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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앤디 워홀, 비틀즈, 롤링 스톤즈, 살바도르 달리까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그녀,
예술가들의 뮤즈

by게티이미지코리아

전설적인 예술가, 아티스트의 뮤즈들

 

화가, 작곡가, 조각가를 비롯 오롯이 자신의 창작물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는 냉혹한 예술 업계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고, 창작 활동에 영감을 불어넣어 줄 존재인 뮤즈를 갈망하곤 합니다. 아티스트의 창작의 샘물이며, 또한 직접 창작물이 되기도하는 뮤즈의 삶이란 어떤것일까? 그들이 사랑한 뮤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예술이란 직업과 업계 특성상 예술가의 뮤즈는 화려한 조명,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선망의 자리인 동시에, 예술가의 범상치않은 정신세계, 종잡을 수 없는 변덕과 자존심을 받아줄 수 있는 끝없는 이해를 요구하는 독이 든 성배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이런 사실들을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 1943-1971

에디 세즈윅은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뮤즈이기 이전에 메사츄세스주의 상류층인 세즈윅가의 8남매의 일곱째 딸로 태어나 부유하지만, 외부로부터 고립된 외롭고 혹독한, 그리고 친부의 성폭행으로 점철된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었지요. 그리고 그녀의 20살 생일에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8만달러(당시 통화가치 한화 20억원)로 뉴욕에서 패션모델로 새로운 경력을 쌓기시작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팩토리의 아티스트이자 아방가르드 영화 감독인 앤디 워홀을 사로잡으며 제 2의 인생을 맞이합니다.

세즈윅의 깊고 큰 눈망울과 스모키 메이크업, 인조속눈썹, 그리고 과장된 귀걸이와 액세서리 조합까지 지금 보아도 세련된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이미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앤디 워홀의 사랑은 그리 오래가진 못하죠. 게다가 세즈윅가 대대로 내려오던 정신병력과 심각하게 불안정했던 유년기는 결국 세즈윅을 마약 중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마침내 1971년 7월 28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에디 세즈윅의 화려했던 순간)

패티 보이드(Pattie Boyd), 1944-

전설적인 2명의 뮤지션,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 그리고 기타의 신 에릭 클랩턴과 결혼했던 당대 최고 인기의 패션모델이였던 패티 보이드는, 현재 기준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피사체라고 할 수 있지요. 조지 해리슨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자작곡 'Something'에 녹여냈었죠.

조지 해리슨의 절친이였던 에릭 클랩턴은 패티와의 첫 만남 뒤 흠모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 ‘Dalia’를 만들었고, 패티와 조지 해리슨의 이혼 후 교제를 시작해 결혼까지 하게됩니다. 그때 만들었던 곡이 그 유명한 ‘Wonderful tonight’ 입니다.

Pattie Boyd ​ English model Pattie Boyd, the wife of George Harrison of the Beatles, returns to work in London, 22nd April 1966. She is wearing a Hoopla mini skirt from the London boutique Quorum. (Photo by Keystone/Hulton Archive/Getty Images)

하지만, 에릭 클랩턴의 바람으로 다시 이혼한 패티는 누구의 뮤즈도아닌 포토그래퍼로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명의 전설적 아티스트의 뮤즈였던 그녀, 패티 보이드의 과거와 현재)

오노 요코(Yoko Ono), 1933-

설치 미술가이자 플럭서스 계열에서 꽤 유명한 아방가르드 행위예술가였던 오노 요코는 존 레논의 2번째 아내였지만, 무엇보다도 각종 매체를 통해 비쳐지는 '비틀즈 해체의 원흉' 같은 부정적 모습으로 유명합니다. 폴 매카트니와의 오랜 저작권 소송과 인터뷰를 통한 상대방에 대한 비난으로 비틀즈 해체의 직접적인 이유 중 하나라는 설이 거의 확정적이란 얘기도 있었지만, 2012년 폴 매카트니가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요코가 비틀즈의 해체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녀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 되기도 했지요. (오노 요코의 모든것)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1898-1920

Jeanne Hébuterne ​ Jeanne Hébuterne, 1914. Private Collection. (Photo by Fine Art Images/Heritage Images/Getty Images)

잔 에뷔테른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이탈리아의 화가였던 모딜리아니의 아내였습니다. 사랑에 빠져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와 결혼하고 딸 잔느를 낳았지만, 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모딜리아니가 결핵성 수막염과 알콜 및 마약 중독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다음날 남편을 따라 4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말았지요. (모딜리아니의 뮤즈, 잔 에뷔테른의 초상화들)

갈라 달리(Gala Dali), 1894-1982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였던 갈라는 달리의 끊임없는 구애에 1934년 1월 30일 그녀의 나이40세, 달리가 30세였던 날 결혼합니다. '달리는 갈라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얘기를 들을만큼 갈라는 달리의 뮤즈로서 또한 매니저로서 달리의 작품과 그의 인생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요. 달리는 심지어 갈라만을 위한 발레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와 갈라 달리)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 1946-

롤링 스톤즈 믹 재거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마리안느 페이스풀은 케이트 모스나 시에나 밀러가 패션 스타일 롤 모델로 삼았을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였습니다.

하지만, 동시대 여성들의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였던 그녀는 난잡했던 롤잉 스톤즈의 사생활과 1960년 히피 문화와 성해방운동으로 범람했던 술, 담배, 마약, 섹스에 점차 물들기 시작했고 '레즈렌드 별장 사건'으로 불리는 환각 파티의 유일한 여성으로 경찰에 구속되며 '천사의 얼굴을 한 창녀', '퇴폐의 요정'으로 불리며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기나긴 시간 끝에 지독한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그녀는, 결국 살아남아 노년의 삶을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롤링 스톤즈, 믹 재거 그리고 마리안느 페이스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