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어느 순간 슬픔으로 다가온
열여섯 살의 기억들

by동아일보

佛 앙굴렘 만화축제 한국 첫 수상 ‘나쁜 친구’ 작가 앙꼬 최경진

어느 순간 슬픔으로 다가온 열여섯 살

모든 그림을 펜으로 직접 그리는 작가 앙꼬의 책상엔 잉크와 펜 그리고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그는 “내가 만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다들 펜촉에 잉크를 찍어 그림을 그렸다”며 “종이나 잉크, 펜을 잘 팔지 않아 찾으러 다니느라 애먹는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속옷만 걸친 소녀들은 고스톱을 치고, 소년들은 담배 연기 자욱한 방에서 몸에 문신을 새겼다. 그곳은 정애의 집이었다. 정애의 집은 늘 아이들로 붐볐다.’

 

주인공 진주와 친구 정애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나쁜 친구’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열여섯 살 소녀 진주가 정애를 만나 ‘나쁜 친구’처럼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최경진(필명 앙꼬·34) 씨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지난달 세계 최대 규모의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새로운 발견상’을 받았다. 한국만화 최초의 수상이다. 4일 경기 성남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제가 겪었던 일들은 특별한 사건이었고 삶을 통째로 바꿔놨어요. 진주나 정애는 실존 인물이 아니에요. 저는 진주이기도 하고 정애이기도 하죠.”

 

작가가 ‘나쁜 친구’를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일탈과 비행을 일삼는 아이들과 친구가 된 그는 한동안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겉보기엔 나빴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착한 아이들이었어요, 그 아이들을 손가락질했던 과거의 저보다 훨씬.”

어느 순간 슬픔으로 다가온 열여섯 살

아버지가 딸을 유흥주점 거리에 데려가 훈계하는 장면. 딸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최경진 씨는 “아직도 그 거리에서 살아가는 친구들 생각에 죄책감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제공

자신보다 열다섯 살 많은 엄마를 둔 아이, 아빠가 조직폭력배에게 살해당한 친구, 건달 아빠와 집 나간 엄마를 둔 소녀. 세상은 그런 아이들을 나쁜 친구라 불렀다.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달랐다. “(환경은) 선택이 아닌 주어지는 거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억울할 정도로 깊은 슬픔을 안고 인생을 끌고 가야 합니다.”

 

‘나쁜 친구’와 친구가 된 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것이 작가의 고백이다. 술과 담배, 유흥은 학교에서 ‘튕겨’ 나온 소녀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만화에는 정애와 함께 가출한 진주가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일하는 날이 묘사된다. 아버지뻘의 남성은 소녀의 몸을 더듬고 성폭행을 시도한다. 진주가 울며 뛰쳐나오자 노래방 사장은 6만 원을 쥐여주고 이렇게 말하며 돌려보낸다. “나도 너만 할 때 집에서 나왔어. 앞으로 이런 덴 얼씬거리지도 마라.”

 

방황하는 최 씨를 보며 아파한 건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매를 들었고 어머니는 몸져누웠고 언니는 말수를 잃었다. “아빠가 할 수 있었던 건 그것뿐이었겠죠. 아빠를 이해해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지켜봐 주는 가족이 있었다면 그 친구들도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거예요.”

 

긴 방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끝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던 그는 만화과에 진학했고 스무 살에 그린 만화 ‘엄마’가 공모에 당선되면서 만화가로 살게 된다. 작품 활동을 하던 그는 열여섯 그때로 돌아가길 결심하고 ‘나쁜 친구’(2012년)를 완성했다.

 

“당시 기억은 제겐 재밌는 이야깃거리였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큰 슬픔으로 다가왔어요.” 작업 도중 그는 이따금씩 내상(內傷)과 마주했다. 지금도 후미진 뒷골목을 살아가는 친구의 삶을 기억에서 퍼 올리다 보면 마음이 문드러진다고 고백했다.

 

‘나쁜 친구’는 만화가가 된 진주가 우연히 정애를 마주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은 정애의 얼굴엔 상처만 있을 뿐 표정은 없다. 홀로 정애를 알아본 진주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난 내 과거를 얘기하는 게 즐거웠다. 더 이상 그곳에 속해 있지 않으니 난 즐거웠다고.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 만족했다. 그래서 그날 내가 너를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