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프가 온다

[테크]by 김국현
블프가 온다

금주 수요일 11월 11일은 중국 광군제(光棍節), ‘솔로 데이’다. 1이 외롭게 나란히 늘어 서 있는 모습이 솔로들 같다고 하여 솔로 데이가 된 것인데. 그렇게 홀로 외롭게 있으면 무엇하냐며 함께 쇼핑으로 기분전환하자고 대폭 할인의 세일 시즌을 형성한다. 원래는 내수용이었지만 이제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쇼핑몰의 해외 창구는 ‘글로벌 쇼핑 페스티발’로 해외 직구를 한껏 호객 중이다. 벌써 당일 할인가를 미리 보여주며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설렐만한 물품들이 꽤 있다.


일종의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인 셈인데, 원조 쪽도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11월 네 번째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이다. 감사의 분위기가 끝나고 난 그 다음 날 금요일은 크리스마스 홀리데이 시즌의 개막일이기도 하지만 감사절용으로 팔고 남은 선물이 일거에 염가에 쏟아져 나오는 세일 날이기도 하다. 60년대에 시작하여 70년대에 정착했으니 그리 역사는 길지 않지만, 워낙 군중이 장사진을 치다 보니 사람이 다치기도 하여 ‘블랙’한 금요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조차도 상인들은 흑자가 났다며 흥겨운 블랙으로 승화시켜버렸고, 이 분위기를 온라인으로 이어가 그 다음 월요일 사이버 먼데이까지 살려내고 있으니 대단한 상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소매 유통 매출의 4분의 1이 이 기간에 이루어진다. 정보화와 세계화 덕에 한국 소비자가 동참하게 된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위용은 이미 국내에서도 전해져서 국내에서도 ‘블프‘라는 줄임말이 생길 정도다. 이제 ’직구‘라는 말은 일상어가 되어 버렸고, ’배대지(배송대행)‘ 사업도 흥업 중이다. 이 직구가 카드사에도 짭짤한 모양인지 캐시백과 결제 할인 등 각종 혜택을 겸비한 직구 전용 카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좋아 보였던 것인지 정부 주도의 한국판 ‘블프’가 요즘 마치 새마을운동처럼 시행중이다. 곧 ‘K세일 데이’라는 이름으로 2차 강행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로서야 성장률 목표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 당연하나, 등 떠밀려 참여하는 유통업체들은 못 이기는 척 그냥 바겐세일 한 번 해주는 수준이다. 게다가 자생적으로 발생한 할인 행사가 아닌 만큼 그럴듯한 스토리텔링도 없고 소비자에게는 ‘핫딜’스러운 충격도 없다. 아직 한국의 시장 경제는 중국만도 못한 것이다.


이러한 시책이 반복되면 장기적으로 시장으로서의 한국은 그 체력이 약해질 뿐이다. 이미 관광객 재방문율은 경쟁 관광지인 일본의 4분의 1 수준이다. 한류 이미지 덕에 어찌어찌 한 번은 방문했지만 대개 다시는 안 오는 셈이다.


소비자는 경쟁력 있는 상품을 찾아 어디라도 간다. 직접 못 가면 스마트폰이 데려다 주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위기일지도 모르지만 기회다. 우리 주위의 아주 작은 가치 있는 무엇이라도 전 세계의 누군가에게는 관심 품목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주 작은 가치로도 아주 작은 시작을 할 수 있는 세계가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찾아서 키워야 할 것은 그 작은 가치와 작은 시작이지, 정부발 ‘한국판 블프’는 아니다.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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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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