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명가는 맥이 앉은 왕좌를 탈환할 수 있을까?

[테크]by 김국현
지난주 마이크로소프트 하드웨어 이벤트에서는 다양한 서피스 제품군이 대거 선보였다. 듀얼 디스플레이가 펼쳐지고 뒤로 접혀 있던 키보드가 화면에 얹히는 모습은 과감무쌍했다.


오호, 이렇게 해보겠다는 건가.


과연 '하드웨어의 명가답다'는 소리가 안 나올 수 없었다.


하드웨어의 명가라니...


본업이 아닌 부업을 더 잘한다는 칭찬은 어딘가 놀림거리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에는 ‘하드웨어의 명가’라는 별명이 오랜 기간 따라붙었는데, 분명 명명백백 소프트웨어 기업임에도 찬사는 대부분 마우스와 같은 하드웨어에 돌아갔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이들이 쓰니 군소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소프트웨어와 달리,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소품종 하드웨어는 평이 좋고 써보면 팬이 되곤 했다.


이처럼 하면 잘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운영체제 업체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하드웨어 업체를 친구 삼아 더 많은 곳에 자신의 운영체제가 퍼져 나가게 하는 편이 좋아서다. 애플처럼 ‘모두 다 내가 하겠소’하는 것보다는 확장성이 좋았고 그렇게 한때 세계를 제패했다.


그런데 이 또한 그리하는 것이 돈이 되는 시절에나 의미 있는 일이다. 애플의 새로운 수직 통합 생태계가 더 짭짤해 보인 지 어언 10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진지하게 하드웨어를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하드웨어를 포함한 전체적인 토탈 브랜드 이미지가 다른 개별 제품의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스타벅스에서 맥북을 펼쳐 놓고 우쭐한 표정으로 있다 보면, 뭔가 일하는 듯한 느낌이 충만해진다. 이 허세의 향연은 유저를 훌륭한 광고판으로 만드는 브랜드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사실 맥은 오랜 세월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쓰는 기계라는 인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파이널 컷 프로나 로직 프로, 또는 iOS 개발처럼 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창작 작업 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영상편집실과 디자이너 룸에 즐비한 아이맥, DJ 부스에서 빛나는 맥북은 그 상징과도 같았다.


이미 꼭 맥이어야 할 이유는 이미 사라진 지금에도 마찬가지다.


예술 계통은 윈도에도 훌륭한 대안들이 존재하고, 어도비 제품군 등은 오래전부터 동시 지원하고 있지만,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1990년 처음 포토샵 1.0이 맥에 등장했을 때는 맥 전용(exclusive)이었고, 포토샵은 맥의 가장 강력한 킬러앱으로 군림했다. 윈도용이 나온 것은 1993년이나 되어서였으니 그 시간차가 인식을 만든다. 지금도 일부 미국 기업들에 안드로이드가 아닌 아이폰용 앱을 먼저 내놓는 버릇이 있는데 이처럼 역사가 깊다.


킬러앱 이야기를 하자니 쿽(Quark)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그 어설픈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색감과 같은 심미적 요인, 그리고 인질이 된 과거 파일들은 창조 산업의 아무리 영세한 자영업자라도 맥을 사게 만들었다. 도구로서의 맥은 창조자와 긍정 부정 모두를 포함한 심리적 애착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인지 심지어 구인 광고에 맥북 지급을 마치 대단한 복리후생 인양 써 놓는 기업들이 많다. 직공에게 컨베이어 벨트의 기종을 자랑하는 공장 같은 우스운 일이다. 차라리 그러지 말고 어차피 기계는 자산 취득으로 잡힐 터 오히려 감가상각 3년 후 직원에게 폐품 처리한다는 뜻에서 3년 근속 후 본인 소유라고 명시하면 오히려 혹할 법하다.


창조자 중에서도 개발자의 집착은 유난히 강했다. 기본적으로 맥을 쓰지 않으면 iOS나 맥 개발을 애초에 할 수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물론 Xamarin 등 한번 짜서 안드로이드 및 iOS를 다 지원하는 개발 환경 등에서는 어찌 가능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게다가 iOS 따위 다룰 일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더라도 살아가면서 Xcode 띄워야 하는 일이 한 번도 없으리라고는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윈도 시장이 더 크니 그냥 PC에 집중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앞으로 짜야할 앱은 보통 PC가 아닌 모바일에 있다. 또 각종 개발 패키지가 맥에서는 Wine 등으로 윈도 프로그램을 빌드할 수 있게 하지만, 그 거꾸로는 고려하지 않는다. 개발자라면 으레 맥을 쓴다고 가정하는 상황이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평온히 이어지면 게을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최근 맥에서 불거진 여러 문제는 그 나태의 증거다. 맥북 터치 바는 사실상 실패했고, 버터플라이 키보드는 호오가 극명하게 갈린 채 뽑기 운도 상당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버터플라이를 과거의 맥북 키보드나 아이맥의 블루투스 키보드보다 선호하지만 마이너 의견인 듯하다) 전반적으로 맥북은 2015년 이래 이렇다 할 혁신도 변화도 없다.


심지어 맥 프로는 2013년에 2세대가 나온 후 지금껏 잠자고 있다가 최근에야 3세대가 등장했다. 여전히 엄청난 가격이다. 그 돈이면 어떤 괴물 같은 PC를 맞출 수 있는지 ‘프로'들은 알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 감성이 중요하니까.


한 때 맥은 혁신의 최첨단에 있었다. 특히 유니바디 알루미늄 맥이 시장에 준 충격은 거대했고, PC 노트북 업계는 급격히 시들어 가거나 카피캣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제 그런 패기는 맥이 아니라 다시 왕년의 명가들이 부리고 있다. 근래 HP 등의 신제품은 화면도 앞뒤로 자유자재로 꺾이며 펜 태블릿의 면모도 아낌없이 채용한다. OLED를 전격 탑재하고, 최신 CPU의 적용 속도도 빠른 데다가 소재까지 더 세련되어 있으니 근미래를 엿보게 한다. 자동차로 치자면 콘셉트카를 바로 양산해대고 있는 풍경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러한 개별 혁신이 맥북의 아성을 위협하는 일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어느새 맥북을 사서 쓰는 일이 안전해졌기 때문이다.


맥은 어느새 보수가 되어 있었다.


낯선 일이다. 다른 모든 것을 거기서 하기는 힘들어도, 내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한 단 하나의 도구를 띄우기 위해 진보적으로 선택했던 것이 클래식 맥이었다. 그런 뾰족함과 굳센 기상을 모던 맥과 그 사용자에게서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혁신을 향한 기행은 도전자들의 몫이 되었다. 요즈음 PC나 노트북은 신선한 시도가 많다. 하지만 그런 기이한 형상은 번번이 대세가 되지 못하고 마는데, 주류로 자리 잡기에는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맥이 지닌 안도감을 주지 못하고 있어서다. 또한, 윈도나 리눅스가 아니면 안 되는 무엇인가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러한 데다가 윈도에서는 하기 힘든 일의 목록은 줄지 않는다. 윈도는 최근 서브시스템에 리눅스를 전격 도입하는 등 유닉스 계열 환경이 필수인 개발자를 포섭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사용성이나 편의성 면에서 자기 자신이 곧 유닉스 환경인 리눅스나 맥에는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


답보에 빠진 전환기.


과연 컴퓨터의 최전선을 맥은 내어주게 될까?


모두가 서로 맥의 대안이 되려 총력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음은 컴퓨터 애호가에게는 여전히 안타까운 일이다.


PC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맥의 대중화 이전 PC의 황금기가 가끔 생각난다. IBM은 씽크패드의 신화를 썼고, HP는 좋았던 시절의 미국 산업 디자인의 교범과도 같았다. 골지 줄무늬가 들어간 플라스틱은 단단하고 우아해 보였다.


그 뒤로는 소니 바이오나 도시바, 심지어 후지쯔 등이 윈도 노트북 전성기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일본 가전 업계는 붕괴되었고, 씽크패드는 중국에 팔렸다. 그리고 지난주 HP는 7000~9000명을 감원하기로 선언한다.


포스트 맥의 왕좌를 차지할 후보가 보이지 않으니 마이크로소프트라도 나서 보려는 모습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아, 그런데, 이 모두 창조자를 위한 기기에 한정된 이야기다.


여전히 공인인증서와 액티브 X로 점철된 한국에서 살아가는 평균적 일반인이 단지 스타벅스에서 폼 내기 위해 맥을 샀다가는 정작 일상과 업무의 진짜 일처리를 하러 피시방을 들락날락해야 하는 촌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큰 일이다.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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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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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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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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