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나노가 뭐길래. AMD로부터 배우는 7나노 인생론.

[테크]by 김국현

현대 반도체는 모래에서 뽑아낸 실리콘 위에 포토레지스트라는 감광액을 발라 막을 입히고 특정 파장의 빛을 쏘아 화학변화를 일으켜 회로를 새기는 흑마술을 펼친다. 이번에 한일경제전에서 주목을 받게 된 그 포토레지스트가 없다면 반도체 공장은 필름 빠진 카메라 신세가 된다.


각 공장마다 특별 주문되는 포토레지스트가 쓰이는데, 그중에서도 삼성 화성 공장의 EUV 공정에서 쓰이는 것이 문제가 되나 보다. EUV라고 하면 말 그대로 극단적(Extreme) 자외선(UV)으로, 기존 불화아르곤(ArF) 레이저보다도 파장이 10배나 짧아 더 세밀하게 찍어낼 수 있다. 종래에는 회로를 얇게 하려고 여러 단계의 노광(露光) 스텝을 거쳐야 했는데, 이제 EUV로 다단계를 축약할 수 있으니 생산성에 큰 격차가 생긴다. EUV는 초기 설비 투자에 거액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원가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갈 수 있으면 가고 싶은 길이다. 반도체 산업이 규모의 경제인 이유다.


그렇게 도달한 미세 공정 기판에는 좋은 일이 가득하다. 이번 갤럭시 노트 10은 업계 최초의 7나노 EUV 공정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세서 엑시노스 9825를 탑재해 화제가 되었다. 같은 아키텍처인 9820에 비해 공정만 바꿨는데 속도가 빨라졌다. 7나노 EUV 공정의 경우 10나노와 비교하면 칩 사이즈는 40% 줄어들고, 전력 효율은 50%나 좋아진다. 첨단 기술에 의해 회로 굵기가 점점 얇아질수록, 이 나노 앞의 숫자가 작아질수록 열이 덜 나고, 전력 효율과 성능이 좋아진다.

7나노의 매력

대신 7나노 공정은 비싸다. 현재 주류인 14나노에 비해 두 배 가까이나 비싸다. 단계가 워낙 다중이니 원가가 높고, EUV로 단계가 줄더라도 고액의 설비투자를 감가상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나노는 강력한 존재감을 준다. 예컨대 인텔이 10나노조차 1년이나 늦어지며 겨우 도달하려는 동안, AMD가 7나노로 훨씬 먼저 치고 나가면서 성능을 과시하는 상징을 차지하는 식이다.


지금까지 AMD의 이미지는 인텔보다 약간 모자라거나 애써서 비슷해지려 하지만 어딘가 못 미더운, 그래도 싼 맛에 쓰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지난주에 AMD는 데이터 센터 CPU도 7나노 최신작을 내며 일격을 가하고 있다. 인텔이 오랜 기간 남발해온 10나노의 약속은 서버의 경우 내년에야 이뤄질 듯하다.


그 사이 AMD는 로마(Rome)라는 코드명의 새로운 7나노 서버 CPU EPYC의 신버전을 투입했다. 불과 2년 전의 1세대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성능차를 자랑했는데, 세대간 성능차는 10~20%인 것이 상식임을 고려하면, 놀라운 7나노의 위력이다. 초호기 EPYC(14나노)도 나쁘지는 않아서 0%에 가까웠던 서버 시장 점유율을 한 자릿수로 회복시켰으니, 앞으로가 흥미로워질 것이다.

7나노 전략의 교훈

여기에는 누구나 참조할만한 7나노의 전략이 있다.


먼저 첫 번째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남의 도움을 받아 협업하는 것이다. AMD는 인텔과는 달리 스스로 칩을 생산하지 않고 ‘파운드리’라고 하는 일종의 첨단 위탁 주물 공장에 맡긴다. 파운드리를 팹(fab)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이 없으니 ‘팹리스(fabless)’ 생산이라 한다. 예컨대 7나노 EPYC을 대만 TSMC의 7나노 공정에서 생산하는 것. 경쟁이 치열한 외주업체이다 보니 사실 마케팅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서 실질적으로는 인텔의 10나노와 같이 놓고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AMD 입장에서는 설계에 집중하고 생산은 가장 잘하는 곳에 맡길 수가 있다. TSMC가 벅차하면 이제 삼성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식이다.


두 번째는 모듈화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반복 활용하는 일이다. 여러 곳에 돌려 쓸만한 통제 가능한 크기의 모듈을 만들고, 이들을 합체하여 더 강력하게 만드는 전략을 취한다. 이를 ‘칩렛(chiplet)’이라 부른다. 7나노 같은 신기술은 어렵고 비싸다. 게다가 남에게 맡겨야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모듈로 만들고, 모듈로 만들기 위해 크기를 줄이다 보면 수율도 좋아진다.


이미 2017년 초대 EPYC를 봐도 하나의 패키지에 최대 4개의 CPU 다이(die, 웨이퍼에서 잘라낸 조각)를 탑재하고 있었다. 각 다이마다 8코어가 내장된다. 최근 잘 팔리는 PC용 3세대 라이젠(Ryzen)에서도 CPU 다이가 고급 버전에는 2개나 붙어 있다. 집PC가 8x2로, 16코어가 금방 된다. 이번에 발표된 최신 EPYC에는 이 CPU 다이가 8개까지도 늘어난다. 64코어가 손쉽게 달성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I/O 다이라는 별도 입출력 전문 다이가 보좌한다. 원래는 CPU 코어와 함께 있곤 했던 메모리나 보조기기 컨트롤러를 이동시키고, CPU 다이에는 정말 연산과 캐시만 남긴다. 대신 이 I/O 다이는 14나노 공정으로 만든다. 원가도 절약될 뿐만 아니라, 높은 전압이 필요한 입출력에 무리를 하지 않기 위함이니, 전략의 강약을 구분하는 셈이다. AMD 가성비의 비결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도 이처럼 중요한 것을 분리해 내는 지혜,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남의 도움을 받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AMD의 7나노 전략을 통해 배울 수 있다.

7나노 전략은 성공할 것인가?

어쨌거나 이렇게 만들어진 이 데이터 센터용 초강력 서버 CPU는 인텔이 최근에 발표한 서버용 캐스케이드 레이크에 비해 2배의 성능을 지녔고, 총 운용비는 25~50% 개선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AWS나 Azure와 같은 클라우드 업체에서 활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글 클라우드도 이 개량판을 도입 예정이라 한다. 주가는 급등했다.


그러나 아직 낙관은 이르다. 올라야 할 산이 너무나 높기 때문. AMD의 서버 시장 점유율은 이제 겨우 3%다. 성장률로 보면 엄청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0%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데이터 센터용 CPU는 무엇보다 보수적이다. 과거로부터 쌓여온 고객의 데이터와 코드를 함께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존 등 ARM 아키텍쳐로 클라우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지만, 전개 속도가 느린 데는 이처럼 이유가 있다.


하지만 AMD는 어디까지나 인텔 호환칩. 서버든 데스크탑이든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이 AMD는 ARM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을 수밖에 없다. 같은 가격에 더 많은 코어가 박혀 있는데, 서버일수록 코어 수는 중요하다. 그만큼 더 많은 세입자(VM, 컨테이너)를 받을 수 있어서다.


AMD의 7나노 전략은 이번에는 먹힐까? 분위기는 좋다. 이미 AMD 수장 리사 수는 국내에서도 ‘빛사수’, ‘갓사수’ 누님이라 불리며 인기몰이 중이다. 시장은 7나노라는 미래를 손에 쥔 AMD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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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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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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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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