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 열풍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어쩌면 컬링은 가장 미래적인 스포츠

[테크]by 김국현
컬링 열풍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어쩌

컬링이 재미있다.

 

클로이 김이 보여준 유쾌한 하프파이프 스노보드도 이상화와 고다이라가 보여준 우정의 스피드 스케이팅도 재미있었지만, 이번 여자 컬링은 그저 재미있다.

 

전략적 ‘밀당’과 뜻밖의 실수와 극적인 역전이 배합된 드라마라서이기도 하지만, 컬링은 어느 무엇보다 미래적인 스포츠임을 깨닫게 된 덕이다. 

 

1) 컬링은 스크린 친화적이다. 

 

우선 컬링은 경기 시간이 길다. 경기당 2~3시간이 걸리고, 예선전도 풍성하다. 컬링이 인기인 나라에서 열린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중계 시간 중 33%였다고 하는데, 이번 평창에서는 더 될 것 같다. 중계하다가도 다른 경기가 열리면 보고 다시 돌아오는 마음 넉넉한 연출이 언제나 가능하다. TV 중계에 있어서 마치 컴퓨터 배경화면 같은 겸손한 포지셔닝이라 은근슬쩍 분량을 차지해 간다.

 

게다가 마음껏 선수의 얼굴을 롱테이크로 클로즈업할 수 있다. 선수마다 분량이 나오니 캐릭터가 살아난다. 게다가 선수에게 고성능 무선 마이크를 채웠다. 탄성과 포효를 포함한 경기 중의 생생한 육성에, 돌이 얼음을 긁는 효과음까지 살아난다. 국제 경기인 만큼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작전 토크를 세계 각국 언어는 물론 사투리로까지 듣게 되니 귀 또한 글로벌 기분이다.

 

2) 컬링은 VR 친화적이다.

 

미디어 중에서도 특히 VR에 컬링은 안성맞춤이다. 이번 평창에서는 다양한 VR 실험이 있었는데, 다소의 실망 속에 뜻밖에 컬링이 호평을 받았다. 그 이유는 안정된 조명의 평지에서 천천히 벌어지는 스포츠이므로 멀미 걱정 없이 시점을 바꿔가며 즐길 수 있어서인 듯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모른다. 지금의 스톤에는 반칙을 잡기 위한 센서가 달려 있다. 언젠가 그 스톤 위에 360도 카메라가 달려서, 스코틀랜드산 화강암이 된 기분으로 경기에 몰입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3) 컬링은 인공지능 친화적이다. 

 

컬링은 얼음 위의 체스라 일컬어진다. 체스? 그렇다. 인류와 만난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던 종목이 체스라면, 빙상 체스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컬링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이 활발한데, 매년 일본에서 조촐히 디지털 컬링 대회가 열리고 있다. 최근에는 거의 한일전이었는데, 한국 대학의 팀이 우승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어찌 매우 조용하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현실이나 가상공간이나 별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컬링은 체스나 바둑과는 꽤 다르다. 바둑만 해도 현실과 알파고가 생각하는 공간은 100% 동일하다. 돌을 놓는 행동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100% 알 수 있다. 하지만 컬링은 그렇지 않다. 똑같이 던져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리 없는 현실은 빙판의 온도와 스톤의 흠집에도 영향을 받는다. 인공지능이 훌륭한 전략을 짜줘도, 선수는 오늘도 실수를 한다. 게다가 모아야 하는 빅데이터에도 노이즈가 많다. 경기결과의 저장형식도 애매하다. 똑같은 데이터에 똑같은 결과가 뒤따르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만약 컬링에도 인공지능이 효과적이라는 점이 증명된다면, 점점 더 많은 현실이 모방될 것이다. 현실 속의 불확실한 요소들마저 포용하는 물리 시뮬레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알파고 제로가 자신과 대국을 하듯 그 세계 안에서 수백만 번의 컬링을 한 코치가 국가 대표를 가르치게 될 수도 있다.

 

컬링의 작전타임. 코치는 뛰어오지 않는다. 그것이 컬링의 매너라 한다. 하지만 언젠가 마이크를 차듯, 인공지능 헤드셋을 모두 차게 되는 날, 급한 마음에 성큼성큼 걸어오는 코치가 있던 풍경이 그리워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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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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