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 왕국 한국에 없는 순정의 맛

[테크]by 김국현
안드로이드 왕국 한국에 없는 순정의
안드로이드 왕국 대한민국. 삼성과 LG라는 굴지의 제조사가 하드웨어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하드웨어에 탑재된 운영체제는 삼성과 LG의 색이 강하게 들어 있다.


공짜인 안드로이드를 도매로 가져다가 나름대로 손을 봐서 소매로 내놓고 있는 셈인데, 그 결과 안드로이드는 여러 변종으로 쪼개져 버렸다. 


 ‘파편화’다. 화면 크기나 성능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가짓수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기능을 하나 구현했건만 삼성과 LG의 폰에서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안드로이드 개발자로서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는 각자의 취향이라고 하더라도 지엽말단의 성형에만 리소스가 집중된 현재의 제조사 OS는 별로 소비자 친화적이지 않다. 아무래도 도매와 소매 사이에 시차가 생기다 보니 새로운 운영체제 업데이트나 보안 패치와 같은 본질적인 건강 관리가 등한시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 실태는 이미 수치로 드러난다. 


새로운 OS가 발표되면 맹렬하게 업그레이드가 일어나는 애플과 달리 안드로이드 쪽은 세월아 네월아다. 신작 OS 발표 1년이 지나도 점유율은 겨우 15% 내외. (iOS는 단 하루 이틀에 10~20%가 설치)


개운한 새 옷 대신 무거운 짐만 짊어지고 있다. 통신사나 제조사가 순정 OS 위에 덕지덕지 끼워 넣는 프로그램을 블로트웨어(bloatware)라 부르곤 한다. 요즈음은 많이 계도되었지만 제각각의 욕심에 부푼 비대한 소프트웨어들은 여전히 쓰이지 않은 채 반도체 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안쓰러울 정도로 순정의 기능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삼성풍 OS, LG풍 OS의 존재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덧 안드로이드의 버전도 8. UX/UI 역량도 순정 쪽이 오히려 더 그럴듯해진 지 오래다. 하청이 되기 싫은 제조사의 심정이야 이해가 안 가는 것 또한 아니지만, 정작 순정을 고를 수 없을 때 느끼는 소비자의 심정이란 것도 있다.


현 상황에 대해 일반 소비자는 별 불만 없을 것이고 가끔 이 역시 소비자가 원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소비자에게 이미 충분한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대개의 경우 그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기업들이 내놓은 선택지 이외에는 대안의 존재조차 소비자는 모른다. 


지난주 미국에서도 모토로라의 한 제품이 ‘안드로이드 원’으로 출시되며 뉴스가 되었다. 안드로이드 원이란 개도국을 위한 저가형 순정 안드로이드폰. 샤오미가 대표적 파트너인데, 20만 원대로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을 뽑아내고 있다. 모토로라도 샤오미도 자기네 옵션을 듬뿍 담은 OS 만들 줄 모르는 데도 아니지만, 그래도 소비자를 위해 순정품도 함께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안드로이드 오레오와 함께 발표된 “안드로이드 고(Go)”라는 이니셔티브는 512MB~1GB의 메모리를 지닌 빈약한 기기에서도 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 초경량 순정 안드로이드. 구형 폰도 최신 OS로 살아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 관심도 없다. 개도국은 벗어났다는 자신감인지 모르겠으나, 주머니 사정과 무관하게 미니멀리즘 등 여러 이유로 간소한 기기와 함께 소박하게 살고 싶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순정 안드로이드(Pure Android experience)는 흔한 듯 귀한 몸이다. 현재로서는 픽셀 등 구글이 직접 내놓는 하드웨어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이 역시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들다. 심지어 이들의 상당수를 한국에서 제조하고 있지만 말이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느꼈지만 제조사가 자국에 있다고 해서 뭐 혜택의 폭과 깊이가 느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주 구글은 넥서스나 픽셀을 함께 제조하던 HTC의 폰 부문을 아예 인수했다. 아마도 순정 라인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순수한 바닐라가 이제는 제일 자신 있는데, 세상 온갖 가맹점에서 여전히 토핑 없이는 팔지 않고 있으니 안드로이드도 답답한 노릇일 것이다.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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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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