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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화담숲… 어느새 나의 마음이 빨개졌다

by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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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주인, 뿌리도 줄기도 가지도 아닌 눈이다. 새잎을 낼지, 단풍을 들게 할지 그리고 그걸 떨굴지를 결정해서다. 그 눈은 얼마나 현명한가. 우리보다 앞서 계절의 바뀜을 알아채고 단풍을 준비하니. 화담숲에서 그걸 배운다면 이 가을은 성공이다. 화담숲 제공

‘파브르 곤충기’의 저자는 19세기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 앙리 파브르(1823~1915)다. 10권의 이 저서는 그가 쉰다섯에서 여든네 살 말년에 이르기까지 29년에 걸쳐 펴낸 역작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오로지 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파브르. 그런데 파브르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 ‘식물기’를 곤충기보다 먼저 펴냈다는 것이다.


식물기도 곤충기 못잖다. 손자를 가르치는 할아버지처럼 식물의 생장을 인간의 삶에 비겨 알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그런데 그가 관찰한 건 곤충과 식물이지만 그걸 이끈 건 생명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자연을 살아 있는 이야기로 그려낸 배경이다. 그는 인간의 삶을 통해 식물의 삶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걸 통해 우리의 반성을 이끈다. 그런 인문학적 고찰이야말로 그가 평생토록 이어간 관찰의 궁극. ‘곤충기’로 변역된 저술 제목을 ‘곤충학적 회고록’이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기온이 내려가고 일교차도 커졌다. 우리도 식물도 바삐 옷을 갈아입는 때다. 머잖아 1년생 식물은 죽음을 맞는다. 다년생은 길고 침울한 침잠의 겨울에 들 것이다. 그게 자연이다. 거기엔 단 하나의 원칙, ‘불변’뿐이다. 순명(順命)이 피조물의 미덕인 건 그런 법칙에 따른 당연한 귀결. 곤지암 화담숲(경기 광주시)은 그런 자연의 불변과 순명을 깨닫고 마음에 담기 좋은 곳이다. 게서 불변과 순명을 깨친다면 좋은 일이다. 더불어 파브르의 따뜻한 형제애까지 담아 자연을 바라본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10월 단풍으로 붉게 물드는 화담숲에선 ‘단풍축제’(10월 3일~11월 4일)가 열린다. 그런데 사람이 넘쳐 유유자적할 수 없다면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화담숲의 매력도 사라질 터. 그래서 주말과 공휴일엔 쾌적한 환경(하루 입장객 1만5000명)을 위해 사전예약객만 받는다. 잊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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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색 가득한 화담숲의 테마정원. 위부터 이끼원, 자작나무 숲, 소나무원. 화담숲 제공

화담숲은 스키장과 골프장, 콘도미니엄으로 이뤄진 곤지암리조트 옆에 있다. 스키장과 마주한 발아봉 산등성(해발 500m)이 그 무대다. 이름이 숲이니 ‘수목원’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화담숲엔 원앙이 헤엄치고 수련이 피는 연못이 있고 이끼와 분재만 모아놓은 곳도 있다. 5.3km에 이르는 완만한 산책길 주변은 상당 부분이 정원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곳곳에 덩굴식물 아래 그늘에서 정담 나누기 좋은 벤치와 쉼터도 보인다.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개울, 낙수소리 요란한 자그만 폭포도 있다. 멋진 자태의 소나무와 우아한 풍모의 바위로 수려한 조경을 뽐내는 정원도 있다. 그러니 수목원과 정원이 한데 어울린 수목정원이라 할 만하다.


화담숲은 올해로 개장 5년을 맞았다. 하지만 이 숲 조성에 들인 시간은 그 두 배를 넘긴다. 옮겨 심은 나무와 풀, 꽃이 이곳 미세기후(기온 강수량 고도 청명일수 등)와 토양에 적응해 자연에 포섭되기만을 기다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성한 각기 다른 테마의 식생지가 15개. 그 ‘테마정원’은 소나무 이끼 분재 수국 반딧불이원(苑), 철쭉·진달래길과 자작나무 숲 등으로 불린다. 수형이 수려한 소나무를 모아둔 소나무원은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먹이(우렁이)를 포함해 모든 서식 조건을 완벽히 갖춘 반딧불이원은 화담숲 생태계가 얼마나 완벽한지, 이곳 자연이 얼마나 청정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런데 화담숲을 산책할 수 있는 계절은 봄여름가을 셋뿐. 겨울엔 문을 닫는다. 그러니 이 가을을 화담숲에서 맞을 이유, 너무도 분명하다. 그뿐이 아니다. 단풍철 화담숲이야말로 세 철 중에도 으뜸이다. 단풍 명소야 허다하다. 어느 산이고 가을이면 눈 호강할 만한 단풍 풍경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이 가을 화담숲을 권하는 이유. 단아한 정원의 특별한 단풍 풍정이 산중 단풍과는 전혀 다른 여유와 매력을 담아서다. 화담숲에선 낙엽단풍이 아닌 진짜 단풍나무(학명 ‘아처’가 붙은 단풍나무속 수종)의 새빨간 단풍잎이 가지에 매달린다.


화담숲엔 그런 단풍나무만 400종이 넘는다. 우리나라에 흔한 당단풍을 비롯해 빛깔 곱기로 이름난 내장단풍, 봄마다 수액을 제공하는 고로쇠나무와 열두 갈래 이파리가 머리카락처럼 자잘한 세열단풍…. 단풍나무의 단풍잎은 수종마다 색깔과 모양이 제각각. 그래서 서로 다른 단풍나무가 줄줄이 이어진 화담숲에서 15개 테마 정원을 걷노라면 전혀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 그 잎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자생 단풍나무는 잎 갈래가 5¤7개지만 캐나다 국기의 은단풍은 3개뿐. 단풍나무는 가구재로 쓰이는데 볼링장 바닥과 테니스 라켓, 고급 야구배트도 이걸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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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위로 지나는 모노레일. 화담숲 제공

│화담숲│


‘화담(和談)’이란 ‘두런두런 정답게 나누는 이야기’를 말한다. LG상록재단이 자연생태환경 복원·보호를 기치로 시작한 공익사업(생태수목원) 중 하나.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바라던 LG그룹 창립자의 마음인 셈이다.


화담숲의 면적은 41만 평. 15개 테마정원은 5.3km 숲속산책길로 이어져 있다. 전 구간이 유모차 휠체어 통행의 ‘장애물 부재’(Barrier-free) 시설. 지난해엔 ‘2017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됐다. 모노레일(4000~8000원)도 운행 중인데 임신부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 혹은 유모차 휠체어 방문객에게 유용.


단풍축제: 10월 3일~11월 4일, 오전 7시 40분~오후 5시. 공휴·주말(징검다리 휴일 포함) 입장객은 사전예약 필수. 입장료 1만 원(청소년 경로 8000원)


주말사전예약제: 축제 기간의 주말과 휴일(10월 6, 7, 13, 14, 20, 21, 27, 28일과 11월 3, 4일), 공휴·징검다리 휴일(10월 3, 8, 9일)만 날짜 인원 입장시간을 명시해 사전예매(하루 1만5000장)한다. 해당 일엔 현장 매표, 입장대기 없음.


식당: 원앙연못(한옥주막)과 매표소 옆(힐링빌 식당가). 화담숲엔 음식물 반입 금지(입장 시 확인)


한옥주막 ‘운수휴당’: 해물파전 두부김치 도토리묵과 막걸리


힐링빌 식당가: 푸드트럭(2대·야외)에선 큐브스테이크, ‘힐링빌’ 한식당(실내)에선 가마솥 돼지국밥(9000원)과 충주단원막걸리(6000원).


체험학습장: 민물고기와 곤충생태관이 있다.


찾아가기: 경기 광주시 도척면 곤지암리조트·화담숲. 손수운전: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나들목(10분), 국도 3호선 쌍동분기점(15분). 주차 후 곤지암리조트 순환전기버스로 이동(주말과 공휴일엔 리프트도 운영). 대중교통: 전철(경강선) 곤지암역


광역버스: 곤지암터미널. 택시로 10~15분 소요.


곤지암=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