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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퇴사하려면 월요일에 하라”

by한겨레21

대기업·외국계 회사 퇴사 뒤 새 삶 사는 선배들에게 듣는 조언…

“환상 버리고 신중하게” “퇴사 아닌 이직도 한 방법”

“퇴사하려면 월요일에 하라”

양지훈(왼쪽)/ 오세은

퇴사.

 

‘머슴’이라 불리는 직장인들이 가슴팍에서 몇 번을 꺼냈다 다시 집어넣곤 하는 말.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지만 들으면 설레는 말. 막상 하면 후회할 거 같아 두렵기도 한 말.

 

어찌 보면 중요한 건 퇴사가 아니라 퇴사 이후 삶이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을 위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길을 걷는 선배 퇴사자 2명에게 조언을 구했다. 8년 전 대기업 정유회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일하는 양지훈(40)씨와 2015년 외국계 컨설팅회사를 나와 음악치료사가 된 오세은(31)씨. 퇴사를 예찬할 것이란 <한겨레21>의 예상과 달리 이들은 “완벽한 제2의 인생은 없다” “퇴사가 조직생활의 대안은 아니다”라며 한결같이 신중한 태도를 주문했다. 8월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퇴사의 계기와 요령, 이후 삶을 둘러싸고 2시간가량 대담이 이어졌다.

“월급이 주는 기쁨 넘어서는 순간”

간략하게 직장 경력을 말해달라.


오세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2008년 12월 외국계 ㅂ컨설팅그룹 회계팀에 입사해 2012년 9월 퇴사했다. 이화여대 대학원 음악치료학과에 진학해 2015년 8월 졸업했다. 지난 6월 모음예술심리연구소를 세워 음악치료사로 일한다.

 

양지훈 2003년 외국계 기업인 한국3M에 입사했다. 2004년 국내 대기업 정유회사로 이직했다. 4년 만인 2008년 퇴사했다. 2009년 3월 법학전문대학원 1기로 입학해 2012년부터 법무법인 덕수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모두 비교적 이른 시기에 퇴사했다. 계기가 있나.

 

오세은 지금 생각하면 학점이나 토익 점수 같은 스펙 없이 운 좋게 외국계 회사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 가톨릭학생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다 취직 후에도 참여연대에 드나들었다. 활동가들을 보면서 ‘내 월급으로 이들을 후원하자’고 마음먹었다. 노래패 활동으로 집회 현장이나 소외된 이웃을 찾아 공연할 때마다 ‘난 원래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 아니었나’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인 것 같다.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한 시점이.

 

양지훈 사실 죽기보다 회사 다니기 싫었다. (웃음) 나름 일 잘한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토요일 밤만 되면 우울했다. 하루만 지나면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기업 회사원은 결국 남이 시킨 일을 얼마나 빨리 잘해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려면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돼야겠다는 생각보다 우선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도망치듯 나왔다.

 

퇴사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을 거 같다.

 

오세은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찮았다. ‘착실하게 회사 다니다 시집이나 갈 것이지 왜 속을 썩이냐’고 하셨다. (웃음)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 안 좋았다. 사실 (전 직장에서 하던) 일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따박따박 월급 들어오는 재미가 있고 친구들 밥도 사주고, 처음에는 좋았다. 근데 월급이 주는 기쁨을 넘어서자 의미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순간이 와버렸다.

“막연한 환상 가진 사람은 말리고파”

양지훈 내 경우도 부모님이 걱정하셨지만 겉으로는 계획이 있는 척했다. (웃음)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는데 속으론 겁나지 않았겠는가. 당시 다니던 정유회사는 3~4단계를 거쳐야 퇴사가 가능한, 나름 끈끈한 구조였다. 나부터 불안해하고 확신이 없으면 지난한 퇴사 과정을 뚫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했다.

 

지금 일을 선택한 이유는.


오세은 노래패 활동의 영향인 듯싶다. 노래로 사람을 위로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우연히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다. 회사를 그만둔 뒤 쉬지 않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양지훈 변호사를 목표로 그만둔 건 아니다. 단지 자율적 일을 해보자는 생각은 뚜렷했다. 물론 제도적 혜택도 덧붙여야 한다. 변호사시험 1회 때는 사법시험 역사상 가장 쉽게 변호사가 된 해였다.

 

인생이 뜻한 대로 잘 풀려 퇴사도 쉽게 맘먹은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오세은 운이 좋다고 하지만 입사 때 경쟁률은 10:1을 넘었다. 어렵게 들어간 건 맞다. 퇴사를 통보하고 3개월 동안 인수인계하러 회사를 더 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많이 흔들렸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이제 남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게 느껴졌다. 꽃길만 걷지 않았다. (웃음) 대학원 과정도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음악치료사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일을 하기도 어려웠다. 자영업자가 돼 ‘을’의 처지를 실감할 때마다 회사가 그리웠다. (웃음)


양지훈 취업준비생들이 보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는 얘기가)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따라오는 어려움이 있다. 당시 결혼한 상태였는데 아내에게 많이 미안했다. 낭만적으로 생각해 막 저지를 만큼 철이 없지는 않았다. 대학원에서 부지런히 공부한 이유기도 하다. 지금도 퇴사에 막연한 환상을 가진 사람에겐 “절대 퇴사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뭐라도 달려들어 할 자세가 보여야만 권한다. 결국 직장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이 퇴사 후에도 잘한다. 근로기준법을 잘 아는 것도 회사와 잘 이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근로계약 해지는 노동자 의사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하다. 자영업자로 광고를 좀 하면 이런 내용을 담은 노동법 에세이를 11월에 펴내기로 했다. (웃음)

“완벽한 제2의 인생은 없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조언한다면.


양지훈 퇴사보다 회사와 자신의 관계를 따져보길 권하고 싶다. ‘직장인은 안정적이다’라는 말도 신화가 된 지 오래다. 결심이 서면 퇴사해라. 실패하면 눈을 낮춰 재취업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하라. 인생에서 몇 년 갭이어(gap year)를 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완벽한 퇴사는 없다. 완벽한 제2의 인생도 없다.


오세은 하고 싶은 일이 확고하지 않으면 퇴사를 말리고 싶다. 퇴사는 조직생활의 대안이 아니다. 회사가 지옥 같다면 이직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도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과감히 그만두라고 권하고 싶다. 단 월요일에 퇴사하라. 주말에 대한 월급이 나온다. 기분 같아선 금요일에 그만두고 싶겠지만 막상 회사를 나가면 한 푼이 아쉽다. (웃음)


글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