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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생명운전 차보다 사람이 먼저다

횡단보도 정지선은 생명선인데… 들이미는 韓 vs 멈춰서는 日

by동아일보

횡단보도 무시하는 운전자들

횡단보도 정지선은 생명선인데… 들이미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사거리 횡단보도에 걸쳐 선 차량을 피해 사람들이 걷고 있다(위 사진). 일본 도쿄 시부야 전 방향 횡단보도에서는 모든 차량이 정지선 안쪽에 멈춰 서 있다. 안철민 acm08@donga.com·도쿄=서형석 기자

“사람이 지나가는데 횡단보도를 막아서면 쓰나.”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사거리. 양화대교 북단에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방향 횡단보도에 있던 정장 차림의 남성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수십 명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은 횡단보도에 절반가량 걸쳐 있는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향했다. 지하철 6호선 상수역에서 월드컵경기장 방향으로 무리하게 교차로를 통과하려다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자 횡단보도 위에 멈춘 것이다.

 

이는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날 퇴근시간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가려던 버스가 횡단보도를 침범하며 멈춰 서자 시민들은 ‘ㄷ’자로 돌아가야 했다. 엄연한 보행자 영역인 횡단보도에서 차량들에 밀려나는 모습은 우리 사회 일상이 됐다.

횡단보도 무시하는 운전문화

횡단보도 정지선은 생명선인데… 들이미

횡단보도는 도로를 건너려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도로교통법 27조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차량은 반드시 멈추도록 운전자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신호등 설치 여부와 상관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정지선에 맞춰 멈춰야 한다. 이를 어긴 것이 사진, 영상 등으로 입증된 운전자에게는 최대 20만 원의 과태료가 가해진다. 불법이기 전에 보행자를 지키기 위한 운전자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횡단보도 지키기는 사실상 사문화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이 당한 교통사고는 해마다 6000건 이상 발생한다. 그로 인해 200명 가까이 목숨을 잃는다. 지난해에는 7027건에 186명이 숨졌다. 횡단보도뿐만이 아니다. 주택가 이면도로를 비롯한 각종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지난해에만 969명이나 됐다.

 

현장에서 체감한 운전자의 횡단보도 인식 상황은 더 암울하다. 모든 차량은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을 경우에라도 반드시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며 지나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크게 달랐다.

 

지난달 8일 서울 마포구 양화로. “아이고야.”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년 여성이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흰색 1t 트럭이 여성 앞을 쌩 하고 가로질러 양화로6길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폭 7m인 이 횡단보도는 지하철 2, 6호선 합정역 5번 출구 앞 양화로6길로 접어드는 길목의 일방통행로에 있다. 음식점을 비롯한 여러 점포가 모여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양화로에서 월드컵로 방향으로 가기 위한 역(逆) P턴 길로 쓰여 차량 통행도 많다.

 

이날 오전 10시 15분부터 1시간 동안 이곳을 통과한 차량 224대 중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줄인 것은 34%인 77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그대로 횡단보도를 지나쳤다. 승용차를 매단 견인차도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누가 건너고 있어도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속도를 더 높여 지나가는 차들에 보행자가 양보하는 모습이 1시간 내내 이어졌다.

 

운전자의 ‘횡단보도 무시’ 현상은 교통량이 적은 심야시간일수록 더 심각해진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사거리는 밤이 되면 ‘건너가세요’라는 보행신호 녹색불은 무용지물이다. 강서구 방향 양평로에서 우회전해 왕복 11차로인 선유로(양화대교, 올림픽대로)로 가는 많은 차량은 직전의 이 횡단보도에 보행신호 녹색불이 켜져도 대부분 무시하고 지나간다. 버스와 화물차는 물론 승용차도 마찬가지다.

횡단보도 사고는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피해

올 4월 일본 도쿄 시오도메(汐留). 대기업과 언론사, 특급호텔 등이 밀집한 대형 업무지구다. 이곳에는 편도 3차로와 왕복 2차로가 만나는 ‘T’자형 교차로가 있다. 2차로 도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도로 중간 교통섬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데 3차로 도로에서 좌회전하던 소형 트럭이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운전자는 먼저 건너가라며 오른손을 내저었다. 횡단보도는 무조건 보행자 우선이라는 운전문화에 익숙한 운전자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도쿄 시부야(澁谷)의 전(全) 방향(스크램블) 횡단보도는 하루 이용 인구가 50만 명에 이른다.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뀐 뒤 미처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 보행자가 있어도 차량들은 언제나 이들이 다 건널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도로는 한정됐지만 수년째 차량은 계속 늘어 운전자는 목적지까지 빨리 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더 심하게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운전자는 보행자를 보호 대상이 아니라 빨리 가기 위한 극복 대상으로 여긴다”며 “속도보다 여유와 안전을 우선시하는 교통문화로 바로 지금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김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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