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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생년월일로 로또 당첨됐다면 능력인가 운인가

by이데일리

원인 없는 결과 만드는 '우연의 힘'

양자물리·진화·통계학 등 넘나들며

개인·집단존재는 '우연조합'이라고

성공에 우쭐·실패에 주눅 부질없어

………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플로리안 아이그너|288쪽|동양북스

생년월일로 로또 당첨됐다면 능력인가

“우연은 우주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카테고리다. 우리가 결국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스트리아 양자물리학자인 저자 플로리안 아이그너에게 로또는 바로 그 우연의 잔인한 결집체다. 어떤 번호를 들이대도 로또공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사진=이데일리DB).

프로야구선수인 그는 저녁경기가 있는 날에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 아침 10시 정각에 일어나, 오후 1시엔 같은 레스토랑에 나가 커피와 두툼한 참치샌드위치를 먹는다. 이전 승리했던 날 입었던 스웨터는 필수품. 경기 중에 그는 공을 던지고 나서 유니폼에 박힌 알파벳을 손으로 만지고 야구모자를 고쳐 쓴다. 상대 팀이 득점을 하면 이닝 끝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하고. 자, 그렇다면 따져보자. 이 선수가 믿는 건 미신인가 과학인가.

 

사실 대답보다 중요한 점이 따로 있다. 둘 중 어떤 것이라 해도 그를 막을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거다. 경기력이 나아진다는 데야 어쩌겠나. 커피 대신 우유를 마시랄 수도, 손 씻기를 하지 마랄 수도 없다. 게다가 이런 행위를 이 선수만의 유난스러운 의식으로 몰아붙일 수도 없다. 기우제를 지냈더니 진짜 비가 오더라, 겨울에 레몬차를 계속 마셨더니 감기가 피해가더라와 별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우연’이 벌이는 일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가 우연이라는 거니까.

 

생년월일로 로또 당첨됐다면 능력인가

다 좋다. 그런데 이 스토리가 과학자의 입에서 나왔다면? 원인과 결과가 똑 떨어지는 결합을 신봉하는 과학자가 ‘논한’ 우연이라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미래에 ‘운’ ‘우연’을 들이댄 건 오스트리아 출신 젊은 양자물리학자다. 그냥 집적거린 수준도 아니다. 양자물리학은 당연하고 진화생물학·심리학·천문학·통계학·철학을 훌쩍훌쩍 넘어다니며 빼도 박도 못할 근거를 잘도 찾아낸다. 책은 ‘우리가 존재하는 건 우연 덕분’이란 명제를 다져가는 과정이다.

 

우연 같은 건 없다고 했던 과거의 오류를 꼬집는 일부터다. 150년 전만 해도 그랬단다. 예측가능한 우주에서 대체 어찌 우연 같은 게 있을 수 있느냐고 다들 그랬다고. 그러다가 원통에서 뱅글뱅글 돌다 떨어지는 로또공도, 맑은 날 정원에 툭 구멍을 내는 운석도 명백하고 확실한 자연법칙에 의한 거라고 철석같이 믿게 됐다고. 그런데 과연? 저자가 보니 그게 그렇지 않더란 거다.

신이 주사위놀이를 할까 안 할까

20세기 초 갓 태어난 양자물리학을 두고 설왕설래할 때였다. 작은 입자들의 행동을 계산할 수 있는 상당한 공식이 나왔지만 문제는 결과였다. 어찌 해석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두 개의 가능한 현실 때문이었다. 원인과 결과가 반듯한, 예측가능한 개념을 따르는 행성·인간 등의 거시적 세계가 하나. 순전히 우연이 지배하는 듯 좌충우돌 행동하는 분자·원자·소립자의 미시적 세계가 다른 하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우연을 믿고 싶지 않은 부류에 속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일갈이 그때 나왔다. 불확정성 어쩌구하며 대충 넘어가자는 꼴이 보기 싫었던 거다. 반대쪽의 대표주자는 닐스 보어. 아인슈타인에 맞서 “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하지 마라”고 쏘아붙였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보어 편에 선 셈이다. 포장은 좀 더 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매우 다채롭다”고. 덕분에 책에는 인과관계로 빼낼 수 없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가령 생년월일을 로또용지에 기입했다가 덜컥 당첨됐다면 이건 능력인가. 아니면 매번 생년월일만 기입해 31 이상의 숫자를 선택한 사람의 당첨확률을 높이고 있다면 이건 또 뭔가. 어떻게 재봐도 명확한 건 하나다. 어떤 행동도 로또공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 당첨확률은 원래 0% 언저리고, 그러니 어떤 경우도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했다.

나비는 아무 잘못이 없다

우연을 따져야 할 때 늘 거론하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대선배가 있다. ‘나비’다. 아마존강 주변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3년쯤 뒤 내가 사는 집 지붕 위에 폭풍우가 쏟아질 거란 ‘나비효과’의 주인공. 그렇다면 이 엄청난 현상을 저자는 어찌 보고 있을까. 나비의 날갯짓이 날씨에 영향을 끼쳐 폭풍우를 몰고 왔다고 치자. 그렇다고 폭풍우를 일으킨 원인이 나비라고 볼 순 없는 노릇 아니냐는 게 그의 입장이다. 한마디로 나비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거다. 마치 단 한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린 선거에서 ‘네 탓’ ‘내 공’ 하는 수많은 나비떼와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연을 무시하지 말란다. 우리 삶을 언제 어떻게 틀어버릴지 모르니까. 주식투자로 모아뒀던 돈을 홀랑 날렸을 때, 새로 산 중고차가 고작 1000㎞를 가고 길 한가운데 퍼져 버렸을 때, 확신했던 승진이 무능력한 옆 동료에게 돌아갔을 때, 우연은 굳이 원인을 캐내지 말고 운이 안 좋았던 탓으로 돌려도 된다는 ‘너그러운’ 지침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물론 모든 성공이 전적으로 우연 때문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멍청하고 게으르고 성격도 나쁜’ 사람이 이토록 잘나가는 걸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성공비법 대공개? 다 웃기는 소리란다.

성공은 능력 덕, 실패는 운 탓?

과학프로그램에 나선 강사처럼 책은 시종일관 나긋하고 진지하다. 우연의 필요, 가치 등을 조목조목 짚어내며 일관되게 한 길로 몰고 간다. 평생 누군가의 일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우연의 조합’이란 주장. 개인뿐인가. 우연은 기업과 국가, 우주의 운명에도 속속들이 관여하는 중인데. 평범한 직장인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창업해 빌 게이츠를 제친 세계 1위 부자가 된 것, 전쟁통에 태어나 총칼을 피해 간신히 살아남은 것, 거대한 우주에서 하필 지구에 떨어진 것도 기가 막힌 우연이란 소리다. 그러니 반성하란다. 번번이 우연을 잘못 판단해 힘들게 번 돈을 왜 죄다 카지노에 버리고 왔는지. 잘난 척도 하지 말란다. 성공했다고 우쭐하는 것도, 실패했다고 주눅드는 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다만 걱정거리가 한 가지 있으니. 우연과 강박을 헷갈리기 시작하면 진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앞서 만난 야구선수가 손만 씻다가 경기를 못할 지경이라면, 원자력발전소 책임자가 경고사이렌이 울려대도 ‘오늘 행운의 속옷을 입었으니 별일 없을 거야’라고만 하고 있다면 상황이 심각하다는 거다. 우연을 놓지 말되 위험과는 구분하라는 뜻이다.

 

과학자가 원인을 제쳐두고 우연을 떠받든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다. 하지만 허탈감도 딱 그만큼이다. “더 이상 캐묻고 싶지 않거나 설명하기 힘든 것의 다른 이름이 우연”이란 대목에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럴 듯한 반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주사위를 던졌는데 세 번 연속 6이 나온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뭐라 답하겠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우연이라는 데야. 하기야 첩첩이 쌓인 책더미에서 저자를 콕 찍어낸 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이니.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