기지 않았다. 면을 뽑고 나면 바로 뜨거운 물에 삶고 다시 찬물에 씻어냈다. 면의 탄력을 높이고 전분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동작이 크고 호쾌했다. 면을 씻는 소리가 마치 개울가에서 물장구 치는 듯했다. 1인분씩 면을 나눠 그릇에 올리고 큰 솥에 담긴 국물을 퍼 담았다. 혼자서 일을 하려면 힘이 들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한 남자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여자는 그를 보자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3500원짜리 우동… 그런데 면발이

정동현

우동과 짜장은 채 5분이 걸리지 않아 나왔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올렸다. 면은 통상 우동에 쓰는 굵은 종류가 아니었다. 하지만 축 처지는 중력이 아닌 면의 물리적 탄성이 젓가락으로 전해졌다. 양껏 면을 집어 입에 욱여넣었다. 턱을 움직여 씹을 때마다 면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그러나 질기지 않았다. 부드러우면서도 쫀득거렸다. 일본의 3대 우동 중 하나라는 이나니와 우동보다 못할 것 없었다. 디포리와 멸치를 섞어 육수를 냈는지 국물에 도는 단맛과 감칠맛의 무게감이 대단했다. 몇 가닥 올린 쑥갓에 뒷맛도 개운했다. 역시 큰 솥에 끓인 짜장은 어릴 적 집에서 끓인 것같이 달달했다. 짜장 속 큰 감자는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옛날식으로 고춧가루를 넉넉히 쳤다. 매운맛과 단맛은 아무 군말 없이 어울렸다.

 

맛에 놀라 가게 역사를 물었다. 여자는 "35년 정도 됐나?"라고 하며 "저희는 조카고요, 주인은 집에 계세요. 낮에는 어르신 자제분이 나와요. 그래야 계속 문을 열죠. 아, 저 사람은 남편이에요"라고 말을 이었다. 여자는 '남편'이란 말에 무엇이 부끄러운 듯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가게를 나오자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가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이곳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딱 2시간 쉬고 하루 종일 문을 연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아마 오늘도 밤새 우동과 짜장을 말아낼 것이다. 그 둘은 밤이 아무리 길고 어두워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정동현 대중식당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