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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107명 가운데 88명 백인 임원

백인 천국 애플,
트럼프 행정명령 비판한다고?

by이코노믹리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에 국경장벽을 세우고 20%의 국경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한편,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최장 120일간 난민의 미국 입국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난민 및 학자, 영주권 보유자에 상관없이 이라크·시리아·이란·수단·리비아·소말리아·예멘 등 7개국 국민의 미국입국을 90일간 금지하는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공격적인 공약을 전개하리라 예상은 됐지만 이 정도의 속도와 파괴력은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나의 중국을 흔들며 남중국해의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한편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 기조를 펼치는 과정에서도 일각에서 ‘현실을 고려할 것’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는 했으나, 결론적으로 낙관론은 빗나갔다.

백인 천국 애플, 트럼프 행정명령 비

출처=뉴시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며, 인디언의 피를 머금고 세워진 정복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2차에 거친 세계대전을 거치며 각지에서 몰려온 이민자의 손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건설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도 독일계 이민자의 후손인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발판으로 삼아 러스트 벨트의 블루컬러 백인들의 지지에 부응하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안전한 미국을 위해 트럼프의 승부수가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중동 7개국 출신 사람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지목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평가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반발이 심하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우려된다"며 "우리는 이 나라를 안전하게 지켜야 하지만, 이는 실제로 위협을 가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비판했으며 선다 피차이 구글 CEO는 "화가 난다"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날을 세웠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이민자 출신으로서 이민이 회사와 세계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경험했다"고 전했으며 엘런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거부당할 만큼 잘못한 일이 없다"고 반발했다.

 

하워드 슐츠 CEO는 행정명령이 발동된 직후 사내 이메일을 통해 향후 5년 동안 난민 출신 직원 1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깊은 우려와 무거운 마음이 든다"고 우려했으며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이번 행정명령은 모든 넷플릭스 직원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구글은 CEO가 총출동한 시위까지 했다.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구글의 순다 피차이 CEO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구글 본사에서 열린 행정조치 반대시위에 등장해 트럼프 행정부에 날을 세웠기 때문이다. 사실상 실리콘밸리의 반(反) 트럼프 선봉에 선 분위기다. 지난해 테크서밋 후 실리콘밸리와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 약간의 온기가 감지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서로가 냉기만 절절하게 흐르는 얼음판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다.

 

이 대목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엿보인다. 먼저 우버다. NBC 뉴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이 떨어진 순간 우버는 이를 돈벌이 기회로 삼았다. 행정명령에 반발한 뉴욕 택시 노동자 연대가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반대 시위에 나선 상태에서 우버는 택시 이용이 어려워진 현지 사정을 악용해 요금을 올려 호객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가끔 테러현장이나 기타 운송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 체계적이고 기습적으로 요금을 올리는 우버의 행태가 또 반복된 셈이다. 이러한 행태는 우버가 왜 공유경제 기업이 될 수 없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며, 수요에 따라 서비스를 조절한다는 온디맨드 업체의 민낯이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SNS를 통해 '우버를 지워라'는 글을 공유하며 경쟁사인 리프트를 이용하자는 캠페인을 펼쳤고, 깜짝 놀란 트래비스 칼라닉 CEO는 부랴부랴 "우버 기사들도 행정명령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다"며 "택시 연대의 파업을 막으려 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3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재계자문단체회의에서 트래비스 칼라닉 CEO가 직접 행정명령의 부당함을 알릴 계획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애플의 행보가 눈에 들어온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떨어진 후 팀 쿡 CEO는 “우리가 지지하는 정책이 아니다”는 말로 실리콘밸리의 대세에 발을 담궜다. 이어 그는 “이민이 없었다면 애플도 없었을 것”이라며 “7개 주요 이슬람 국가로부터의 이민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에 대해 여러분이 많이 우려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나도 그 우려에 공감한다”고 전했다. 미국 대선 기간 트럼프 당시 후보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최근에는 공장 이전건으로 잡음이 많았다는 것도 고려하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심지어 팀 쿡 CEO는 실적발표 현장에서 행정명령을 두고 법적인 소송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소송이라는 칼날을 완전히 뽑지 않은 상태에서 ‘고려’만 하고 있는 애플의 고위 임원이 대부분 백인이라는 점이다. 애플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EEO-1' 보고서에 따르면 고위 임원 107명 가운데 인종별로는 백인이 88명, 아시아계 14명, 소수인종은 5명에 불과했다. 여성은 단 20명에 그쳤다. 임원 밑 간부급에는 백인의 비율이 65%, 아시아계는 23%로 집계됐다. 정리하자면 애플은 가장 미국적이고, 백인중심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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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시스

더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애플 전체 임직원 중 히스패닉 및 흑인, 인디언 원주민, 하와이 태평양 지역 원주민 등 '과소대표된 소수인종(URM)'이 꾸준하게 늘어나는 대목이다. 2014년 21%, 2015년 24%에서 2016년 27%로 성장했다. 하위직급에 소수인종의 분포가 늘어나는 것은 세계에 진출한 애플의 위상을 보여주지만 백인 일변도의 최고위층과 비교하면 묘한 대비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백인이, 아래에는 소수인종이 있는 구조. 물론 27%라는 수치가 미국 본토에서 근무하는 수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애플이 어떠한 조직인지는 극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그런 이유로 다시 행정명령으로 돌아오면, 애플도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처럼 이민자 규제에 민감한 영향을 받을 수 없으며 이에 반발해 나름의 행동을 취하겠지만, 그 파괴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더불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 애플의 대응을 두고 "백인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 이민자들을 규제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라고 비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애플은 시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의 아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다음 행보’와 실리콘밸리의 2차전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의 행정명령은 실리콘밸리만을 목표로 둔 것이 아니며, 국가체제의 최정점인 안보 인프라를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종의 파생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행정명령으로 확실해진 것은, 이제 실리콘밸리에 우호적이던 오바마 행정부는 없고 필요하다면 날을 세우는 트럼프 행정부가 ‘현실’이라는 대목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신의 역량을 쑥쑥 키워가던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형태의 덫을 만났다.

 

이 지점에서 소위 아이폰 백도어같은 문제가 불거지면 전장은 트럼프 행정부와 실리콘밸리의 직접적 충돌로 범위가 좁혀지게 된다. 백도어 문제에 있어 트럼프 행정부는 ‘당연히 필요하다’는 입장을 추구하는 가운데 개인정보가 핵심적인 가치는 아니지만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애플은 어떤 대응을 보일까. 나아가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대응할까. 화이트컬러 백인의 애플과 블루컬러 백인의 지지를 업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묘한 교집합의 영점조정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