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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네이버 타고 번진 “태풍 또 북상” 가짜뉴스

by동아일보

“8호 태풍 한반도 향해” 인터넷 기사… 최저기압 수치에 사진까지 담아

4일 아침 검색어 1위… 공포 자극

기상청 “아직 생성 안돼” 설명에도 일부 누리꾼 “기상청만 모르는 듯”

네이버 “가짜뉴스 판별권 없어” 발뺌

네이버 타고 번진 “태풍 또 북상”

‘제8호 태풍, 괌 해상에서 한반도 향해 북상 중’ ‘2003년 매미 이을 한반도 초토화 태풍’….

 

제7호 태풍 ‘쁘라삐룬(태국어로 비의 신)’이 동해상에서 소멸한 4일 오전 느닷없이 제8호 태풍 ‘마리아’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한반도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역대급’ 태풍이라는 뉴스가 잇따라 올라오면서다.

 

이 뉴스가 처음 주요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것은 이날 오전 7시경이다. 이때만 해도 괌 해상에서 태풍이 발생해 북상 중이고, 한반도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태풍과 관련한 내용은 점점 구체화됐다.

 

일부 기사에선 ‘최저기압 990hPa(헥토파스칼)’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등장했다. 다른 기사에는 ‘유럽 ECMWF가 분석한 내용’이라며 태풍의 북상 사진을 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태풍의 강도를 우려하는 내용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남겼다는 기사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가짜뉴스’였다.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활용된 유럽 ECMWF는 유럽 기상청이 아니라 중기예보센터다. 이곳은 날씨를 예보하는 기관이 아니라 예보 모델을 개발하는 곳이다. 기자가 직접 ECMWF 홈페이지에 들어가 태풍 마리아를 검색했지만 해당 내용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렸다는 소셜미디어 메시지는 1년 전 중미를 덮친 ‘허리케인 마리아’에 대한 것이었다.

 

이날 오전 내내 ‘태풍 마리아’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기상청은 오후 들어 ‘태풍 마리아는 없다’고 밝혔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강남영 분석관은 “각 나라가 제출한 태풍 이름 순서에 따라 다음 태풍 이름이 ‘마리아’인 것은 맞지만 아직 마리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괌 해상에서 발생한 것은 태풍이 아니라 태풍 전(前) 단계인 열대성 저기압(TD)으로 태풍이 될 수도 있고, 그냥 소멸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수시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을 두고 의미 없는 소동이 벌어진 셈이다. ‘존재하지 않는 태풍’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가짜뉴스를 일부 매체가 경쟁적으로 베껴 쓴 데다 남부지방에 ‘비 폭탄’을 안긴 태풍 ‘쁘라삐룬’ 영향으로 시민들의 두려움이 커지면서 ‘공포의 악순환’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상청의 해명으로 ‘태풍 마리아’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식었지만 일부 누리꾼은 “(기상청이) 쁘라삐룬의 이동 경로를 계속 수정하지 않았느냐”며 “우리 기상청만 (새 태풍의 한반도 북상을) 잘 모르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음모론을 제기했다.

 

포털사이트 측은 제휴를 맺은 온·오프라인 언론사의 기사가 실시간 자동으로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가짜뉴스를 일일이 걸러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뉴스 제휴사만 600여 곳에 이르고 이들이 기사를 올리면 시스템상 자동으로 뉴스 페이지에 올라온다”며 “이를 본 다른 뉴스 제휴사들이 유사한 기사를 띄우면 관련 기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포털사이트가 이를 일일이 판별해 제어하거나 일방적으로 내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존재하지 않았던 태풍은 이날 오후 9시에야 괌 해상에서 태풍이 됐다. 기상청은 오후 11시 제8호 태풍 마리아가 발생했다고 공식 예보했다. 하지만 올해 1∼6호 태풍이 다른 곳에서 소멸했듯 마리아도 한반도에 상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