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이탈 사인을 구글과 애플이 기억하는 날

[테크]by 김국현
구글이 Fitbit을 인수했다.


Fitbit은 2015년 상장 당시만 해도 벤처 성공신화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IPO 직후 50 달러 이상 치솟던 주가는 수년간 잇따라 신저가를 갱신했다. 올해 중반에는 3달러선마저 지켜내지 못했으니 화려하게 망해가던 참이었다.


다행히 통 큰 쇼퍼 구글이 후하게 쳐주겠다며 등장했다. 이번 거래로 한국계 창업자는 1500억 원가량의 엑시트를 할 듯하다. 한 때 잘 나가던 시절 6000억 원 이상의 평가에 40세 미만 억만장자의 대표주자로 거론되던 때를 떠올리면 속상하겠지만, 정점 이후에 입사해 내리막만 걷던 다른 직원 들을 생각하면 두툼하게 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할 터다.


구글 입장에서도 전부터 쇼핑 카트에 넣어는 두었던 물건을 핼러윈 세일가로 득템 할 수 있었던 셈인데, 해도 해도 잘 안 되는 것은 역시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인가 보다. 구글은 2011년에 모토롤라 스마트폰을, 2013년에 Nest를, 그리고 2018년에 HTC 스마트폰을 인수했다. 또 올해는 Fossil의 스마트워치 부문을 4천만 달러를 주고 사들였는데, 돈으로 무언가가 해결이 되기는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큰 손 입장에서는 모두 다 컵의 물 한 방울 수준이니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다.


헐값이 된 Fitbit의 쇠락에는 샤오미 등 저가 경쟁자의 등장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강렬한 치명타는 상장하던 해 등장한 애플 워치다. 당시 Fitbit은 본격 스마트워치였던 애플 워치와는 가는 길이 다르다며 애써 태연 한척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 시장이 전체적으로 망조가 들었다. 애플 워치가 궤도수정을 감행, Fitbit의 주로(走路)에 진입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스마트 워치에서 인체 센서로

스마트워치 시장은 알람, 패션, 그리고 마지막으로 센서 기능을 우리에게 팔았다. 하지만 소비자는 추가적 알람 따위 관심 없었고, 패션은 금칠을 하고 에르메스를 데려와도 그저 기크하게 보였다. 그 결과 스마트워치 시장은 성장을 멈췄고, 포스트 스마트폰의 총아라 생각하며 투자를 감행했던 기업들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군소 업체들은 여기저기 흡수되고, 시장은 정리되기 시작했다. LG처럼 구글만 믿고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들도 모두 별 볼일 없이 퇴각했다. 어디에서도 킬러앱도 히트작도 나와주지 않았으니, 안드로이드의 성공 공식은 재현되지 않았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웨어는 시계에서 자꾸 안드로이드 흉내를 내려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심기일전 WearOS로 이름까지 바꿨지만, 너무 늦었다. 스마트워치는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다만 센서를 통해 내 몸을 추적하는 기능만큼은 성장했고, 이는 피트니스의 바로 그 ‘피트(fit)’에 집중한 Fitbit의 존재의미이기도 했다. Fitbit은 그렇게 새로운 시장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 애플의 등장 전까지는.


애플 워치는 조니 아이브적으로 패션 피플의 잇템으로 시장에서 론칭했지만, 그 길이 아니었음은 1년 만에 깨달았다. Fitbit의 강점이었던 건강 측정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구버전을 염가에 유통시키는 전략으로 저가격 피트니스 트랙커의 성장 가도에 편승한 것이다. 특히 올해는 5 시리즈 출시와 동시에 3 시리즈의 가격을 대폭 하락시켰는데, 그 가격선이 Fitbit의 야심작과 완전히 겹친다. 많은 리뷰어들이 Fitbit 신작을 사느니 구형 애플 워치를 사라라고 당연히 이야기하게 되었으니 쓰라린 일이었다.


그 결과 애플 워치는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며 성장하고, Fitbit은 2위에서 쭈그러들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3위의 성장세였다. 삼성은 구글의 WearOS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누구나 안될 것이라고 말했던 자사의 타이젠 OS로 시계를 만들었는데, 이는 영리한 일이었다. 스마트워치에는 앱 생태계 따위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심지어 스마트폰에서조차도 사용자들이 앱을 찾아 깔지 않는 시대다. 기본 제공하는 순정 앱만 쓰고, 귀찮게 앱을 깔거나 하지 않아 제조사의 순정 역량 대결로 치닫고 있다. 이 경향성은 스마트워치에서는 더했던 것이고, 삼성이 쌓아온 주변기기 제조 역량과 갤럭시의 브랜드력이 효험을 발휘했다.


그렇게 구글은 스마트워치 1,2,3위 중 어디에도 끼어들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이제 사람들이 스마트워치를 사는 이유는 명확해졌다. 스마트워치는 논리적으로는 ‘스마트'를 가장하고 정서적으로는 ‘워치'인척 하지만 그 실체는 내 몸에 매다는 ‘센서’였다. 사람들은 멋을 내고 일을 하려 스마트워치를 차지 않는다. 구글과 애플의 애초 비전과는 달랐다.


그저 나를 측정하기 위해, 기계로부터 삶의 독려를 받기 위해 귀찮아도 차는 것이다. 시간 따위 알려주지 않더라도 찰 것이다. 그 좁은 화면으로 한가롭게 앱을 두드릴 이유는 없다. 다만 내 생체 신호를 기록하고 있기에 아무리 흉해도 아무리 귀찮아도 몸에 달고 다닌다. Fitbit적 비전이었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개선될 수 없다. 건강이 염려될 때, 운동이라고 해보려 할 때, 저렴하게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니 관심이 가고 시장이 생긴다. 심박수의 변화를 안다면 헉헉되는 나를 조금 더 채근할 수 있다.


이 비전을 따라 Fitbit은 심부전이나 수면무호흡과 같은 병리마저 막을 수 있도록 본격적 건강관리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애플의 자본력과 기술력 역시 그 방향으로 어느새 설정되었음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자 빛이 바래기 시작된다. Fitbit의 위기는 그렇게 어느 날 찾아왔다.


초조해진 것은 구글도 마찬가지였다. 이 별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데이터로 변환되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의 바이탈 사인까지 더해지려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 소중한 정보 덩어리를 애플이 독차지할 것만 같다. 개인 정보에 민감한 애플이기에 모두 다들 믿고 맡긴다. 정보가 원자재인 사업체 구글로서는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제 1억 개나 팔린 FitBit에 눈이 간다. 물론 그중에서 활성 상태는 반절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 모수는 상당하다. 게다가 아직 2위다. 구글의 웨어러블 사업을 되살릴 발판도 될 수 있다. 데이터도 구글 클라우드로 다 넘길 수 있다. 애플 워치가 아무리 잘 나가간다 해도 아이폰에서 밖에 안되니 기회는 크다.

내 생명 데이터의 관리자들

"내 생명 데이터를 애플이 아닌 구글이? 괜찮을까?!"


소비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추측을 염려한 구글은, 콕 집어서 Fitbit을 인수해도 그 데이터를 광고에 쓰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고맙기는 한데, 광고는 너무 좁은 의미다.


건강이라는 나의 가장 부끄럽고 쑥스러운 데이터를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에 더하지 않겠다는 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미 구글의 손바닥 위에 있다. 검색어를 굳이 입력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자연스럽게 늘 나를 알고 있음은, 그리고 나의 필요를 미리 알고 있음은 얼마나 큰 어드밴티지인가.


심박수가 이유 없이 빨라진 어느 날. 어느 장소가 어떤 사건이 어떤 뉴스가 아니 어떤 물건이 어느 누구가 내 심박수를 빠르게 했을까, 그 설렘에 미래의 기회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굳이 지금 광고 하나 보여줘서 일을 그르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가 우연찮게 생명 신호의 흐트러짐을 발견하고 개입해서 목숨이라도 구해 주게 되는 날, 그 데이터 사용은 시민의 허가권을 얻을 것이다. 그 날은 머지않아 올 것이다.


웨어러블 인체 센서 시장은 커지고 있다. 이제 심박과 심전도(한국에서는 규제 탓에 막아 놓음)에 이어 남은 것은 혈당 및 혈압과 같은 조금 더 친근한 생명의 수치들이다.


우리는 새로 산 컴퓨터의 벤치마크를 하고, 수시로 작업 관리자를 열어 병목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열어 보곤 한다. 우리 몸에도 그러한 모니터가 달린다면 아마 수시로 열어 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니터링이 건강을 약속한다면 웨어러블이 아무리 거추장스러워도 우리는 착용할 것이다.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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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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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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