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속 겨울왕국. 먼지가 눈밭처럼 쌓일 때.

[테크]by 김국현
컴퓨터 뚜껑을 수년 만에 개봉했을 때, 그 안에 펼쳐진 겨울왕국적 풍경에 경악한 적이 있다. 눈꽃 같이 내려앉은 먼지는 햇볕을 받으니 반짝이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그 이세계적 풍경에 소리를 내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CPU 쿨러 냉각판은 그 골마다 먼지로 가득했고, 전원 파워 유닛은 작은 통기 구멍마다 전부 회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도 용케도 큰 문제 없이 24시간 서버로 돌고 있었다. 심지어 컴퓨터 뒷면에는 컴퓨터가 다시 뱉어낸 먼지의 파편들마저 흩어져 있었다. 커튼이나 의류, 방바닥 등 먼지 발생원에 가깝거나 가동 시간이 길수록 먼지의 두께는 깊어진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현대의 기판들은 먼지에 상당히 강하다. 놀라울 정도로 두껍게 이불이 되어 덮여 있어도 단지 먼지 때문에 고장이 나는 일은 드문데, 일상 속 먼지에는 금속성분이 특별히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먼지로 쇼트가 날 정도의 환경이라면 아마 사람의 폐를 먼저 걱정해야 할 터다.


실제로 담배를 피우는 방에서는 컴퓨터 속 먼지의 색도 점점 갈색이 되어간다. 컴퓨터 안에 쌓인 먼지로 내 폐에 쌓인 먼지를 가늠할 수 있는 셈이다. 현장이나 야외에 설치된 산업용 PC의 먼지 이불 두께는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하지만 옷이나 인체 등에서 발생하는 가정 내 생활먼지도 쌓이면 양이 꽤 된다. 컴퓨터 안의 팬들이 흡기를 계속하니 가정내 집진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판이 먼지에 강하다고 해도 시스템 전체가 강하지는 않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 먼지 이불이 만들어내는 열이다. 특히 CPU 부위가 소복이 덮여 있다면 CPU 온도는 10도쯤은 우습게 올라간다. 온도가 올라가면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스로틀링이 걸리게 되므로 성능 급강하가 두드러지게 체감되기도 한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열폭주, 그러니까 시스템이 멈추거나 꺼지게 된다. 또 기판 손상의 가능성마저 제로인 것은 아닌 것이 솜을 감싸고 있는 셈이므로, 습기나 결로 등 여하 간의 이유로 솜이 축축해지기라도 하는 날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너무 건조하면 먼지의 솜사탕들은 정전기의 보고가 되기도 한다.


먼지라면 노트북 또한 예외가 아니고, 동체 공간이 좁아 더 심각하기도 하다. 제품 중에는 본체 하부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제품들이 있는데, 이 경우 침대나 무릎, 배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곤 하는 노트북의 특징상 이 하부를 통해 섬유 먼지를 들이켜게 된다. 게다가 노트북 쿨링팬은 좁은 통로로 그 먼지 섞인 공기를 유통시키기 때문에, 팬 앞에 말 그대로 융단이 짜여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분해를 해서 그 섬유조직을 걷어 내기 전에는 아예 팬이 돌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바로 청소다.


노트북처럼 분해가 만만치 않고 내부의 먼지가 빠져나갈 곳이 없는 경우, 먼지 제거용 에어 스프레이를 아무리 뿜어주어도 효과가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진공청소기를 흡기구에 밀착시켜 빨아주면 효험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팬이 역방향으로 회전하게 되므로 설계가 탄탄하지 못한 제품의 경우 망가질 수도 있으니, 이미 보증이 끝나고 문제가 생겨 이판사판인 경우에 하도록 하자.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방식으로 델과 HP 등의 노트북들은 꽤 여럿, 여명을 늘려 주었다.)


데스크탑에서도 팬의 청소를 잘못하면 팬의 회전축에 먼지를 불어넣어 오히려 혹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재수가 없으면 베어링이 고장 나기도 한다. 청소 후 굉음이 시작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진공청소기는 기판 가까이에서는 정전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 기판의 먼지는 되도록 불어내는 편이 좋은데, PC 수리 전문가들은 에어 스프레이 소모가 많다보니 블로워(Blower, 현장 용어로는 브로워 또는 브로와)를 스프레이 캔 10개 값 정도를 모아 장만하기도 한다. 평범한 우리는 그럴 것까지는 없고 3,000원짜리 스프레이와 나무젓가락에 휴지 등을 끼워서 구석구석 청소해주기만 해도 좋다. 솔을 가끔들 쓰기도 하는데, 이러한 마찰 행위 역시 정전기를 발생시키므로 자제하는 편이 좋다.


이처럼 이 모든 작업이 때로는 PC를 조립하는 일만큼이나 귀찮고 또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실제로 청소만 했는데 고장 나는 일도 발생하곤 하는데, 일이 잘 안 풀리려면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대개 큰 무리 없이 개운한 컴퓨터를 다시 만나게 되니 환절기 대청소 시즌에 컴퓨터 청소도 도전해 보자.


깨끗함은 깨끗할 때 유지하는 편이 좋다. 데이터 센터에서는 방진 기능을 매우 중시하는데, 한번 가동된 서버는 계속 돌아야 해서다. "잠시 멈추고 청소 좀 하겠습니다."와 같은 한가한 소리는 하기 힘들다. 따라서 전산실 자체를 클린룸으로 꾸미고 문도 이중문으로 만든다. 서버랙(Rack)에도 방진 기능을 탑재하기 위해 IP 또는 NEMA 등급을 체크하기도 한다. 일단 데이터 센터에 들어간 기계들은 고장이 나거나 부품 교체시처럼 필치 못한 사정에만 청소를 더불어 시행하는 룰을 지니곤 한다. 그러나 5년 이상을 가동해도 특히 청소할 것이 없을 정도로 깨끗한 것이 정상적 데이터 센터다.


하지만 집이나 사무실이 클린룸이 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컴퓨터에 마스크를 씌워주는 방법이 있다. 고급 케이스 중에는 자체 먼지 필터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만약 없다면 케이스에 숭숭 뚫린 공기 구멍에 스타킹이나 창문용 먼지 필터를 테이프로 붙여 주는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주방과 같이 기름 먼지가 흐르는 곳에서는 멀어질수록 좋다.


만약 집에 모기나 바퀴벌레가 함께 서식 중이라면 컴퓨터 케이스를 열 때 이들의 시신을 만날 각오도 해야 할 수 있다. 왜 이들이 그곳까지 가야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열대 지역 등에서는 흔히 보이는 작은 도마뱀 게코(Gecko)가 PC 안에 들어가는 말썽을 피우는 일마저 있다. 먹성과 습기와 크기 그 모든 면에서 벌레와는 비교되지 않는 리스크지만, 그들은 그렇게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다.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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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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