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쓰레기 무단투기 딱 걸렸어”

[테크]by 동아일보

‘행동인식 인공지능’ 상용화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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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모퉁이에 쓰레기봉투가 쌓여 있다.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니지만 남의 눈길을 피해 버려도 괜찮아 보인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선 순간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가 울린다. 주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누가 감시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지나쳐도 울리는 단순한 경보기였다. 마음 놓고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고 돌아섰다.


이제 이런 풍경을 보기 힘들게 됐다. CCTV를 이용해 정말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만 골라 단속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순간 촬영 소리가 나며 “쓰레기를 가져가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방송된다.


비밀은 행동 인식 인공지능(AI)이다. 동작을 취하는 사람의 행동을 관절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관찰해 세밀한 투기 움직임을 인식한 후 경고한다. 지난해 말 개발된 뒤 서울 은평구와 세종시에서 실증 검증을 마치고 최근 기술 이전을 위한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지방자치단체 등에 확대 적용되면 도심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실시간 감지하고 나아가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술을 개발한 박종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인공지능연구소 시각지능연구실장은 “쓰레기 무단 투기는 하루 수백 건의 민원이 발생하는 지자체의 대표 골칫덩이인데, 공무원 한 명이 수백 개의 CCTV를 관리해야 하는 형편상 일일이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없어 자동 인식 및 경고 기능을 보유한 시각 AI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과 구글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은 사람의 얼굴을 정교하게 인식하고 분별하는 AI 인식 서비스를 이미 앞다퉈 내놓고 있다. 얼핏 쓰레기 투기 행위 정도를 인식하는 AI 개발은 쉬워 보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게 박 실장의 설명이다. 박 실장은 “세계적으로 시각 AI 분야가 크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생각보다 잘 안 되는 게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담은 비닐봉투를 AI가 알아보는 인식률은 10% 정도에 불과했다. 10개 가운데 9개는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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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시각지능연구실에서 개발한 행동 인식 인공지능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람을 포착했다. 물건을 든 사람의 팔 동작과 쓰레기봉투를 인식해 투기 순간을 정확히 감지했다. ETRI 제공

겨울철 술에 취해 쓰러진 사람을 찾는 임무도 의외로 AI가 어려움을 겪는 분야다. 겨울철 주취자를 그대로 방치하면 위험하기에 CCTV를 통해 감지하면 바로 경찰을 출동시켜야 한다. 그런데 뛰어난 시각 AI와 행동 인식 기술을 확보했는데도 처음에는 AI의 주취자 인식률은 매우 낮았다. 시각 AI가 길거리에 흐트러진 자세로 쓰러져 있는 사람 모습을 학습할 기회가 좀처럼 없어 길에 쓰러진 주취자 인식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자세 데이터를 따로 선별해 AI에 학습시킨 뒤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어려움은 시각 AI가 실은 아직 연구할 내용이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 실장은 “사람은 2만2000개의 사물을 구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항간에는 시각 AI가 2015, 2016년 사람과 비슷한 95%의 사물 분별 능력을 기록하면서 ‘AI가 사람의 인식 능력을 넘었다’는 말이 떠돌았지만 실은 1000여 개의 사물만 골라 집중 학습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전체 사물을 대상으로 한 인식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내 연구자들은 시각 AI의 발전이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고 자신한다. 시각 AI에서 학습과 인식 등 데이터 처리의 중추가 되는 기반 네트워크(백본망)를 이미 갖췄기 때문이다. AI에서 백본망은 주로 다양한 신경망이 담당한다. 박 실장은 “ETRI도 자체적인 백본망을 구축해 분별력이 뛰어난 시각 AI 기반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박 실장팀이 개발한 시각 AI용 백본망은 일명 ‘이미지넷’이라고 불리는 국제영상인식대회(ILSVRC)에 2017년 참여해 사물을 종류별로 검출하는 성능 부문에서 세계 2위를 치지했다. 시각 AI 원천기술을 확보해 강력한 국제 경쟁력을 갖췄다. 박 실장은 “연구자만 1000명 단위인 글로벌 IT 기업과 비교해도 시각 AI 기술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런 탄탄한 백본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본망은 다양한 시각 AI에 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쓰레기봉투의 인식이 문제면 쓰레기봉투를 집중 학습시켜 쓰레기봉투를 든 사람을 빠르게 분별하는 시각 AI를 특화시킬 수 있다. 시각지능연구실은 이 외에도 다양한 응용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강력하고 실용적인 원천기술을 확보해 두니 기업과 응용 기술을 연구할 때도 각자의 역할이 명확해서 좋다. 박 실장은 “아이디어를 보호하기 위해 아직 공개할 순 없지만 여러 분야에서 기발한 시각 AI 응용 사례를 기업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며 “조만간 모든 응용 기술의 기반이 되는 백본망을 포함해 다양한 AI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2019.09.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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