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왜 표절논란 없을까?

[테크]by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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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원시 부족인 멘타와이족이 전통 주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노래도 음악 데이터베이스인 ‘노래의 자연사’에 수록됐다. 사이언스 제공

독일의 천재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20대 후반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다가 44세에 청력을 거의 잃었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계시를 얻은 듯 ‘엘리제를 위하여’와 ‘월광’ 등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다. 무엇보다도 베토벤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수많은 곡을 작곡했지만 표절이 없었다는 점이다. 베토벤과는 달리 음악계에서 표절 시비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에도 이탈리아 가수 세이엘이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의 음악을 베꼈다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에는 가수 선미가 영국 가수 셰릴 콜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얼핏 들으면 같기도, 또는 다르게 들리는 이유가 전 세계 음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성에서 기인했다는 과학적 분석 결과가 나왔다.


새뮤얼 메어 미국 하버드대 음악연구소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사랑 노래에서 자장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에서 만국 공통으로 통하는 특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전 세계 315개 지역에서 유행하거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수집했다. 각 지역 도서관 자료실을 찾고 인터넷과 릴식 테이프, 카세트테이프, CD 등에서 음악을 추출했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음악도 모았다. 연구팀이 모은 자료에는 서울 지역에서 사용되던 재수굿(집안에 재수가 형통하기를 바라는 굿) 소리도 포함됐다. 이렇게 모인 음악 데이터베이스를 ‘노래의 자연사’라고 이름 붙였다.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전 세계 음악에선 특이하게도 공통적으로 ‘조성(調性)’이 나타났다. 조성은 으뜸음을 중심으로 질서와 통일을 가지는 음 체계다. 1810년 프랑스 작곡가 알렉상드르 쇼롱이 처음 조성이란 단어를 사용했으며 1722년 프랑스 작곡가 장필리프 라모가 논문에서 관련 개념을 설명하는 등 서양음악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이와 달리 서양음악에서 조성이란 개념을 도입하기 이전에도 이미 다른 지역 음악에서도 같은 특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음악들은 멜로디와 하모니가 다양하게 전개되지만 결국 으뜸화음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으뜸화음을 중심으로 음계 가운데 5도에 해당하는 음인 ‘딸림음’과 온음계의 네 번째 음인 ‘버금딸림음’ 등이 함께 사용된다. 이는 조성 현상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글에 문법이 있듯이 음악에도 조성이라는 일종의 ‘음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 세계 음악은 사회적 상황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 다른 공동체와 지역이지만 육아, 휴식, 춤, 사랑, 전쟁 등과 같은 행동을 주제로 음악이 존재했고, 비슷한 주제의 음악은 특징 또한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휴식과 관련된 음악의 경우 느린 템포라는 공통적 특징을 가진다. 연구팀은 “음악적 특징을 통해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엿볼 수 있다”며 “이런 특징은 전 세계의 음악에 통용된다”고 말했다.


메어 연구원은 “전 세계 음악의 기저에 깔려 있는 구조에 대한 궁금증을 일부 해결했다”며 “인간의 마음이 음악을 만드는 것인지, 어떤 마음이 음악을 만드는 것인지 더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2019.11.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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