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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따·따·따 드릴이 춤추자 사방에 ‘왈가닥’… 땀방울이 뚝·뚝·뚝

by동아일보

막내가 54세… ‘5070’ 5인의 막노동 현장

따·따·따 드릴이 춤추자 사방에 ‘왈

가정집 리노베이션 현장에서 만난 태양팀 인부들. 왼쪽부터 ‘주 사장’ 주태규, ‘최 집사’ 최우열, ‘막노동판의 등소평’ 유강열, ‘오야지’ 김원중, 기자 출신의 ‘막내’ 성리현 씨.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들은 땀과 노동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건설 역군’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온종일 허리 굽혀 일하느라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는데도 다음 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하러 나오는 이들…. 그들의 고단한 일상, 치열한 삶의 이력, 막걸리 한잔 속 농담까지 그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막노동을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땀의 소중함도 덧붙이고 싶었다. 땀은 정직하게 몸을 쓰는 노력이자 내일을 여는 작은 희망이며 훈훈한 사람 냄새를 담은 결정체라는 걸 말이다.”(‘땀방울이 살아있네’에서·성리현)

‘7 to 5’ 인생을 사는 사람들

따·따·따 드릴이 춤추자 사방에 ‘왈

태양팀 인부들이 안방 바닥에 쌓인 잡석들을 마대에 담고 있다. 크고 무거운 ‘왈가닥’(콘크리트 덩어리)은 손으로 옮겨 놓은 상태다. 왼쪽부터 주태규, 성리현, 김원중(모자만 보임), 유강열, 최우열 씨.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따따따따따따따 따∼ 따따따따따따따 따∼.’

 

굉음이 이어졌다. 잠깐인데도 귀가 멍하다. 불꽃이 튀고 돌가루가 날렸다. 절로 눈이 감긴다. 지난달 24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한 주택의 반지하층. 이른 아침부터 50∼70대 ‘보통 인부’ 5명이 땀을 흘리고 있다. 보통 인부는 일반 잡역에 종사하는 육체노동자를 이르는 말이다. 인테리어 업체 태양이엔지 소속이라 ‘태양팀’으로 불리는 이들은 막노동판을 소재로 한 ‘땀방울이 살아있네’ 책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위해 요청한 14평짜리 반지하층 바닥공사가 이날의 일이다. 150cm도 안 되는 유강열 씨(66)가 자신의 키 절반이 훨씬 넘는 ‘뿌레카’(날이 굵은 드릴)를 든 채 안방 바닥의 콘크리트를 잘게 조각냈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유 씨가 20kg에 육박하는 뿌레카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다룬다. 유 씨가 지나간 자리에는 돌이 부딪치는 소리에서 유래됐다는 ‘왈가닥’(깨진 콘크리트 덩어리를 이르는 막노동판 은어)과 잡석(작은 돌)이 수북이 쌓인다.

 

유 씨가 화장실 바닥을 깨기 위해 이동하자 남은 4명이 부지런히 왈가닥과 잡석 수거에 나섰다. 마대를 가득 채우지는 않는다. 너무 무거우면 옮기기 어려워서다. 덩어리가 큰 왈가닥은 손으로 직접 나른다. 공사 이전에 철거한 각종 폐기물을 포함해 100개가 넘는 마대가 순식간에 쌓였다.

 

태양팀이 현장에 온 시간은 오전 7시 30분. 인부들은 서울 지하철 교대역 인근에 있는 태양이엔지 사무실로 오전 6시 50분 정도까지는 나가서 출동 준비를 한다. 이들의 근무시간은 ‘9 to 6’로 일하는 보통 직장인들과 비교해 출근이 두 시간 정도 이르다. 일찍 작업을 시작해야 야간공사로 폐를 끼치는 일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15분 ‘오야지’(팀장)로 불리는 김원중 태양이엔지 대표(56)가 전화를 받았다. 건설 폐기물 처리업체의 직원이 도착을 알린 것. “자, 얼른 나갑시다.” 김 대표가 대문 앞에 바짝 붙여 주차해 놓은 2.5t 트럭 앞에 섰다. 유 씨는 폐기물 처리업체 기사와 짐칸에 올라탔고, 다른 3명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줄을 섰다. 말이 오갈 필요도 없이 팀워크가 완벽하다. 마대가 하늘을 휙휙 날며 트럭에 실렸다. 김 대표는 마대를 옮기면서도 트럭 옆의 좁은 공간으로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통행을 도와주며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민원이 발생할 수 있어 주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도 오야지의 일이다.

 

돌가루 흙가루가 날리니 더러운 곳 맞다. 무거운 건축 자재와 폐기물을 쉴 새 없이 나르니 힘든 일이다. 자칫 방심하면 다칠 수도 있으니 위험하기도 하다. 일본어 ‘도카타(土方)’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보통 인부’ 노가다는 더럽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대표적인 ‘3D 업종’이다.

전직 사장들부터 작은 거인까지…

‘오야지’ 김 대표는 비닐하우스에서 꽃을 재배했다. 꽤 규모가 컸지만 어느 순간부터 매출이 감소했다. 일찌감치 인테리어 계통에 몸담았던 친형이 “같이 일하자”며 손을 내민 게 이쪽 일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도배와 미장 기술도 갖고 있는 베테랑이다.

 

태양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주태규 씨(75)는 ‘주 사장’으로 통한다. 40, 50대에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했고 10년 전에는 룸살롱도 경영했기에 예우 차원에서 그리 부른다는 게 팀원들의 얘기다.

따·따·따 드릴이 춤추자 사방에 ‘왈

유강열 씨가 자신의 키 절반이 넘는 ‘뿌레카’로 화장실 바닥을 부수고 있다. 체구는 작아도 ‘보통 인부’ 40년 경력의 유 씨는 현장의 모든 일에 능한 A급 일꾼이다.

몸무게가 40kg 남짓한 유강열 씨는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막노동판의 등소평’이라는 별명도 있다. 한 건설회사 직원으로 60대 초반까지 막일을 했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지만 월 40만 원의 수급비를 신청하지 않는다. “수입이 있으면 수급비가 깎이는데 거기에 속박되느니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오야지와 동갑내기인 최우열 씨(56)는 ‘최 집사’다. 고된 일로 피곤할 텐데도 금요예배, 주말예배를 거른 적이 없을 정도로 신앙심이 돈독한 신자다. 교회 유년부장을 맡는 등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20년 넘게 간판업체를 운영했고, 매장이 200평 가까운 대형 고깃집의 사장도 지냈다.

 

태양팀의 막내는 편집기자 출신의 성리현 씨(54)다. 막노동판의 소소한 풍경들이 다양성을 뽐내고 있는 세상에서 귀중한 삶의 가치로 새롭게 조명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산더미 같았던 마대들이 옮겨졌다. 트럭이 돌아가자마자 태양팀은 정리에 나섰다. 도로에 떨어진 폐기물을 깨끗이 치웠고, 배관시설을 드러낸 방들도 빗자루를 동원해 깔끔하게 만들었다. 오전 11시 30분. “점심 먹으러 갑시다.” 오야지가 외쳤다.

“예순에 은퇴?… 움직일 수 있다면 일해야죠”

태양팀은 현장 인근에 있는 전주식당으로 향했다. 오야지는 “어제 점심 때 갔던 식당은 별로라 저녁에 퇴근하며 찜해 놓은 곳이다. 경험상 이런 분위기의 식당이 괜찮더라”고 말했다. 예감은 정확했다. 1인분에 5000원인 생태찌개는 맛좋고 푸짐했다. 여주인의 인심도 후했다. “머리부터 드셔야지” “잘 먹는 손님들은 다 예뻐”라며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태양팀을 챙겼다. 막걸리를 주문하자 “다 떨어졌다. 밖에서 사와 드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야지가 막내에게 돈을 건넸다.

 

막걸리가 도착하고 푸짐한 점심이 차려졌다. “이런 일을 하면서 인터뷰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웃는 태양팀원들의 얘기가 시작됐다.

 

“막노동이 운동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냐고요? 노동과 운동은 분명히 달라요. 힘, 요령, 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래도 나이 일흔이 훌쩍 넘었는데 비타민 하나 먹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요.”(‘주 사장’)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하게 된 사람들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들도 꽤 돼요. 우리 나이로 81세인 한 분은 60세에 공직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일을 합니다. 물려받은 재산에 공직 생활로 모은 돈까지 합하면 수십억 원이라는데 ‘땀 흘리고 돈도 버니 이보다 좋은 게 없다’ ‘인생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채워 가는 것’이라며 자식들 만류도 뿌리친다고 하네요.”(‘오야지’)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직장에서 버텨봐야 60세 아닙니까. 은퇴 이후에도 30∼40년은 버텨야 하는데 10년 정도 아무것도 안 하면 할 수 있는 게 폐지 수거밖에 없어요. 나는 간판 계통 기술을 갖고 있어 ‘정년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전 서울시장이 간판 정비사업을 하면서 입찰에 응하지 못한 업체들은 어려움을 겪었죠. 23년 동안 운영하던 간판업을 접고 서울 대방동에 고깃집을 열었습니다. 월세 1000만 원에 인건비만 2000만 원이 들어가는 큰 규모였죠. 대형병원 앞에 있어 그곳 직원들 회식만으로도 꽤 쏠쏠했는데 2012년 의약 리베이트 사건으로 한번 휘청거렸고,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매출이 90% 가까이 떨어졌어요. 1년 중 매출이 가장 많은 이듬해 5월까지만 영업을 하고 적당한 수준의 권리금을 받고 넘기려 했는데 메르스 사태까지 터졌죠. 결국 기존의 간판업으로 돌아왔고 막노동까지 함께 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참 큰 걸 배우고 있어요. ‘움직일 수만 있다면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죠.”(‘최 집사’)

 

“은행에서 명예퇴직 당한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 열심히 했어요.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일하더니 1년 뒤 본인이 원하던 일을 찾아 떠났습니다. 현장에서는 큰 기술이 없어도 일당 12만 원은 받아요. 성실하면 웬만한 월급쟁이만큼 벌죠. 젊다면 기술까지 익혀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어요. 일에 귀천이 어디 있습니까. 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오야지’)

‘제2의 인생’ 막노동 이야기 책으로 엮은 기자 출신 성리현씨

“땀 흘린 만큼 보람… 당당하게 살아요”
따·따·따 드릴이 춤추자 사방에 ‘왈

“지난해 8월 말 이 일을 시작했어요. 석 달쯤 지났을 때 문득 ‘내가 경험한 이 현장을 글로 남겨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수시로 메모를 하고 동료들의 얘기를 들으며 일이 없는 날을 이용해 원고를 쓰기 시작했죠. 이 일을 꼭 알려야겠다는 책임의식까지 느꼈습니다.”

 

막노동 현장에서 경험한 일들을 생생하게 엮은 책 ‘땀방울이 살아있네’(사진)를 최근 펴낸 성리현 씨(54)는 한때 스포츠서울에서 ‘잘나가던’ 편집기자 출신이다. 1989년 공채로 입사한 그는 인정받는 일꾼이었다. 노조위원장에 편집부장까지 지냈고 이 회사가 창간한 무료 신문에서도 종합편집부장으로 일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촌철살인의 제목 한 줄로 쥐락펴락했던 그의 기자로서의 삶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무료 신문 시장이 무너지면서 함께 내리막길을 걸었다. 무료 신문 폐간 뒤 ‘경영기획실 전략기획팀장’으로 본사에 복귀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아”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이후 여러 일을 해봤지만 20년 넘게 ‘신문 밥’만 먹었던 그가 기자처럼 잘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쉰 살이 훌쩍 넘어 택한 직업이 막노동판 잡부였다.

 

“누가 그러더군요. 막노동 하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책까지 내느냐고…. 저도 처음에는 이 일을 하는 게 창피했습니다. 괜히 주눅도 들었고요. 하지만 노동의 가치와 땀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면서 생각을 바꾸게 됐습니다.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던 아내도 제 책을 본 뒤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책을 본 사람들의 막노동판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사실 저부터 이 직업을 ‘내려다’봤던 것 같아요. 왜 저리 힘들게 살까, 뭐 그런 생각을 했죠. 막상 해보니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걸 느꼈어요.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먼지 속에서 일해도 노동은 당당하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무엇보다 동료들의 반응이 좋아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 한 분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나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내 일기와도 같은 책을 써줘서 고맙다’고 올렸더군요. 이 책을 보고 힘을 내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