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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화가 변신한 이혜영
“내 상상력 바탕은 책읽기”

by한겨레

김성일이 만난 완소 피플

 

2015년 개인전 열어 화가로 신고식

최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부부리닷컴 선보여

“50대 되면 사회에 나눔으로 기여하고 싶어”

화가 변신한 이혜영 “내 상상력 바탕

이혜영은 최근 ‘부부리닷컴’으로 패션 사업을 재개한 데 이어 화가로서도 재능을 인정받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그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40대 중반의 중년인데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1990년대 소위 ‘엑스(X)세대’ 대학생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표현할 줄 알았다. 패션 감각도 뛰어났다. 하긴 윤현숙과 짝을 이뤘던 여성듀오 ‘코코’ 시절 그의 커트머리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가수, 배우, 사업가, 패션디자이너, 화가로 자신의 끼와 재능을 다채롭게 발산하고 있는 이혜영(46)이 ‘20년 지기’ 김성일을 만났다.

 

김성일(이하 김) 할 말은 꼭 해야 하고, 후회할지언정 하고 싶은 건 하고 마는 혜영이의 당당함이 난 참 좋아. 인터뷰하자니까 첫마디가 “<한겨레> 너무 좋아”였잖아. 역시 넌 엉뚱하면서도 솔직해. 인터뷰 대가로 1만8천원짜리 ‘부부리닷컴’ 휴대폰 케이스 사달라고 했잖아. 나 그거 바로 구입했다. 알지?

 

‘부부리닷컴’은 이혜영이 반려견 ‘부부리’(남편과 딸의 성 ‘부’와 자신의 성 ‘이’를 합침)의 이름으로, 지난달 출시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그만의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감성이 가미된 패션·뷰티·리빙 제품들이다. 2010년 패션 브랜드 ‘미싱 도로시’의 지분 10억여원을 사회에 환원하며 의류사업가의 길을 접었던 그가 7년 만에 내놓은 야심찬 재도전이다.

 

왜 다시 패션사업을 시작한 거야? 다시는 안 하겠다고 기부하고 떠났으면서.

 

이혜영(이하 이) 패션은 내게 마약 같은 거야. 패션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패션으로 소통하고, 옷 디자인하고, 아이디어 내는 것이 다 재밌어서 미치는 거야.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나 혼자가 아닌 모든 여성들과 함께 누리고 싶은 욕심도 있고. 모두가 예뻐지면 좋잖아?

 

패션은 정말 중독성이 있지. 소득이 100만원이면 그 돈을 전부 옷을 사는 데 써도 아깝지가 않잖아! 내가 패션에 미치지 않았으면 집을 샀을 거고, 혜영이는 집을 은행과 공유하지 않았을 거야.(웃음)

 

오빠나 나나 집이 없어도 행복한걸.

화가 변신한 이혜영 “내 상상력 바탕

이혜영은 최근 ‘부부리닷컴’으로 패션 사업을 재개한 데 이어 화가로서도 재능을 인정받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혜영은 2015년 가나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을 열고 화가로 신고식을 치렀다. 2016년 진화랑에 이어 올해는 미국 뉴욕 첼시에 있는 엘가 위머 피시시(PCC) 갤러리에서 ‘본능적 호기심’(Instinct Curiosity)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던 ‘프리다 칼로’처럼 화려한 색감과 과감한 붓 터치, 무궁무진한 상상력으로, 화가로서의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림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했어?

 

오빠(김성일)한테 패션일러스트 배우면서. 버스 안에서 1시간 만에 100장 정도 그려 보여주니깐 칭찬해줬잖아.

 

맞다.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걸 그때 알아봤다. 본격적으로 그린 때는?

 

처음 붓을 잡은 건 2012년. 그해에 위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투병 중에 돌아가셨고, 12년을 함께했던 반려견 도로시도 아버지 장례를 치르자마자 죽었거든. 아버지가 데려가신 거 같아. 당시에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펑펑 울면서 방바닥을 떼굴떼굴 굴러다녔지. 2개월 만에 도로시와 꼭 닮은 부부리를 입양하고 나서야 기력을 차렸어. 그래서 첫 작품이 ‘아버지’야. 화폭에 위 절제 수술을 이겨낸 아버지와 도로시를 담았지.

 

호기심이 있어도 도전하는 건 쉽지 않은데, 그 용기는 어디서 생겨?

 

그렇게 태어난 거지. 죽기 전날까지 여성들이 ‘이혜영은 뭐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혹은 ‘하고 싶은 일에 무모하게 도전했던 이혜영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라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람이었으면 해.

화가 변신한 이혜영 “내 상상력 바탕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위치한 카페 ‘부부리하우스’에서 만난 김성일(사진 왼쪽)과 이혜영.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혜영은 2005년 이혼 후 사업뿐 아니라 방송 활동과도 거리를 두고 두문불출했다. 2011년 재혼한 뒤에는 주부와 엄마의 삶에 충실했다. 남편과의 신혼 생활과 하나뿐인 딸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했다. 생활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삶이 정말 평온하고 아늑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단다. 3~4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생활에 관심을 갖는 대중이 많다는 것을 알고 다시 세상에 나오기로 결심했다.

 

내가 아는 가장 유쾌한 친구! 너랑 같이 있으면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걸.

 

신랑 말로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독특하고 제일 웃긴대. 아이들의 감성을 많이 갖고 있어서 부럽다고. 지금껏 내게 ‘너는 왜 이렇게 웃겨’ 말해준 이는 있었어도 ‘너는 독특한 사람이야’라고 해준 이는 없었어. 신랑이 유일해. 여하튼 신랑은 내가 자신이랑 가장 잘 맞는 매력적인 여자래. 나도 신랑이랑 있으면 재밌어.

 

가끔 심심할 때 네 인스타그램을 가거든. 기절할 만큼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해.

 

하는 일도 많고 관심 분야도 많아. 비 맞고 춤을 춘다든가 하는 일은 실생활에선 부정적으로 여겨질 거야. 하지만 그림으로는 표현이 가능해.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많겠어.

 

지금껏 그린 그림이 몇 점이나 돼?

 

250점. 전시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준 작품은 50점도 채 안 돼. 운 좋게 몇 점은 팔기도 했어.

 

얼마나?

 

많지 않아. 처음엔 자식 같아서 절대 못 팔겠더라고. 1년 전쯤? 전시를 하면서 팔기 시작했어. 처음엔 눈물도 났는데, 지금은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서 그런지 괜찮아졌어.

 

‘진짜 이혜영이 그린 거야?’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지?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작업 중인 동영상을 올리기도 해.

화가 변신한 이혜영 “내 상상력 바탕

이혜영은 최근 ‘부부리닷컴’으로 패션 사업을 재개한 데 이어 화가로서도 재능을 인정받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혜영은 어린 시절 부유하게 자랐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인천의 달동네에 위치한 부잣집 딸’ 출신이다. “정원이 수백 평에 이르는 양옥집에 살았어. 친구들을 데려와 먹이고 함께 놀고 해서 친구들이 치켜세워줬어. 우리 집이 대단한 부자인 줄 알았지. 그러다가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우리 집이 가장 가난한 거야. 나란 존재는 한낱 먼지 같은 존재였어. 그때부터 캔디 같은 근성이 몸에 밴 것 같아. 어떤 환경에서든 꿋꿋하게 잘 살아남아야 한다고 결심했지.”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널 보면 긍정 마인드와 에너지가 샘솟는 게 느껴지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을 만나면 우울하고 짜증내고 한다더라고. 근데 나는 그 적들까지 신경이 쓰여. 사랑으로 보듬고 싶으니까 스트레스가 쌓이지. 안 보고 살면 되는데,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고. 잘 지내고 싶지.

 

언제 가장 우울하고 슬퍼?

 

인간관계가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와 오해 때문에 나와 멀어질 때지. 그것 말고는 어느 정도의 우울과 슬픔은 극복할 수 있어. 집에서 와인 한잔 마시면서 떨쳐내.

 

나이 드는 게 속상하거나 억울하지 않아?

 

30대 중반쯤부터 나이 관념이 사라졌어. 어느 순간부터 나이를 잊고 사는 것 같아. 20대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보냈고, 30대는 성숙해지기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했어. 솔직히 40대가 되면 여자로서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어. 지금은 40대가 또 다른 여유로움과 나눔을 통해 행복을 가질 수 있는 나이임을 깨달았지. 그래서 행복해졌어. 50대가 되면 더 성숙해지고, 사회에 나눔과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 조만간 실력은 있지만 돈이 없는 작가들을 위한 공간도 꾸며보려고 해.

 

어찌 됐건 나이와 외모, 늙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성형수술엔 아예 관심 없고.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

 

데뷔하고 수술 한 번 안 했잖아. 유일하게 한 쌍꺼풀 시술은 데뷔 전에 한 거고.

 

이 나이에 내가 젊은 애들 따라가려고 하면 오히려 더 불쌍해질 것 같아. 나이에 맞게 편안하게 즐기면서 사는 게 미덕 같아.

화가 변신한 이혜영 “내 상상력 바탕

‘부부리닷컴’ 쇼룸 전경.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혜영은 ‘아침형 인간’으로 연예계에서 유명하다. 그는 부지런함이 자신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도 젊은 시절엔 ‘밤에 깨어 밤새 노는’ 올빼미형에 가까웠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커피 한잔 마시며 집안일을 하고, 운동을 하는 시간이 즐겁다”고 했다.

 

요즘 퇴근 뒤에 내가 하는 일은 저녁 먹고 신랑이랑 와인 한잔 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야. 그리고 책을 읽어.

 

네가 순수하지만 순진하지 않은 건 책 때문이었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을 꼽으라면 책을 많이 읽은 거야. 닥치는 대로 읽는 편이야.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이미 읽었는데도 기억 못해 또 사기도 하고. 첫 장을 읽고 나서야 읽었던 책인지 알 때도 있어. 내 상상력의 원동력은 책인 거 같아. 초등학교 때부터 책읽기에 대한 욕구는 컸어. 살던 아파트에 오던 책 대여 트럭의 모든 책을 읽겠다고 맘을 먹고 읽은 적도 있었는걸. 그 당시에 <폭풍의 언덕> 같은 어려운 책도 읽었다니까. 대단하지?

 

와우~

 

아버지와 도로시를 한꺼번에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도 책으로 슬픔과 고통을 달랬어. 15년 함께 산 이모가 이런 말을 했어. 몸도 못 가누는 당시에도 거실, 욕실, 안방, 식탁에 책이 있었고 나는 항상 그 책을 읽고 있더래.

 

영화나 드라마보다 책이 더 좋아?

 

어, 나는 책이 좋아. 자기 전에 반드시 책을 봐. 텔레비전은 뉴스밖에 안 봐. 뉴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어. 각본 없는 드라마. 정치도 재밌고.

 

여하튼 인생은 각본 없이 살 수 없잖아? 앞으로 계획은?

 

난 한번도 계획을 세워 살아본 적이 없어.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해줘. 아니다. 어떻게 보면 큰 계획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 나는 내 이름을 남기고 싶거든. 이혜영의 그림과 문화, 자취를 남기고 싶어. 한국의 이혜영이라는 작가, 이혜영이라는 여자가 후손들에게 회자되는 게 나의 가장 큰 꿈이야.

 

그러고 보니 이혜영 인터뷰가 ‘김성일이 만난 사람’ 7탄이야. 행운의 숫자 7. 앞으로 다 잘될 거야.

 

운명을 바꾼다거나 행운을 바라고 인터뷰한 거 아닌데? 오빠를 위해서 한 거라고!

 

정리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