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남루한 간이침대 가슴 아파” 이국종 “내가 의지해 짐 됐을것…미안”

[이슈]by 동아일보

응급의료 컨트롤타워의 비명


‘응급의료 버팀목’ 故윤한덕 센터장 추모 물결

文대통령 “남루한 간이침대 가슴 아파

침통한 이국종 7일 오후 9시경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미안해요.”


7일 오후 9시경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권역외상센터장)는 윤 센터장의 아들 형찬 군(23)의 손을 맞잡고 고개를 떨궜다. 이어 이 교수는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윤 센터장에게 의지했다”며 “이게 다 윤 센터장에게 짐이 됐을 것”이라며 미안함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2주 전쯤 한 회의에서 윤 센터장을 만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당시 윤 센터장은 안색이 좋지 않은 이 교수에게 “건강을 챙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이 교수는 며칠 뒤 콩팥(신장) 결석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이 의지를 갖고 버텨줬기에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이만큼 온 건데, 앞으로 막막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책 ‘골든아워’에서 고인을 두고 “한국의 응급의료 체계에 대한 생각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머릿속에 넣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적었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이렇게 소개했다. “2008년 겨울, 윤 센터장 찾아갔을 때 ‘지금 이 선생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동안 아주대병원에 중증외상 환자가 갑자기 오면 누가 수술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냉소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기하게도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동료들은 윤 센터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허망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윤 센터장과 1994년 수련의 생활을 함께한 허탁 전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고인은 응급의료 분야에 발을 디딘 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처럼 일해 왔다”며 “우리나라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세 발자국 앞을 그리며 정책을 준비했다”고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충혈된 눈으로 빈소를 찾은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은 “응급환자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다른 의사였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한 동료 의사는 “의료계의 가장 험지를 지키다가 죽어서야 존경을 받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간이침대를 놓고 밤을 새우며 격무를 이어간 고인의 집무실 앞에는 한 시민이 남긴 꽃다발과 커피가 놓여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윤 센터장의 죽음을 ‘순직’으로 표현하며 “숭고한 정신 잊지 않겠다”는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문 대통령은 “설 연휴에도 고인에게는 자신과 가족보다 응급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며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애도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응급의료 체계를 발전시켜 사회안전망이 강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빈소에서 “의료진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잘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국립중앙의료원도 윤 센터장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복지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건희 기자

2019.02.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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