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으로 나누거나 출입구-승강기 따로… 한 아파트 두 세상

[비즈]by 동아일보

‘소셜믹스’ 임대동-분양동 불편한 동거

동아일보

26일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분양동인 115동(왼쪽)과 임대동인 116동(오른쪽) 사이에 분양동 출입을 제한하는 외벽이 설치돼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참 서글펐습니다.”


22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임대동에 사는 A 씨(60)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같은 아파트 분양동에 사는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은 임대동에 사는 아이들과 따로 반을 편성해 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A 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손자와 함께 영구임대 형식으로 이 아파트 임대동에 살고 있다. A 씨는 “다행히 학교가 (분양동 학부모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씁쓸했다”고 했다.


2017년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는 13개 동의 분양동과 1개 동의 임대동으로 지어졌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지역에 아파트를 건설할 때 전체 가구 수의 일정 비율을 임대주택으로 해야 한다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건설된 ‘소셜믹스(혼합주택)형’ 아파트다. 주로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임대주택도 접근성이 좋은 곳에 들어설 수 있게 하면서 계층 간 공존 사회를 지향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A 씨가 입주한 아파트의 분양동과 임대동은 위치와 외부 구조부터 확연히 달랐다. 계단식 구조인 분양동과 달리 임대동은 복도식이었다. 분양동 13개 동은 한곳에 몰려 있었지만 임대동은 분양동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외따로 서 있었다. 특히 분양동과 임대동 사이엔 대형 교회가 가로지르고 있어 언뜻 봐서는 같은 아파트 단지로 보이지 않는다.


서울 마포구에는 임대와 분양 입주민이 같은 동에 거주하는 아파트가 있다. 4∼10층에는 임대 주민들이, 11∼29층엔 분양(매입 포함) 주민들이 산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임대층과 분양층 주민들이 사실상 마주칠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아파트 입구가 서로 다르다.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도 다르다. 이 아파트 임대층 주민 B 씨(37)는 “우리가 타는 엘리베이터는 버튼이 10층까지밖에 없다”며 “우리가 이용하는 계단도 10층에서 끊겨 더 위로는 올라갈 수도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사이를 가르는 외벽을 설치하거나 외벽 색깔을 다르게 해 분양동과 임대동을 구별해 놓은 아파트도 있다. 2017년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는 10여 개의 동이 일자 형태로 지어졌지만 2개 임대동을 제외하고 나머지 분양동을 둘러싸는 외벽을 쌓았다. 이 아파트 임대동 주민 C 씨는 “같은 아파트인데도 ‘성벽’을 쌓아 분양동 출입을 막고 임대동은 울타리도 없이 뻥 뚫려 있으니 기분이 좀 그렇다”고 말했다.


‘소셜믹스형’ 아파트가 건설 취지대로 기능을 하기엔 아직 우리나라의 주택 공급 형태가 적합하지 않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공공주택 전문가인 김상암 홈드림연구소 소장은 “소셜믹스 정책이 오래전에 시작된 싱가포르나 홍콩은 공공주택이 각각 80%, 60% 이상이어서 임대주택에 대한 거부감이나 부정적 인식이 거의 없다”며 “하지만 임대주택 비율이 아직 전체의 6, 7%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 특유의 ‘구별 짓기’ 문화가 임대동과 분양동의 갈등을 지속시키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동은 옆에 붙어 있으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분양동과 거리를 두고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임대주택 공급정책 외에도 주택 마련을 위한 주거급여를 지급하는 형태의 ‘바우처 제도’를 대안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6월 30일 기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의 소셜믹스형 단지는 263개, 17만4455채(분양 11만6573채, 임대 5만7882채)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재희 기자

2019.05.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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