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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이재언의 섬

‘바다에 떠있는 산’
둘러보는 색다른 올레길

by한겨레

영암→제주→완도→제주, 소속 바뀌어

제주도 속하지만 이질적인 요소 뚜렷

상·하추자도 잇는 추자대교 개통

‘최고의 손맛’ 유혹하는 낚시천국

추자도

‘바다에 떠있는 산’ 둘러보는 색다른

하늘에서 바라본 추자군도 전경.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외에 횡간도와 추포도가 붙어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상추자도에 모여 산다. 멀리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추자대교가 보인다. 제주도청 제공

추자도는 목포에서 99㎞, 완도에서 79㎞ 떨어져 있고, 제주도와는 48㎞ 거리를 둔, 서남해안의 중간에 위치한 섬이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등 4개의 유인도가 추자군도를 이루는데, 추자도라 부를 땐 통상 상·하추자도를 일컫는다. 상·하추자도를 합쳐 1800명 남짓한 주민들이 모여 산다.

 

추자도는 1272년(고려 원종 12년)까지 후풍도(候風島)라 불렸다. 섬의 이름과 관련해선 두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하나는 1821년 전라남도 영암군에 소속될 무렵부터 추자도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섬에 예부터 추자나무 숲이 무성한 터라 조선 태조 5년부터 추자도라 불리게 됐다는 내용이다. 추자도는 ‘소속’이 여러차례 바뀌는 독특한 경험도 했다. 1821년(순조 21년) 전남 영암군으로 편입됐다가 1881년(고종 19년) 제주목으로 이관된 뒤, 15년 만인 1896년(건양 원년)엔 다시 완도군 소속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1일 전남 완도군 추자면에서 제주군으로 이관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추자도는 생활문화권 면에서 수백년간 제주도보다는 오히려 육지와 가까운 편이었고 지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전라도 지역과 훨씬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오랜 기간 사실상 호남문화권에 속한 터라 생활풍습과 문화, 언어, 풍광 등 여러 측면에서 제주도 본섬과는 사뭇 다른 특징을 보인다. 행정구역상 제주도에 속한 부속 섬이지만, 정작 제주도에 견줘 다소 이질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건 이런 이유에서다.

‘바다에 떠있는 산’ 둘러보는 색다른

상추자도 항구 주변 모습. 상추자도는 하추자도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움푹 들어간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항구가 발달해 추자도의 중심지 노릇을 하고 있다. 이재언 제공

‘바다에 떠있는 산’ 둘러보는 색다른

영화 '나바론 요새'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나바론 절벽. 추자도의 비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올레길이 이어져 있다. 이재언 제공

추자도 올레길 도는 데 6~7시간

추자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추자도는 백제와 탐라국 사이에 조공을 바치는 풍선들이 오갈 때 뱃사람들이 반드시 들렀다 가는 중간 기항지였다. 문헌상 사람이 살았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별초와 관련해 <고려사>에 등장한다. 1271년 삼별초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고려와 몽고 연합군이 폭풍우를 피해 이 섬에 들어왔다는 기록이다. 고려 말기 제주도에서 말을 기르던 몽골인 목호가 난을 일으켰을 때 이를 진압하러 가던 최영 장군이 추자도에 잠시 머물면서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기다렸다는 기록도 있다. 그 시작이야 어찌됐건 간에 육지와 멀리 떨어진 추자도엔 왜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 노략질을 일삼았다. 제주사람이 쓴 첫 제주통사로 평가받는 <탐라기년>엔 이런 대목이 들어 있다. ‘1350년(충정왕 2년)에 추자도 주민을 제주 조공포(朝貢浦, 도근내 포구) 냇가로 옮겼다. 이는 왜적이 자주 침입하기 때문이다.’ 왜구들로부터 얼마나 괴롭힘을 받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20여년 만에 다시 찾은 추자도는 부쩍 활기가 넘쳤다. 항구마을 대서리의 변화상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추자도 주민의 대부분은 이곳 상추자도 대서리 마을에 몰려 산다. 추자군도를 통틀어 가장 큰 항구인 추자항이 있을뿐더러 각종 행정기관과 생활편의시설도 이곳에 집중돼 있다. 추자항은 어로작업에 필수적인 시설을 갖춘데다, 제주와 목포, 완도를 오가는 여객선의 기항지다. 대서리와 영흥리의 해안을 끼고 있고 북서쪽으로 발달된 산줄기가 겨울 북서풍을 막아주고 있어 좋은 항구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바다에 떠있는 산’ 둘러보는 색다른

영흥리 마을 주민들이 미역을 말리고 있는 모습. 이재언 제공

‘바다에 떠있는 산’ 둘러보는 색다른

어부들과 주민들이 모여 바다에서 갓 잡아온 조기를 그물에서 떼어내고 있다. 이재언 제공

마을 곳곳에선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고기가 많이 잡히는 이곳의 주민들은 부자가 많은 편이다. 조업을 막 끝내고 들어온 어선에선 어부들과 마을에서 품팔이 나온 아낙들이 12명씩 일렬로 줄을 서 조기를 그물에서 떼어내고 있었다. 그물엔 조기와 고등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물에서 일일이 떼어낸 조기는 바닷물에 깨끗하게 씻은 뒤 얼음과 함께 나무상자에 넣는다. 조기는 유자망으로 잡아야 최상품 굴비가 된다. 자루로 된 그물로 잡은 안강망이나 저인망의 경우 조기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비늘이 벗겨져 버린다. 이밖에 추자도는 조기뿐 아니라 삼치, 고등어, 멸치도 많이 잡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추자도를 둘러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추자도 올레길은 최근 들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추자도 올레길은 추자항에서 시작해 추자항으로 되돌아오는 17.7㎞ 구간. 추자도 올레길은 바다에 떠 있는 섬임에도 마치 깊은 산중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게 매력인데, 낭떠러지 아래로는 푸른 바다와 넘실거리는 파도가 끝없이 펼쳐져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산’의 절정은 봉글레산과 몽돌해안을 지나면서 감상할 수 있다. 몽돌해안은 100여 미터나 이어져 있어 여름철 해수욕을 즐기며 야영하기에 딱 안성맞춤인 장소다. 추자도 올레길을 한바퀴를 도는 데는 성인 기준으로 6~7시간 정도 걸린다. 올레길치고는 조금 어려운 코스인 듯도 하지만 최고봉이 해발 150미터 정도이니 도전해 보기에 충분하다. 1박2일 일정으로 찾기에 무난한 편이다.

‘바다에 떠있는 산’ 둘러보는 색다른

영흥리 후포 앞 양식장 모습. 이재언 제공

학교 설립지 두고 갈등 빚기도

추자도 역사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건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주민 사이에 한때 학교 문제로 엄청난 갈등을 빚기도 했다는 사실. 사정은 이렇다. 규모로만 따지자면 하추자도가 상추자도에 견줘 갑절 이상 큰데도 추자도의 중심 노릇을 하는 건 상추자도다. 상추자도가 바로 지형적인 이점을 최대한 누리고 있어서다. 남쪽을 향해 움푹 파인 상추자도의 항구는 목포와 제주도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추자군도 전체의 관문 노릇을 하는 셈이다. 문제는 새로 설립하는 중학교가 들어설 위치가 논란 끝에 하추자도 신양리로 결정된 것. 대부분의 주민이 상추자도에 모여 살고 면소재지도 상추자도에 있던 현실에 비추면 다소 의외의 결정이라 할 만했다. 물론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부인할 순 없다. 결국 자녀들을 나룻배에 태워 학교로 보내야 하는 상추자도 주민들의 감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두 섬 사이에 평화가 찾아든 건 1972년 상·하추자도를 잇는 추자대교가 개통되면서다. 지금도 추자대교는 두 섬 주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화합의 다리로 굳건히 남아 있다.

 

‘바다에 떠있는 산’ 둘러보는 색다른

어찌 보면, 추자도는 일반인들보다는 낚시꾼들에게 먼저 알려진 섬인지도 모른다. 섬 주변의 모든 갯바위가 낚시 포인트라, 사시사철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섬 어디를 가서 낚싯대를 드리워도 참돔, 농어, 감성돔 등 고급 어종이 많이 잡힌다. 특히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는 ‘최고의 손맛’으로 낚시꾼들을 유혹한다. 사연 많은 섬이 어느덧 낚시 천국으로 거듭났다 보다.

 

이재언 국립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