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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공범자들 민낯 보여주고 싶었다”

by한겨레21

공영방송 몰락 10년 담은 다큐영화 연출한 최승호 PD

“저항의 기록이자 앞으로의 권력에 보내는 메시지다” 

“공범자들 민낯 보여주고 싶었다”

두 번째 다큐영화 <공범자들>을 연출한 최승호 감독.

최승호 PD가 복도 끝에 서 있다. 그의 시선은 오피스텔 사무실 문 하나를 향해 있다. 마침내 문이 열린다. “(둘이) 만났다고 정윤회가 이야기하거든요.” 안광한 전 MBC 사장이 질문을 외면한 채 등을 돌려 걸어간다. “정윤회씨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 답을 해주셔야죠.” 역시 질문에 답하지 않고 건물 비상구로 향한다. “MBC 사장이었잖아요. 공인이잖아요.” 질문하는 이는 숨 가쁘고 도망가는 이는 찌질한 ‘오피스텔 추격전’. 안광한 전 사장은 2012년, 인사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직접 해고시킨 최승호 PD에게 도리어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댄다. “사람을 억지로 여기까지 끌고 내려왔어. 폭력을 행사한 거야.”

“공범자들 민낯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안광한 전 MBC 사장에게 ‘정윤회와 만난 사실’ 등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쫓아가는 최승호 PD

영화 <공범자들>의 한 장면이다 . MBC 해직 PD 최승호가 연출한 두 번째 다큐멘터리영화다. <공범자들>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MBC와 KBS 등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범인’들을 정면으로 쫓아가 비추는 영화다. 최 PD가 쫓는 ‘공범자들’은 하나같이 자기 책임을 모른다. MBC 법인과 김재철·안광한 전 사장, 김장겸 현 사장, 백종문 부사장, 박상후 시사제작국 부국장은 영화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초상권을 침해한다며 7월31일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했다. <공범자들>은 8월17일 개봉한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법원 심리는 8월11일이다. 최승호 PD를 서울 중구 정동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났다. 

“제 역할 하는 공영방송 없다”

김장겸 현 MBC 사장 등이 <공범자들>이 자신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공범자들>은 ‘이명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MBC·KBS 두 공영방송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국민이 입은 피해는 무엇인지 당사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 공영방송의 독립성, 공정성이 어떻게 훼손돼왔는지를 기록했다.

 

<공범자들>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젠가.

 

지난해 12월,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였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선이 있을 것 같았다. 정권이 바뀔 텐데 사장 임기가 정해진 공영방송은 ‘동토의 왕국’처럼 남아 바뀐 세상에 민폐를 끼칠 것 같았다. 이 상황을 타개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민들은 ‘공영방송 회복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다. ‘공영방송 없어져도 삶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삶에 지장이 많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부 이후 일어났던 대형 사건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제대로 정리하고 지나간 것이 별로 없다. 천안함 사건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제’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도 규명되지 않았다. 2012년 대선도 조작됐다고 하는 판이다. 2005년 MBC 에 있을 때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을 보도했다. 그때 인터넷 여론의 98%가 프로그램 방송을 반대했다. ‘방송하지 마라’ ‘ 없어져야 한다’는 여론의 압력이 있었고 광고도 다 없어졌다. 그렇지만 방송이 나간 뒤 대부분 방송 결과를 수용했다. 학계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작’이라 발표했고, 사법부도 재판을 통해 결론지었다. 한국 사회가 그걸 토대로 한 단계 도약했다. 지금은 그 역할을 하는 공영방송이 없다. 세월호 참사 원인도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이 다각도로 조명하며 사회가 거기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극복해야 하는데 안 됐다. 그뿐인가. 단식 중인 세월호 유족과 그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유저’들을 50 대 50으로 보도했다. 사회 상규를 완전히 일탈한 행태를 정상 범주에 넣어 MBC가 보도하고, 조·중·동이 보도하고, 종합편성채널이 보도했다. ‘일탈 행위’가 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도착적 현상이 사회 주요 정서가 됐다.

 

최승호 PD는 ‘공영방송 정상화 운동’에 더 많은 시민이 공감하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공범자들>을 만들었다. 그는 영화에서 두 가지를 기록한다. ‘공범자들’과 ‘저항자들’. 영화 시사회장에서 관객은 ‘저항자들’이 나올 때마다 울고 웃었다. 암투병을 하는 이용마 해직 기자의 모습이 나오자 안타까워했고,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페이스북 퍼포먼스로 징계를 받은 김민식 PD와 연대하는 MBC 구성원들에 박수쳤다. ‘공범자들’이 나올 때는 탄식하다가 그들의 뻔뻔한 태도에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공범자들 민낯 보여주고 싶었다”

최승호 PD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질문하는 장면. 최승호 피디는 이 만남에서 ‘언론을 망친 장본인이라는 평가가 있다’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기다렸고 질문했다.

뻔뻔한 그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등장하자 관객이 웅성웅성하더라. 오랜만에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그날, 질문하기 전에 많이 고민했다. 이런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게 경호원 때문이다. 틈을 주면 바로 저지당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 인상을 주면 대꾸도 안 하고 차로 들어가버린다. 최대한 공손하게 악수 정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끌어내려 애썼다. 그래야 질문을 던질 수 있으니까. 악수하자마자 ‘언론을 망친 파괴자다’라고 질문하는 게 어렵다. 어렵다보니 말을 좀 버벅거렸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매복해서 기다렸다가 질문하는 ‘엠부시 인터뷰’가 쾌감은 있지만 진실을 밝히는 저널리즘은 아니다. 의 ‘줄기세포 조작’ 에서 볼 수 있던 PD 저널리즘과 <공범자들>에서 보여주는 ‘액션 저널리즘’은 결이 다르다.

 

사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다큐영화의 관점에서 보면, 항상 피해자 쪽을 많이 보여준다. 가해자 쪽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공범자들>을 만들면서 그 사람들에게 새로운 답변을 받아내기보다, ‘이 사람들이다’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이들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입김에 따라 한국의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한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관객이 이들의 캐릭터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책임에 대한 인식이 없다. ‘최승호, 박성제는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말한 녹취록이 있는 백종문 MBC 부사장은 내가 질문하는데 “방송의 미래를 망치지 말라”고 말한다. 방송의 공정성을 망가뜨리고 방송의 독립성을 해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방송의 미래를 망치면서 나한테 도리어…. 이명박 전 대통령도 공영방송 훼손에 대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이 답변하는 태도, 표정 등을 통해 관객은 그들의 민낯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뒤에서 조종하는 방송을 지금까지 봐왔구나’ 하는 것도.

기나긴 징계 언론인 명단

영화 마지막에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징계받은 언론인 명단이 쭉 올라간다. 참 길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10년 뒤 영화를 다시 꺼내볼 때 과연 어떤 상황이 돼 있을까 생각해본다. 10년 뒤 MBC와 KBS는 여전히 공영방송 역할을 제대로 못해 존재감이 없을 수도, 아니면 살아나서 잘할 수도 있다. 어떠하든, 지난 10년 동안 어떻게 점령당했고 저항했는지 기록은 필요하다. 앞으로의 권력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고 짓밟았지만 한번도 저항하지 않은 적이 없고, 계속 이어져왔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언론을 장악하려면 이런 저항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언론을 장악하려 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공범자들 민낯 보여주고 싶었다”

2012년 6월7일, 해고되기 전 파업투쟁이 한창이던 때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향하던 이용마 MBC 해직기자와 김민식 MBC PD의 모습.

영화 마지막 장면. 2012년 6월7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향하는 길. 5년 전, 해고되기 전의 이용마 기자와 김민식 PD의 모습이 나온다. 170일간의 장기 파업이 막바지를 향해 가던 초여름의 날,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알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영화 마지막에 담으며 최승호 PD는 마음이 착잡했다고 한다. “우리의 젊은 날을, 이용마 기자의 젊은 날을 위로하고 싶었다.”

 

공영방송이 무너진 지 9년째. 시민은 좋은 언론을 잃었고, 공영방송을 지키려던 언론인들은 직업을 잃었다. ‘공범자들’은 이 잔혹한 9년에 대해 ‘적반하장’의 태도로 일관한다. 심지어 영화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영화 <공범자들>을 보고 ‘공범자들’의 민낯을 보는 것이 ‘공영방송 정상화 운동’에 연대하는 길이다.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