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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검찰 돈봉투 식당
직접 가보니

by한겨레21

‘돈봉투’ 사건으로 검찰 개혁 요구 물올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한 문 대통령 “국정 농단 사건 수사 적임자”

 

5월19일 오전 10시30분. 청와대 춘추관에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서울중앙지검장 및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기자석이 술렁였다. 예상치 못한 인사였다.

 

“서울중앙지검장은 2005년 고검장급으로 격상된 이후 정치적 사건 수사에 있어 총장 임명권자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계속되어온 점을 고려하여 종래와 같이 검사장급으로 환원시켰고, 현재 서울중앙지검의 최대 현안인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관련 사건 공소 유지를 원활하게 수행할 적임자를 승진 인사하였습니다.”

 

한 번 더 술렁였다. 최순실 게이트를 언급하며 인사의 목적을 분명히 한 것이다.

 

“승진 인사,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윤석열 현 대전고검 검사.”

 

“우와!”

 

기자단 사이에 탄성이 터졌다. 윤 지검장은 알려진 대로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수사팀장이었다. 사상 첫 파격 인사에 검찰은 내내 술렁였다. 청와대가 중앙지검장의 급을 한 단계 낮췄다고 했지만, 윤 지검장은 직전까지 검사장 경험이 없는 ‘평검사’였다.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검찰 개혁의 신호탄

검찰 돈봉투 식당 직접 가보니

지난 4월21일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검사들과 함께 ‘돈봉투 만찬’을 벌인 서울 서초동의 한 복집. 연합뉴스

윤 지검장은 연수원 23기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와 대검찰청 중수2과장, 중수1과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때 책임자로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를 강조하다 검찰 지휘부와 갈등을 빚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 내내 한직으로 밀려 있었다.

 

윤 지검장의 인사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수사권 조정 등 제도 개혁과 함께 검찰 개혁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당장 중앙지검 내 노승권 1차장 검사(검사장)는 윤 지검장보다 두 기수 앞서고, 이정회 2차장 검사는 동기다. 3차장인 이동열 검사는 한 기수 선배다. 인적 개혁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또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되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을 비롯해, 우병우 라인으로 평가받아온 검사들을 포함해 쇄신의 폭은 예상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의를 표명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 안태근 전 국장은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문책성 전보 조처를 당했다. 문 대통령이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전보한 것은 현직 검사 신분을 유지한 채 감찰해 비위를 가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애초 <한겨레>가 ‘돈봉투 만찬’을 단독 보도한 5월15일까지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흐를 것으로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검찰은 “이 지검장이 법무부 국실별로 돌아가며 만나는 자리였고 검찰국은 그중 하나였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지원하느라 검찰국이 가장 고생해 후배들에게 격려금을 주는 차원이었다”고 했다. 법무부도 “수사비 지원 차원에서 준 돈이고 과거 종종 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모인 4월21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우 전 수석을 불구속한 지 나흘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또 이 전 지검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지휘한 특별수사본부의 책임자였고, 안 전 국장은 우 전 수석과 1천여 차례 통화하는 등 우 수석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는 인물이었다. 대선이 불과 20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기도 했다. 검찰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돈봉투’ 식당 정식 1인 6만원

검찰 돈봉투 식당 직접 가보니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문책성 인사를 당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왼쪽)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연합뉴스

지난 5월18일 저녁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을 비롯해 검사 10명이 폭탄주 만찬을 벌인 서울 강남의 한 복집을 찾았다. 부산 초원복집 사건이 1992년 12월11일에 일어났으니 25년 만에 복집이 사건 현장으로 등장한 셈이다. 들어서자마자 한 테이블을 차지한 채 수다를 떨던 60대 주인이 일어서며 반갑게 맞았다.

 

“얼굴이 익숙한데, 어디시더라?”

 

음식점은 어둑했다. 손을 뻗지 않아도 쉽게 닿을 만한 낮은 천장, 허름한 테이블 3개, 화장실까지 열 걸음이 되지 않은 좁은 공간이 전부인 듯했다.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예상과 달리 허름했다. 몇 걸음 더 들어섰다. 화장실 왼쪽으로 반지하로 향하는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안으로 방이 보였다. 15명 정도 거하게 회식할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규모만 다를 뿐 바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테이블은 세월의 더께가 보일 만큼 낡았다. 뒤따라온 주인이 거칠게 문을 닫았다.

 

“예약 손님이 다 끊겼어. 나아지겠지.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뭘….”

 

낮에는 주로 6천원짜리 백반을 팔고, 밤에는 1인당 6만원짜리 제철음식으로 손님을 받았다. 예약을 물어보니 4명에 20만원짜리 한상을 권했다. 가격은 조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멍게, 갑오징어, 생선회 두 종류가 연이어 나오는 한정식 코스였다. 당시 검사들의 만찬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의 만찬은 이 전 지검장이 안 전 국장 쪽 부서를 초대한 자리였다. 당일 이 전 지검장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의 기준 액수를 넘는 식사비를 계산했다면 청탁금지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격려금이다. 이 전 지검장이 먼저 안 전 국장과 함께 온 검찰국 1, 2과장에게 100만원씩 격려금을 줬고, 안 전 국장이 중앙지검 수사팀장들에게 70만~100만원씩 지급했다. 이들이 주고받은 격려금의 부적절성은 법무부 두 과장이 이튿날 이를 반환했다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감찰 아닌 본격 수사 가능성

복집에서 벌인 ‘돈봉투 만찬’에 대해 법무부·대검 합동감찰반은 △이 전 지검장·안 전 국장 격려금의 출처와 제공 이유 △격려금의 지출 과정이 적법하게 처리됐는지 여부 △청탁금지법 등 관련 법령 위배 여부 △법무부·검찰의 특수활동비 사용 체계 점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감찰 과정에서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곧바로 수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청탁금지법은 돈을 건넨 의도나 목적보다 금품 수수 자체를 금지한다. 위법 여부를 검증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안 전 국장이 최순실 게이트의 조사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격려금의 대가성이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안 전 국장이 자신의 수사 결과에 감사 표시를 했다면 뇌물죄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이 격려금으로 지급한 특수활동비의 원래 목적이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사건수사 등에 비밀스럽게 쓸 수 있도록 배정된 돈’이라는 점에서 감찰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수사로 전환하는 게 맞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1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직접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윤 지검장 임명 배경에 대해 재차 “현재 대한민국 검찰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역시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와 공소 유지라고 생각한다”며 “그 점을 확실하게 해낼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