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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웃픔’ 주는 삼포세대의
페르소나

by한겨레21

농담집 <블랙코미디> 펴낸 방송인 유병재 인터뷰 실패기(?)…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의 매력

 

이미 ‘핫’한 유병재. 그를 만나지 못했다. 몇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유병재 소속사 관계자는 “여러 곳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는데 바쁜 스케줄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에도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소속사에선 유병재의 사진을 여러 장 주었다. 인터뷰는 실패했지만 ‘삼포’(자료수집·취재·기사작성 포기)를 선택할 순 없었다. 그 대신 유병재의 팬, 유병재와 일했던 PD, 유병재의 책을 낸 출판사의 편집자, 유병재를 방송으로 만난 문화평론가 등을 통해 유병재를 취재했다. 그래서 이 기사는 ‘인터뷰 실패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_편집자

‘웃픔’ 주는 삼포세대의 페르소나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유병재가 이번엔 ‘유병재표 블랙코미디’를 책으로 엮었다. 책 이름은 농담집 <블랙코미디>(비채 펴냄). 11월 초 나온 이 책은 출판시장의 불황을 뚫고 11월10일 현재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기준으로 주간 책 판매 순위 7위에 올랐다.

 

<블랙코미디>는 유병재가 지난 3년 동안 쓴 에세이와 우화, 아이디어 노트, 미공개 글 138편을 모은 것이다. 각각의 글을 관통하는 주제는 책 이름에서 드러나듯 ‘블랙코미디’다. 그는 책의 ‘여는 글’에서 블랙코미디를 이렇게 설명한다. “즐거움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 코미디. 내가 생각하는 블랙코미디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코미디이다. 요즘 말로 쉽게 바꾸면 ‘웃픈’ 농담쯤 되려나.”

출간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진입

책 속 ‘짤방’처럼 짤막한 글은 “누구에게든 미움받기를 겁내는” 그의 성격 때문에, “용기가 부족해 삼켰던 분노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꼰대’라고 하는 기성세대에 일침을 가하고(“꼰대랑스: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에 동의하지 않고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꼰대랑스’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을 꼬집는다(“대한민국에서 아들딸로 살기 힘든 이유: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함” -‘아들딸’편). 그는 또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적는다(“많이 쓰는 것이 아니다. 적게 버는 것일 뿐이다” -‘과소비’편).

 

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뜨겁다. 책을 낸 출판사 비채의 김지선 편집자는 “책을 내놓은 지 일주일 만에 시·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들고 종합 순위 50위권 안에 들었다”며 “사회 세태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유병재씨의 언어가 20∼30대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유병재는 젊은층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는 방송인으로 꼽힌다. 그의 최대 강점은 동시대성이다. 그는 일찍이 2011년 개그맨 공채 시험에 떨어진 뒤 만든 사용자제작콘텐츠(UCC) 동영상 ‘니 여자친구’를 통해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다. 지금도 그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올린 공연 동영상은 젊은층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적게는 수천에서 수만, 많게는 수십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공유되고 회자되고 있다. 특히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등 그의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정말 너무나 아픈 ‘청춘들의 어록’이 되었다.

 

1988년생, 올해 29살인 유병재는 ‘삼포(사랑·결혼·출산 포기) 세대’가 겪는 현실의 고충을 개그와 접목한다. 대중에게 자기 이름을 알린 2014년 케이블방송 tvN 《SNL 코리아-극한직업》에서 연기한 연예인 매니저 역할로 시도 때도 없이 따귀를 맞으며 구박받는 을의 설움을 보여줬다. 그가 연기한 자신감 없고 무기력한 ‘찌질남’의 모습은 아픈 청춘들의 모습을 닮았다. 유병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각자도생하며 고군분투하지만 ‘변화의 가능성 없음’을 느끼는 약자들의 좌절감과 무기력함을 특유의 생김새와 표정으로 체현해 보여준다.

 

유병재와 《SNL 코리아-극한직업》《초인시대》를 하며 호흡을 맞춘 김민경 PD는 “유병재는 20대 삼포 세대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라며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드니 그가 하는 말이 기성세대의 조언이 아니라 또래 친구의 말이라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유병재의 평소 모습은 방송과는 다르다. 김 PD는 “유병재는 낯을 가리고 조용하고 진지한 사람”이라고 했다.

SNS 시대에 최적화된 코미디언

‘웃픔’ 주는 삼포세대의 페르소나

지난해 유병재는 '말하는 대로'(JTBC)에 출연해 시국을 풍자한 버스킹(거리 토크)을 펼쳤다. JTBC '말하는 대로' 누리집 화면 갈무리

이 시대 유병재의 코미디가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병재의 팬 최명수씨는 그의 코미디에 대해 “기존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과 예측 불가한 면이 매력”이라고 꼽는다.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도 활발히 하고 SNS 시대에 맞는 코미디언이다.” 더불어 “연예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힘든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만의 스타일로 풍자를 하는 점”도 좋단다.

 

책 <2016년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유병재의 ‘병맛’(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 코드에 주목했다. 촌스러움이 선사하는 부담 없는 경쾌함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재미와 일탈의 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 시대 인기를 끄는 병맛 코드에 대해 “좌절감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현실 사이의 균형감을 회복하기 위해 그 반대급부로서 극도의 말초성과 원초성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8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낯선 장르인 스탠드업 코미디에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다. 그가 펼친 공연에서 희화화의 대상은 권력이나 기득권층, 혐오나 차별을 기반으로 한 집단이다. 그의 풍자는 이런 식이다. ‘민주’라는 학생을 좋아했는데 민주 옆에 있는 친구가 번번이 시비를 걸어 휴대전화에 그 친구 이름을 ‘자유한국당’이라고 저장했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이렇게 풍자한다. “좋은 친구를 왜 만나야 해?”라고 묻는 조카에게 “연설문을 대신 써줘”라고 답한다.

 

최근 코미디 프로그램은 여성 혐오와 약자 비하를 주요 웃음 코드로 삼아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개그맨 장동민의 여성 혐오 발언, 유세윤의 장애인 비하 발언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 김선영 TV평론가는 “약자를 공격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코미디는 이제 외면받는 시대다. 구시대적 개그다”라며 “그와 달리 유병재는 세련된 방식으로 기존 남성 권력을 비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병재 역시 2015년 삼포 세대의 삶을 그린 <초인시대>에서 남성 중심 시각으로, ‘명품 가방 사달라고 들볶는 여자친구 이야기’ ‘남자를 호구로 알고 등쳐먹는 여자 이야기’ 등을 통해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유병재의 풍자는 이제 약자 혐오와 비하를 개그 소재로 삼지 않는다.

세상 향해 날리는 ‘웃픈’ 잔펀치

코미디는 사회적·미학적으로 일탈을 일삼는 텍스트다. 일탈과 위반을 일삼으면서도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고 웃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 일탈과 위반에서 오는 저항의 즐거움이 코미디의 즐거움이다. 이 저항은 불안을 초래하지 않고 사소하고 긍정적인 즐거움이다. 코미디의 전복과 일탈은 끊임없이 권력관계를 위협하고 이것의 변화를 추구한다.

 

‘웃픈’ 블랙코미디를 선보이는 유병재. 그는 지금 발 디딘 세상을 읽고 그곳에서 웃음의 소재를 찾는다. 억울한 일을 당한 듯한 루저(실패자)의 얼굴을 하고 세상을 향해 잔펀치를 날린다. 그것을 통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준다. 그런 그가 앞으로 어떤 코미디로 우리를 또 웃길까. 유병재이기에 이 또한 예측 불가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