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2212명…학생선수 인권은 '사각지대'에

[이슈]by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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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심석희 선수 등을 폭행한 혐의로 고소된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가 지난 1월 2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항소심 재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 "하루에 30대 정도 맞았어요, 많이 맞으면 40대... 안 맞는 날은 없고 매일 매일 맞았어요. 창고 들어가서 손으로 등이든 얼굴이든 그냥 막"(초등학생 남자 배구선수)


#. "제가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가 된 기분이에요. (사진) 찍는 분들도 계시고"(중학생 여자 체조선수)


초·중·고 학생선수가 활동하는 체육현장이 그야말로 '인권 사각지대' 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학생들이 성폭력에 노출됐으며 이중 일부는 강간 등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학생선수 6만3211명 중 3.8%(2212명)가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15.7%(9035명)가 언어폭력을, 14.7%(8440명)는 신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인권위는 학생선수가 있는 전국 5274개 학교를 대상으로 7월부터 9월까지 온라인 설문 및 심층인터뷰 등을 통해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성폭력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강간을 당한 중학생 선수는 5명이었으며, 9명은 성관계를 요구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등학생 선수 중 강간을 당했다고 밝힌 선수는 1건이었으며, 9명은 성관계를 요구받았다고 진술했다.


중학생 선수 중 '누군가 자신의 신체를 강제로 만졌다'고 응답한 선수는 131명에 달했다. 고등학생 중 불법 촬영 피해를 토로한 선수도 61명이었다.


성폭력 가해자로는 주로 동성의 선배나 또래가 지목됐다. 남자 코치에게 훈련을 빙자한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자 고등학교 유도 선수도 있었다.


성폭력 피해로 인한 도움을 요청한 경우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각 7.1%, 14.8%만 가해자가 징계 및 형사처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체육계의 신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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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선수 '폭력 내면화' 심각

학생선수 중 약 30%는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혀 훈련장 내에서 일상적으로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초등학생 야구 선수는 "코치가 나무배트 손잡이로 허벅지 안쪽을 때려 부모님이 그걸 보고 우셨다"고 말했다. "선배들이 숙소에서 충전기 선으로 감아 팔이나 가슴을 때리고, 티가 나면 긴 팔을 입으라고 했다"고 말한 중학교 양궁 선수도 있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하는 폭력의 내면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초등학생 선수 중 신체폭력을 경험한 뒤 38.7%에 달하는 응답자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중학생 선수 중에서도 21.4%가 같은 응답을 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일상화된 학생체육 속 폭력 문화가 신체·언어폭력을 훈련이나 실력향상을 위한 필요악으로 인식하게 된다"며 "이는 피해자의 소극적 대처로 이어지고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권위는 이번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폭력으로부터의 보호체계 정교화 △상시 합숙훈련 및 합숙소 폐지 △과잉훈련 예방 조치 마련 △체육특기자 제도 재검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정례화 검토 등을 제시하고 학생선수들의 인권보장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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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2019.11.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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