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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SNS 장악 보고서’를 장악한 이명박?

by한겨레21

2011년 국정원 ‘SNS 선거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보고서 파문… 

MB가 국가기관 활용한 여론 조작에 어느 정도 개입했느냐 밝히는 게 관건

‘SNS 장악 보고서’를 장악한 이명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015년 2월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항소심 선고를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종북 교육으로 포문을 열고 블랙리스트로 길을 닦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사상 개조 프로젝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좌절됐다. 지난 7월10~11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국가정보원 ‘SNS 장악 보고서’는 그 좌절한 기획의 민낯을 보여준다. ‘SNS 선거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이라는 제목의 SNS 보고서는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국정원 선거 개입, 군 사이버사령부 선거 개입 등의 헌법 유린이 하나의 기획 아래 일사불란하게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SNS 보고서는 <한겨레>와 인연이 깊다. 2011년 12월14일 <한겨레21>은 “디도스 공격 금전거래 있었다”고 보도했다. 디도스 공격의 배후로 의심되던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의전비서 김아무개(30)씨와 공격을 수행한 해커들 사이에 1억원의 수상한 돈거래가 있었고, 경찰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했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이 기사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비서’들의 왜곡된 충성심의 결과라는 애초 경찰 수사 발표를 뒤집은 것이다. 이어 “청와대 지시로 경찰 수뇌부가 (금전거래·청와대 행정관 개입 의혹을) 덮었다”는 추가 보도를 통해 사건 수습 과정에서 청와대가 움직였다는 사실이 공개됐고, 이 보도는 결국 디도스 특검이 출범하는 길을 텄다.

 

당시 특검은 보도에 근거해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 ㄱ씨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번에 나온 ‘SNS 장악 보고서’는 그 무렵 특검에 입수된 것이다.

 

당시 특검은 고위 관계자를 <한겨레21>에 보내 자료를 요청할 만큼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한겨레21>은 선관위 디도스 사건 특종에 취해, 특검에서 압수한 SNS 보고서에 접근할 생각은 못한 채 취재를 마무리했다. SNS 보고서에는 “2012년 총선·대선(19대 국회의원 선거, 18대 대통령선거)을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역량을 총동원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장악해야 한다”거나 “유명 인물, 다양한 매체, 온·오프라인 작업을 총동원해 정부가 국민의 마음에 침투, 머릿속 생각을 바꾸자”는 내용이 담겼다.

국민 머릿속을 바꾸려는 구체적 활동 지침 

보고서에 담긴 제안은 곧 실행에 옮겨졌다. 보고서가 나온 2011년 11월 원세훈 국정원장은 SNS 대응 강화를 지시하고, 이듬해인 2012년 2월에는 국정원 심리전단을 3개팀에서 4개팀으로 확대했다. <한겨레>가 입수해 보도한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방향’ 문건이 작성된 것도 이 시기다. 실제 관(국정원)과 함께 군(군 사이버사령부)은 이 무렵부터 전면적 여론 조작에 뛰어든다. 만약 당시 SNS 보고서가 보도됐다면 국정원 등의 선거 개입 자체는 막을 수 없었을지 몰라도, 2012년 대선 때처럼 민·관·군이 총동원돼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SNS 보고서가 쉽게 실행에 옮겨진 것은 ‘국민 머릿속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 지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 절대 우위 구조인 트위터 파고들기와 SNS 인프라 구축’이라는 제목 아래 “팔로어 확보를 통해 범여권의 트위터 내 여론 영향력·점유율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 총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단기간 내 인위적 팔로어 늘리기(인터넷 회자 중인 ‘팔로어 늘리는 비법’ 등 활용시 충분히 가능) 방안을 추진하라”는 등의 방법론이 제시된 게 대표적이다. 실제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에서 이 지침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과 군 선거 개입 뒤에 청와대 

2013년 11월 <한겨레> 보도 “군 사이버 요원 ‘워킹맘 코스프레’에 7만여 명이 속았다”를 보면, 이아무개 중사가 어떻게 7만7천여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언으로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중사의 트위터는 주로 직장생활의 고단함이나 유머, 취미 등의 글로 주목을 끌었고 정치적으론 중도보수적인 논조로 외연을 넓혔다. 트위터, 댓글 등 선거 개입 여론전을 수행하는 중에 “군인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게 되어 있기 때문에 대선에 개입해선 안 되죠”라는 글을 올릴 만큼 치밀하고 대범했다. 심리전을 펼치는 계정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는 국정원 직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SNS 보고서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조직적으로 이뤄진 여론 조작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국정원, 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재판에서 법원은 2012년 당시 총선·대선에서 국정원이 ‘독자적으로’ 트위터 및 댓글 활동을 펼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SNS 보고서를 통해 국정원이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SNS 관련 사항을 보고했고, 최소한 정무수석이 이를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2013년 11월 “국정원이 사이버사령부에 심리전 지침 내렸다”는 보도를 통해 국정원과 군의 선거 개입이 개별적 움직임이 아닌 조직적 지휘·통제 아래 이뤄졌다는 것을 보도했다. 실제 군사법원은 2014년 12월 “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은 연 전 사령관이 보직을 마치고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근무할 당시 ‘내곡에서 온 정보가 있다. 시간 되실 때 전화로 말씀드리겠다’거나 ‘국정원 국정조사 관련 깊이 생각해보고 대처 바람’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 지금까진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국정원과 군이 정보를 주고받았다면 두 정보기관을 동시에 조율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었다고 추정해왔다. 

적폐 청산 이제 막 시작됐다 

SNS 보고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아우르는 프로젝트의 전모를 밝혀낼 첫 단추일 뿐이다.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기관 등을 활용한 정치 개입과 여론 조작에 어느 정도 개입했느냐를 밝히는 것이다. 나아가 드러나지 않은 헌법 유린 사례를 샅샅이 찾아내야 한다. 한 예로 <세계일보>가 SNS 보고서에 이어 이튿날 공개한 ‘우상호, 좌익 진영의 대선 겨냥 물밑 움직임에 촉각’ ‘2040세대의 대정부 불만 요인 진단 및 고려사항’ ‘10·26 재보선 선거사범 엄정처벌로 선거질서 확립’ 등 세 문건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 의원 문건은 국정원이 유력 야당 정치인을 사찰했음을 추정하게 한다. 또 10·26 재보선 관련 문건을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정봉주 전 의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주진우 <시사IN> 기자 등의 수사를 독려했다는 것도 사실로 확인됐다. 국정원은 보고서에서 “수사 독려 사실은 보안에 부쳐야 한다”고 언급해 사안이 정치적·법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서훈 국정원장은 7월11일 SNS 보고서가 국정원의 것임을 인정하고, SNS 보고서 조사 방침을 밝혔다. 국정원을 상대로 한 적폐 청산은 이제 막 시작됐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