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에 읽는 쿨링학 개론

[테크]by 김국현
무더운 여름에 읽는 쿨링학 개론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폭염,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지 싶다.


한여름 방안.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컴퓨터마저 뜨거운 바람을 뱉어내니 악순환이 펼쳐진다. 방안의 온도는 더더욱 올라가고 그 공기를 다시 흡입한 컴퓨터도 힘들어한다. 여름은 쇠약해진 컴퓨터가 앓아눕기 딱인 시기다. 특히 블루스크린 등을 뱉어내며 시름시름 앓는 PC가 집에 있다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열병에 걸려 있을 확률이 높다.


일단 해볼 수 있는 치료법은 PC든 노트북이든 개복을 하고, CPU 팬 주위나 배기구에 낀 먼지를 제거하는 일. 특히나 흡배기구가 비좁고 철제 히트 싱크가 바로 덧대어져 있는 노트북의 경우 먼지나 털들이 융단처럼 곱게 뭉쳐서 덮고 있을 수 있다. 계절을 잊은 솜이불이 한층 더 후끈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었을 것이다.


팬의 바람이 들어오는 흡기구에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물체가 있다면, 예컨대 하단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노트북을 침대 위에서 쓴다면 직조공장을 가동하는 꼴이 되니 주의하도록 하자. 데스크탑 PC도 주된 설치 공간이 주위가 막히거나 먼지가 몰리는 공간인 경우가 많다.


때로는 케이스를 열지 않고 진공청소기를 터보모드로 놓고 배기구에 대고 빨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때도 있다. (그러나 구멍을 잘못 맞춰서 강한 바람이 역으로 불면서 팬의 구조를 훼손할 가능성도 있음을 염두에 두자. )


이 정도로는 큰 효과가 없다면 장시간의 열 때문에 CPU와 방열판 사이에 발라 놓은 서멀 그리스(Thermal Grease, 열전도를 위한 질퍽한 물질)가 말라붙었을 가능성이 있다. 쿨러를 잠시 분리하고 서멀 그리스를 다시 바르는 나름의 대작업이 필요하다. 


그나저나 도대체 왜 이렇게 컴퓨터는 열에 약한 것일까. 


CPU를 포함 온갖 반도체에 가득 찬 트랜지스터는 열을 낸다. 만약 이 열이 그대로 머물게 된다면, 과도한 열이 결국 반도체를 파괴하고 만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반도체에는 여러 보호장치가 있는데,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냥 뻗어버리는 법. 더는 기능하지 않는 것이다. 흔히 컴퓨터가 죽는 일은 이래서 일어난다. 아무래도 우아하지 않으므로 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요즘 CPU들은 순간적으로 클럭수를 높이는 터보 부스트를 중단하거나 전체적인 성능을 저하시키는 서멀 스로틀링(thermal throttling)이라는 예방책을 마련하고 있다. 더운 날 축 늘어지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때로는 정말 열로 인한 붕괴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땜납의 성질이 변하거나 금이 가는 ‘냉납’ 현상이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나 칩이 훼손되는 완전 파괴가 일어나기도 한다. 슬픈 일이다.


샀을 때는 문제가 없던 제품도 여름 몇 번 지나면 허약해진다. 생산되었을 당시 그대로의 몸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컴퓨터 안에 움직이는 물체, 즉 모터가 들어 있으면 언젠가는 고장 나기 마련이다. 팬의 베어링이 낡으면 굉음을 내며 성능이 떨어진다. 그러면 머지않아 서멀 그리스는 말라붙는다. 세월 앞에 장사 없는 것은 컴퓨터의 냉각 시스템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대중적 공랭(空冷) 냉각 이외에는 방법이 없을까? 쿨러 없이 냉각용 금속판만으로 버티는 법이 있다. 쿨러가 없는 기종은 완벽한 정적을 자랑하기도 한다. 인텔 Y시리즈와 같은 팬리스(Fanless) CPU는 뚱뚱하고 시끄러운 냉각 장치 없이도 그럭저럭 쓸만하다. CPU의 TDP(Thermal Design Power) 수치가 낮을수록 냉각 필요성은 떨어지니, 간소하고 시원하게 살고 싶다면 성능보다는 TDP 수치에 주목해보자.


생각해 보면 386, 486 시절만 해도 방열판이나 쿨러 따위 없었다. 더 빠른 속도에만 매진하는 성장주의에는 폐해가 뒤따랐는데, 더 많은 전기를 쓰고 더 많은 열을 방출하는 것이었다. 

속도와 성능에 집착하는 시대. 암호화폐 채굴기 시장이 대표적이다. 채굴기를 줄줄이 굴비 꿰듯 엮어서 아예 미네랄 오일과 같은 액체에 담가 버리는 업자들도 있다. 따라 한다고 물에 담그면 큰일 난다. 대신 이런 용도의 전용 상품도 있다.


굳이 말하자면 침랭(浸冷, Immersion Cooling)인 셈인데, 이 분야도 제품화가 한창이다. 3M의 Novec과 같은 특수 냉매는 끓는 점이 낮다. 밀폐 수조형 케이스에 기판을 푹 담가 두면 CPU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나며 증발하는데, 이를 천장에서 다시 모아서 방울방울 다시 떨어뜨리게 하는 식으로 냉각을 한다.

 

아예 바다에 담가 버린다면 어떨까?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젝트 네이틱(Natick)은 데이터 센터를 통째로 잠수함처럼 만들어 바다에 빠뜨린다. 차가운 해수가 효과적으로 식혀줄 것이라는 것. 방방곡곡의 어촌마을을 데이터센터화 하는 아이디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수백 년 뒤 신안 앞바다 보물선처럼 데이터센터를 건져 올리는 SF소설 줄거리가 생각나 버리고 말았다.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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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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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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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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