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제천 화재 참사]119녹취록으로 본 안타까운 순간

2층 여탕서 “살려줘” 다급한 구조요청… “빨리” 79차례 외쳐

by동아일보

2층 여탕서 “살려줘” 다급한 구조요

“숨 못 쉬어. 빨리 빨리. 우리 죽어. 아저씨, 빨리 살려줘!”

 

21일 오후 3시 59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2층 여탕에서 A 씨가 119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 화재 신고 후 6분이 지난 때였다. A 씨는 “10명이 갇혔다”며 신고했다. ‘빨리’라는 말을 79차례 외쳤다. ‘살려줘’ ‘숨 못 쉰다’고는 각각 11차례, 5차례 말했다. 그만큼 급박했다. 제천소방서 상황실은 통화를 하면서 현장에는 “구조대 빨리 2층으로, 여자 여자 2층”이라고 지령을 보냈다. 하지만 1분 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는 건물 옆 액화석유가스(LPG) 탱크에 물을 뿌릴 뿐 2층에 진입하지 않았다. A 씨를 비롯한 20명은 탈출로를 찾아 헤매다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동아일보는 27일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실을 통해 제천 화재 당시 이뤄진 모든 119 신고 통화 녹취록을 입수했다. 첫 신고 시간인 오후 3시 53분부터 1시간 동안 이뤄진 신고는 모두 32건. 녹취록에 따르면 출동한 소방대는 현장 도착 전 이미 ‘2층 사우나(여탕)에 10명 이상이 고립돼 있다’는 정보를 상황실로부터 무전과 전화로 확인했다.

 

2층 상황을 알린 전화는 첫 신고 후 4시 29분까지 5차례. 대부분 “2층 여탕에 사람들이 많이 갇혀 있다. 빨리 구해 달라”는 구체적 내용이었다. 첫 신고자가 3시 59분 A 씨였다. 그는 “사우나에 불이 났으니 빨리 오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상황실 직원은 “빨리 대피하세요”라는 말을 6차례 반복했다. A 씨가 “2층 여탕에 있다”고 두 번 말했지만 직원은 “여탕은 지하에 있어요? 몇 층에 있어요 지금?”이라고 되물었다.

 

소방은 극도로 불안해하는 A 씨에게 “구조대원들이 올라가고 있어요”라며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 시각 구조대는 현장에 도착조차 하지 않았다. 먼저 온 진압대는 1층 LPG 탱크에만 집중적으로 살수했고 일부 소방대원은 주변을 맴돌았다. 구조대는 오후 4시 6분 도착했지만 곧바로 2층에 진입하지 않고 건물에 매달린 생존자를 보고 밑에 매트리스를 설치했다.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은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3시 59분 여탕 내부에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을 당시 상황실은 신속하게 구조할 것을 무전에 이어 전화로 전달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불길이 심해 2층에 진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문 반대편 비상계단 쪽은 불이 붙지 않아 진입이 가능했다. 현장의 ‘오판’이었다.

 

A 씨 신고 후 “목욕탕에 사람이 갇혀 있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윤모 씨(53)는 오후 4시 8분 “2층에 사람이 갇혀 전화 오고 난리다. 2층에 왜 접근을 못하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상황실은 “현장 도착해 1층 발화 지점에 화재 진압을 시도 중”이라고 답했다. 동문서답에 답답한 윤 씨가 “지금 2층 목욕탕에 사람이 엄청 많다. 지금 숨을 못 쉰다고 한다. 2층이 목욕탕이니까 거기를 집중적으로 좀 해보라고 하세요”라고 재차 말했다. 119는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했지만 내부 진입은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윤 씨 아내는 사망했다.

 

안모 씨 역시 아내의 전화를 받고 4시 19분 “여자 목욕탕에 사람이 갇혀 있다. 알고 있어요?”라고 신고했다. 소방은 “네, 지금 인명 검색 중”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10분 뒤 안 씨가 재차 전화해 “여자 목욕탕에 사람이 갇혀 있다는데 구출된 거예요?”라고 묻자 소방은 “지금 구조하고 있다”면서도 “몇 층에 갇혀 있다고 얘기해요?”라고 되물었다. 숱한 신고자가 여탕이 2층이라고 말해줬지만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 것이다.

 

소방은 오후 4시 36분에야 2층 여탕 통유리에 사다리를 댔다. 통유리를 깨고 여탕으로 진입한 시각은 오후 4시 43분. A 씨가 구조를 요청한 지 44분 뒤였다. 2층에서는 20명이 질식해 숨져 있었다.

 

제천=김동혁 hack@donga.com·김자현·송영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