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진보, 업그레이드 보수?

[테크]by 김국현
업그레이드 진보, 업그레이드 보수?

가을은 업그레이드의 계절. 지난달에는 윈도우 10 1주년 판(Anniversary Update)과 안드로이드 누가(Nougat, 7.0)가, 지난주에는 iOS 10, 금주는 macOS 시에라 업그레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풍요로운 계절이다.

 

업그레이드를 대하는 자세를 보면 성격이 나온다.

 

우선 신버전이 나오면 참을 수가 없는 이들이 있다. 나오는 즉시 설치해야 하고, 개발자 에디션이나 베타 버전을 찾아서 설치한다. 자동 업데이트를 기다리지 못해 GM(골드 마스터, 최종 버전이라는 뜻으로 애플 진영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 마이크로소프트 쪽에서 널리 쓰이는 RTM, Release To Manufacturing과 사실상 같은 말)버전을 별도 입수한다. 새로운 것은 무조건 만져 봐야 직성이 풀리고, 먼저 써봐야 마음이 개운한 얼리어댑터의 마음. iOS와 달리 안드로이드는 제조사가 풀어줘야 깔리는 법이지만, 이를 참지 못해 사제 버전의 나이틀리(Nightly, 매일 밤 새로 갱신되는 버전)를 찾아 깔 정도로 진보적인 이들도 적지 않다.

 

보수적인 이들도 있다. 지금 쓰는 환경에 어지간한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좀처럼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다. 업그레이드가 내 생활에 가져다줄 혜택과 야기할 혼란을 차분히 비교할 냉정함을 지닌 이들이기도 하다.

 

업계 입장에서는 모든 소비자가 진보적일수록 좋다. 윈도우처럼 유료 업그레이드 모델인 경우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고, 무료라고 하더라도 기업이 궁극적으로 설정한 비즈니스 모델로 점진적으로 이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프트웨어에는 늘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결함을 리콜 없이 치유할 수 있는 비책이 업그레이드이기도 하니, 업그레이드를 해주지 않는 소비자가 업계는 부담되는 것. 그렇게 잔존하고 있는 오래된 소프트웨어는 업계 용어로는 레거시(legacy, 유산)라고 불리는데, IE6나 XP를 아직 쓰시는 구매 고객이 있다면 이들을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에 대한 지원은 적잖은 부담과 비용이다.

 

하지만 처지 바꿔 생각해 보면 “업그레이드를 했더니 망했어요.”와 같은 체험이 인생 속에 있었기에 보수적 마음이 생기는 법. 윈도우 비스타 등의 흑역사가 대표적이었다.

 

특히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아닌 응용 프로그램은 업그레이드했다고 좋다는 보장이 없다. 예컨대 아래아한글도 2010 버전이 보통 쓰기에 제일 무난한 식이다. 어떤 패키지 소프트웨어들은 버전을 거듭할수록 몬스터가 되어 가곤 한다.

 

업그레이드는 최악에는 기계를 벽돌로 만드는 무서운 일. 진행 중 별다른 신호 없이 화면이 꺼졌을 때의 두근두근함은 중독성이 있다. 따라서 일반인은 공식 업그레이드 파일 공개 후라도 최소 2시간 정도는 기다리는 것이 좋다. 이번 iOS 10에서도 처음 올려뒀던 파일이 폰을 벽돌로 만드는 소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내는 쉽지 않다.

 

나도 보수적이 되고 싶은 마음에 윈도우 10 1주년판은 ‘윈도우 업데이트’가 자동으로 밀어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제조한 하드웨어를 쓰고 있으니 바로 될 줄 알았다. 결국, 한 달 넘게 기다리다 엊그제 수동 업데이트를 해버렸다.

 

마음속의 보수와 진보는 이 가을에 이렇게 서로 갈등 중이다. 

20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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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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