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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ESC

‘국수 덕후’ 김쫄깃씨의
국수 따라 세계 일주

by한겨레

한국 평양냉면·일본 소바·베트남 퍼
중국 단단미엔 등 아시아는 국수천국
이탈리아·프랑스·그리스 등 
여러 가지 모양 파스타 다채롭게 즐겨

‘국수 덕후’ 김쫄깃씨의 국수 따라

안녕하세요. 저는 김쫄깃이라고 해요. 국수 애호가죠. 애호가를 넘어서 국수 ‘덕후’라고 해도 되겠군요. 면만 먹고 살아가는 ‘면식 수행’을 생활신조로 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국수를 좋아하죠. 꼭 좋아하진 않더라도 ‘국수’ 하면 많은 추억이 떠오를 거예요. 다음은 이상국 시인의 <국수> 가운데 한 구절이에요.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는 이처럼 일상의 전환을 만들어내는 한 끼예요. 맛이 아니라 여러 추억이 깃들어 있기도 하지요. 더운 여름날 가정용 믹서로 콩을 거칠게 갈아서 입안이 꺼끌꺼끌했던 콩국수, 졸업이나 입학식 때 먹었던 짜장면의 추억은 아마 눈을 감기 전까지 생각이 날 거예요.

 

과거 밀가루가 귀했을 때 국수는 잔칫날에나 먹던 귀한 음식이었어요. 이제는 밀가루가 흔해져서 오히려 밥보다 면을 많이 먹는 시대가 됐죠. 한국제분협회 자료를 보면 1965년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은 밀가루 양은 11.5㎏이었는데 2015년엔 33.77㎏으로 3배나 늘었어요. 미국의 경제 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 해 동안 한국인 1명이 국수를 9.73㎏이나 먹었어요. 2위 일본(9.44㎏)보다 높아요. 심지어 면의 고향인 중국 사람들(5.03㎏)보다 많이 먹어요. ‘면식 수행 국가’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국수 탐구를 해보죠. 국수는 어디서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했을까요? 서아시아설, 중국설, 이탈리아설이 있어요. 서아시아설의 경우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전설 따라 삼천리’ 수준이에요.

‘국수 덕후’ 김쫄깃씨의 국수 따라

북경 자장미엔. 여경옥 제공

서로 원조라며 가장 치열하게 대립하는 건 중국과 이탈리아죠. 2005년 중국 황허강 유역에서 4000년 정도 된 것으로 분석된 국수의 흔적이 발견돼 중국 원조설에 힘이 실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최근 당시 발굴됐던 국수가 부식돼서 없어지는 등 실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아무러면 어때요, 누가 먹기 시작했든 맛있으니깐 세계 각국으로 퍼진 거겠죠.

 

아시아의 국수와 주로 파스타로 불리는 서양의 국수는 조금 차이가 있어요. 우선 아시아에서는 가루가 곱고 부드러운 품종의 밀이 잘 자라요. 서양의 파스타 재료로 쓰이는 단단한 밀이 생산되는 지역에 견줘 강우량이 많은 곳이죠. 또 척박한 토질에서도 잘 적응하기 때문에 북아시아에서도 밀국수가 발달한 편이에요.

 

중국을 예로 들어 보죠. 중국 요리는 크게 베이징, 쓰촨, 광둥, 상하이 요리로 권역을 나눠요. 상대적으로 북쪽에 있는 베이징, 쓰촨, 상하이에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인 자장미엔, 단단미엔(탄탄면), 양춘미엔(양춘면) 등이 유명해요. 하지만 광둥 지역은 밀보다는 질 좋은 쌀이 잘 자라서 쌀국수를 많이 해 먹었어요. 더 남쪽인 베트남, 타이, 말레이시아로 내려가면 밀국수는 더 드물어져요. 밀은 더위에 약한데 재배가 힘들었던 거죠. 타이의 대표적인 국수 팟타이(볶음 쌀국수)나 베트남의 ‘퍼’처럼 쌀국수가 대세죠.

‘국수 덕후’ 김쫄깃씨의 국수 따라

일본 소바.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제공.

반면에 베트남, 타이 등보다는 북쪽에 위치한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쌀국수를 찾기가 힘들어요. 대부분 밀이나 메밀, 감자 전분으로 된 국수가 많아요. 한국의 경우 추운 북쪽 지역에선 메밀이나 감자 전분으로 만든 냉면이 전통 국수죠. 남쪽으로 가면 밀가루를 사용한 칼국수나 소면 등을 사람들이 즐겨 먹어요. 강원도의 경우 산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지형 탓에 곡물 생산이 어려워 도토리 가루나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올챙이국수 같은 것을 먹었지요. 모두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이에요.

 

일본은 우리와는 조금 달라요. 고립된 섬이라는 자연 조건 때문에 외부의 영향 없이 자생적으로 국수 문화가 발달했다고 보면 돼요. 특히 일본은 아시아 지역에선 드물게 국물보다 면 자체의 식감과 향을 중시해요.

 

‘소바’(일본식 메밀국수)와 ‘우동’은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수지요. 소바는 ‘니하치’, ‘주와리’ 등 종류가 다양해요. 그 가운데 니하치는 밀가루와 메밀을 ‘2 대 8’ 비율로 섞은 것을 말하는데 맛의 황금비율로 보는 사람이 많아요. 쫄깃함과 향 둘 다 만족시키는 것이지요.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간토 지방이 소바로 유명해요. 활동량이 많았던 사무라이들의 염분 보충을 위해 짭짤한 쓰유(간장 베이스의 소스)가 곁들여졌다는 얘기도 있어요.

 

우동은 간사이 지방이 유명한데요. 특히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가가와현 사누키시를 찾는 이들이 많아요. 이곳은 전통적으로 발로 밟아서 반죽하는 족타 반죽을 해요. 이를 12시간 숙성시켜서 아주 쫄깃한 상태의 면을 만들어내죠. 한국 사람에게 우동은 ‘국물이 끝내줘요’지만, 일본에선 소바나 우동을 ‘목으로 먹는다’고 할 정도로 면의 질감을 중시해요. 특히 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맛을 의미하는 ‘노도고시’(목 넘김)를 즐기죠.

 

최근 한국의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에서 유행하는 ‘나가사키 짬뽕’은 일본에 정착한 중국 화교들이 만들어낸 국수예요.

 

이제 서양으로 가볼까요. 오히려 동양보다 서양은 단순해요. 서양의 국수는 ‘파스타’ 한마디로 끝나요. 모양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지만, 크게 롱 파스타(긴 파스타)와 쇼트 파스타(짧은 파스타)로 나눠요. 흔히 먹는 스파게티는 롱 파스타, 마카로니는 쇼트 파스타라고 기억하면 되겠네요. 수많은 이름을 다 외울 순 없지만 만약 숟가락으로 떠먹을 정도로 길이가 짧다면 “난 쇼트 파스타가 맛있다”고 하면 멋있어 보일 수도 있어요.

 

파스타 요리는 다양한 소스와 함께 세계 각지로 퍼졌죠. 한때 유럽의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 지역에서도 파스타를 먹어요. 소파(sopa)라고 하는 국물요리인데 그 안에 파스타를 넣어서 먹지요.

 

파스타가 가장 발달한 지역은 이탈리아예요. 파스타의 원료는 딱딱한 ‘경질 밀’로 분류되는 듀럼밀인데, 강수량이 적고 햇볕이 강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라요. 이탈리아가 최적인 거죠.

 

이탈리아에서 먹는 파스타는 서울에서 맛보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국물이 흥건하지 않아요. 소스가 적은 편이죠. 면 자체의 꼬들꼬들한 식감(알 덴테)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이탈리아를 벗어난 지역에선 좀 더 소스를 풍성하게 해서 먹기도 해요. 특히 미국이 그렇죠. 미국으로 이민 간 이탈리아인들이 현지 입맛에 맞게 치즈와 토마토, 칠리소스 등을 풍부하게 써서 만들어 먹었어요.

 

‘국수 덕후’ 김쫄깃씨의 국수 따라

프랑스 코키예트 파스타. 이승준 제공.

파스타는 그리스 같은 지중해 국가로 가면 샐러드 스타일로 해서 차게 먹기도 해요. 프랑스에선 코키예트(coquillettes)라는 쇼트 파스타를 메인 요리의 장식으로 쓰거나 샐러드 또는 전채요리로 먹는대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파스타를 즐겨 먹죠. 동남아시아와 가깝기 때문에 고수 같은 향신채소를 파스타에 쓰기도 해요.

 

이상 김쫄깃의 국수 강좌가 마음에 드셨나요. 세계의 국수 요리를 다 설명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이 정도만 알아두시면 적어도 각국의 유명 국수를 먹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예요. 자, 그럼 모두 쫄깃한 국수 먹고 쫄깃한 삶을 살아가자고요!

  

Noodles

국수. 밀, 쌀, 감자 등 곡물을 가루 내 반죽한 뒤 가늘고 길게 만든 음식. 다양한 재료로 만든 국물 또는 소스와 함께 먹음. 동양권에서는 긴 형태 때문에 장수의 상징으로 여김. 기원전 6000~5000년 전부터 인류가 먹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동서고금 최고의 인기 음식.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도움말: 여경옥(롯데호텔 중식당 ‘도림’ 총주방장), 한석원(웨스틴조선호텔 서울 일식당 ‘스시조’ 주방장), 이승준(프렌치레스토랑 ‘윌로뜨’ 대표 겸 주방장), 이민정(요리연구가), 참고자료: <누들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