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레드, 혹은 빨강의 마케팅.

[테크]by 김국현

애플의 3월 발표는 싱거웠다. 기대했던 컴퓨터들의 업그레이드는 없었다. 하지만 대신 빨간 아이폰이 등장했다.

 

프로덕트 레드 - PRODUCT(RED)™. U2의 보노가 대표인 이 단체. 수익금 일부가 세계의 에이즈·결핵·말라리아 대책 기금으로 기부되는 기특한 프로그램. 특히 이 지원으로 태아로의 HIV 감염을 막는 의약품이 보급될 수 있게 되었던 만큼 이기적 지름신도 잠시나마 소비의 보람으로 느끼게 한다. 애플이 앱스토어의 앱 들을 빨갛게 물들이며 동원하는 등 매년 후원에 열심이지만, 2008년에는 빌 게이츠와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이 빨간 윈도우 비스타와 빨간 컴퓨터를 들고 함께 광고 사진을 찍어줄 정도였다.

 

그런데 처음 빨간 아이폰의 사진이 유출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인을 위해 골드 모델을 등장시킨 애플이니만큼, 이 역시 빨강을 워낙 좋아하는 중국인을 위한 마케팅 전술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억측도 없지 않았다. 

 

열어 보니 ‘그게 아니다’였지만, ‘정말 그게 아닌가?’를 두고 지금 세계가, 특히 중국 내가 시끄럽다. 흥미롭게도 정작 중국의 애플 사이트에는 이 ‘프로덕트 레드’ 캠페인에 대한 언급 없이 그냥 이제 “더 홍색이 되었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빨강을 좋아하는 중국인을 위한 제품이라는 듯이. 

프로덕트 레드, 혹은 빨강의 마케팅.

중국에는 자선법규정이 있어서 설령 자선(慈善)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외국 조직이 자국내에서 영리 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러지 않아도 중국에서는 젊은 층에서 에이즈 인구가 줄지 않아서 고민인데, 중국 정부는 이를 지나치게 개인적 원인으로 환원시켜 질타를 받아 왔다. 게다가 프로덕트 레드가 한 때 인스타그람에서 달라이 라마를 피쳐링한 적도 있다. “싸우자는 거지요?”라고 시진핑이 물을 것만 같은 상황. 이래저래 시끄러운 탓인지 이 세계적 기부 프로그램은 적어도 중국내에서는 정말 억측처럼 지역 특화된 컬러 마케팅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그나저나 매력적인 색상 빨강으로 온갖 제품을 되살아나게 하면서 이를 또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촉매로 쓴 프로덕트 레드의 아이디어는 대단하다. 

 

실제로 빨간색이 성적 매력을 부각한다는 살마 로벨씨의 연구 결과가 <센세이션>이란 책으로도 출간된 적이 있다. 빨간색은 섹스를 상징하고, 우월함, 높은 지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선거운동을 하면 지지율을 올리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은 믿거나 말거나 정설이 되고 있다. 

 

정말 이 색깔이 내게도 매력적이었나 나의 지난 소지품들을 되돌아보니, 좋았던 시절의 IBM 노트북의 트랙포인트가 떠오른다. 흔히 ‘빨콩’이라 불리는 키보드 사이의 고무. 요즈음은 맥북의 널찍한 트랙패드가 빨콩보다 편해졌지만, 그 빨간 고무를 만지면 내 커서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인기에 촉발, 다른 업체들에서 다른 색의 콩들도 많이 등장했지만 검은 키 사이에 우뚝 솟은 빨콩의 존재감만은 따라갈 수 없었다. 특히 약간 까슬까슬하던 예전의 볼록한 빨콩의 손맛은 아직도 그립다. 그 추억을 잊지 못해, 지금은 레노보가 되어 버린 그 업체의 태블릿용 블루투스 트랙포인트 키보드를 구매했는데, 세상에나 기계식이 아닌 광학식이었다. 빨콩 가운데 검은점이 있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이번에 애플은 폰 뿐만 아니라 케이스에서 헤드폰까지 여러 레드 시리즈를 내놓았다. 만약 에어팟의 레드 버전이 있었다면, 에어팟을 하나 더 사고 말았을 텐데 참 다행이다.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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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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