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와 스마트워치의 공통점.

[테크]by 김국현
모든 전자제품은 누군가의 상상에서 시작한다. 특히나 상상을 눈에 보이게 하고 이야기를 덧붙이는 공상과학 영화나 코믹은 미래를 낳는 산실이 된다. 스타트랙은 1966년 이래 휴대폰, 아이패드, 화상 전화, 웨어러블 안경 등을 미리 그려내 왔고, 딕트레이시의 스마트 시계는 미래를 목격한 듯했다. 심지어 전자 발찌마저도 스파이더맨을 생포한 악당이 그를 레이더로 감시하려고 팔찌를 강제로 채우는 장면에서 착안되었다. 스파이더맨 만화책의 그 한 컷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의 한 판사는 1983년 전자 회사에 다니던 친구에게 의뢰하게 되는데, 그 친구는 아예 NIMCOS(National Incarceration Monitoring and Control Services)라는 벤처 기업까지 창업하기에 이른다. (여담이지만 재소자들에게 가족이 사진을 보내면 인쇄해서 배달하는 서비스 등이 최근 각광을 받는 등 교화와 관련된 스타트업은 블루오션인 경우가 많다.)


작년에 국내에서 쓰일 신형 전자 발찌가 공개되었는데, 다른 전자 제품과는 다르게 마음껏 더 커지고 더 두꺼워졌다. 구형은 3G 기반 휴대 장치 및 재택 감독 장치와 연동해야 했다면, 최신 제품은 4G 독립형이다. 왠지 스마트 워치의 제품 라인업 및 발전 방향과 상당히 흡사하다. 초창기 스마트 워치는 스마트폰 등 별도의 기체가 꼭 있어야 했다.


아직 관련법 미비로 비활성화되어 있으나 신형에는 맥박 등 생체 신호 및 비명 등 위급 상황 감지 기능까지 탑재되었다. 하드웨어적인 준비를 미리 해 두고 환경이 갖춰지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활성화한다는 점은 테슬라적 접근법과 흡사하기도 하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란 전화기나 PC에서도 약간 불안할 때가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실패하여 네덜란드의 수많은 전자 발찌가 일제히 먹통이 되는 일이 발생해 버렸다. 업데이트가 시작된 지난주 목요일 아침, 발목의 모니터링 장비들은 순식간에 쓸모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갑자기 경찰 감시망이 어두워지니, 경찰은 물론 보호 관찰 단체 및 기타 사법 기관이 겁이나 우왕좌왕한 것은 당연. 발찌 착용자 다수에 예방적으로 개입하여 구금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그 용도와 사용자는 달라졌지만 모두 SF에서 시작한 만큼 스마트워치와 전자발찌는 서로를 닮았다.


스마트워치는 몸의 움직임이 덜하거나 게으르면 북돋아 준다. 게임을 하는 등 정신적으로 나태해지려는 듯하면 질타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참견을 고마워한다.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스스로 구속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 발찌를 흉물스럽고 눈에 띄게 하여서 모멸감을 주는 수치의 형벌도 범죄 억제 효과를 위해 필요하지만, 이왕에 차게 한 ‘웨어러블’로 구속 대상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교화법 역시 역발상으로 가능할 수 있다.


이탈경고뿐만 아니라 교화를 위한 피드백을 발생시킴으로써 자기 계발의 긍정적 사이클처럼 갱생 의지를 자극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새 이러한 참견에 감사함을 느끼고 인간 개조로 이어질 수 있다면 성공적인 교화일 것이다. 웨어러블 시장에서 목격되는 QS(quantified self)라는 자아 측정 문화가 범죄자의 날들로부터 벗어나 착하게 산 날들을 대신 기록해 주는 셈이다.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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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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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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