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도 실연하면 만취한다? 신비한 초파리의 세계

[테크]by 이데일리

교배 실패한 수컷 초파리, 알코올 섞인 밥 선택 늘어

사람 보유 단백질 '신경펩타이드 Y'와 유사한 '신경펩타이드 F' 보유 때문

초파리도 실연하면 만취한다? 신비한

그래픽=목정완 과학커뮤니케이터.

요즘 같은 여름철 모기와 더불어 대표적인 불청객 중 하나는 바로 초파리다. 일반 파리보다 작은 3mm 정도 크기인 초파리는 수박, 복숭아, 포도 등 달고 신 과일을 먹을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우리를 귀찮게 하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이처럼 골칫거리인 초파리가 사람과 400개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유전학에서는 좋은 실험 재료가 된다. 초파리는 사람과 공유하고 있는 400여개 유전자로 인해 사람과 비슷한 습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중에 하나는 실연을 하면 음주량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사랑을 잃은 아픔을 술로 달래는 모습이 사람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우선 초파리의 교배에 대한 얘기부터 하자면 수컷 초파리가 암컷 초파리와 교배를 하기 위해서는 춤을 포함한 복잡한 구애 행동이 있어야 한다. 암컷 초파리는 수컷 초파리가 만족스러운 구애 행동을 했을 경우에 비로소 교배를 수락한다.


그러나 이미 교배를 경험한 암컷 초파리들은 수컷 초파리들이 구애 행동을 하더라도 교배에 잘 응하지 않는다. 유전학자들은 초파리의 이런 행동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한다.


먼저 첫번째 투명 유리 상자에는 모두 교배 경험이 없는 암컷 초파리와 수컷 초파리를 같이 넣어주고, 두번째 상자엔 교배를 한 암컷 초파리와 교배한 적 없는 수컷 초파리를 넣어줘 이를 비교한다.

초파리도 실연하면 만취한다? 신비한

그래픽=사이언스(Science).

첫번째 상자에서는 수컷의 구애에 이은 교배가 이뤄진다. 그러나 두번째 상자에선 수컷 초파리의 구애 행동에도 불구하고 암컷 초파리는 이를 무시하면서 수컷 초파리는 실연을 겪게 된다. 이 경우 실연 당한 수컷 초파리가 일반 밥과 알코올(약 15% 농도)을 섞은 밥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테스트한 결과 알코올이 들어간 밥을 선택하는 비율이 약 30% 정도 증가했다.


재미있는 것은 유전학자들이 실연 당한 초파리들을 다시 미교배 초파리들과 함께 둬 교배 성공을 유도하면 알코올 섭취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자연 상태에서도 초파리들은 실연을 당할 경우 발효된 과일 등에서 알코올을 섭취하는 경우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파리들의 이 같은 행동에 관여하는 것은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가 갖고 있는 신경펩타이드 Y(NPY)와 비슷한 신경펩타이드 F(NPF)라는 단백질이다. 교배에 성공한 수컷 초파리들의 뇌에는 NPF의 양이 많은데 비해 실패한 녀석들의 뇌에는 NPF의 양이 매우 줄어들게 된다. 바로 이 NPF의 양이 줄어들면 알코올을 섭취하려는 습성이 증가하게 된다. 교배에 실패해 NPF 양이 줄어든 수컷 초파리들이 알코올을 섭취할 경우 NPF의 양은 다시 회복된다. 술이 짝짓기 실패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 같은 원리는 사람의 경우 실연 뿐만 아니라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는데 뇌의 NPY 양이 적어진 상태에서 약물이 체내로 들어가면 NPY는 다시 늘어나게 된다. 초파리를 약물중독 치료 연구에까지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도움말=목정완 과학커뮤니케이터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2018.08.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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