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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ESC

샤악, 샤악, 샤악···
엿장수 사악한 대패 소리

by한겨레

보통의 디저트

샤악, 샤악, 샤악··· 엿장수 사악
샤악, 샤악, 샤악··· 엿장수 사악

어릴 적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골목에서 놀고 있으면, 찔꺽찔꺽거리는 가위 소리가 들려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엿장수가 커다란 엿판을 실은 리어카를 끌고 느릿느릿 등장했다. 사이사이 네모나게 각이 진 가위를 손으로 번쩍 들어 다시 찔꺽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나에겐 그 모습이 황금마차를 몰고 오는 것처럼 근사해 보였다.

 

엿장수는 무뚝뚝한 얼굴을 한 40대 중년의 남성으로, 말이 없었다. 우르르 몰려든 아이 중 누군가가 “얼마예요?” 하고 물으면, 답하기 싫어 죽겠다는 듯이 “오십원” 하고 말했다. 마침 호주머니에 돈이 있던 아이가 오십원짜리를 건넸다. 돈을 받아든 그는 커다란 엿판을 덮고 있던 비닐을 걷고 아서왕이 엑스칼리버를 뽑아들듯 대패를 꺼내들었다. 이어 힘차게 엿 위를 스치는 대패. ‘샤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요술처럼 대패 날 위로 엿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모두 ‘우와~’ 소리를 내며 탄복했다. 달리 구경할 게 없어, 별게 다 신기한 때였다. 그때는 온종일 송충이가 꾸물거리는 것만 보고 있어도 즐거웠다.

 

아저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무젓가락을 꺼내 대팻날 위로 밀려나온 엿을 꿰었다. 돈을 낸 아이는 “이게 다예요?”라고 물었다. 오십원에 대패 한번이라니 실망한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대꾸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아이는 엿을 받아들었다. 돈이 없는 아이는 집으로 뛰어 들어가 프라이팬을 들고 나왔다. “이것만큼 엿 주세요!”라고 해맑게 웃는 아이에게 아저씨는 “너, 엄마한테 혼날걸”이라고 말했다. 배려인지, 염려인지 그도 아니면 책임전가인지, 경고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이는 “괜찮아요! 프라이팬 또 있는데!”라고 말한다. 프라이팬이야 또 있겠지. 하지만 두 개인 이유 역시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뭔지까지는 아이는 모른다. 아저씨는 분명히 알 테지만, 아무 말 않고 프라이팬을 받아든다. 이어지는 대팻날의 향연.

 

우리는 엿 그 자체보다 대패가 한번 스칠 때마다 요술처럼 늘어 가는, 하지만 엿판은 그대로인, 그 모습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샤악, 샤악, 샤악. 오십원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대패질은 계속됐다. 결국 커다란 배 정도 크기의 ‘엿 공’이 만들어졌다. 젓가락 한 개로는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부러질까 특별히 두 개가 꽂혀 있는 엿 공을 받아든 아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것이 머지않아 울음으로 바뀔 거라는 건 짐작도 못하고 말이다.

 

다른 아이들도 엿을 샀다. 돈을 내는 아이도 있지만, 그릇이나 냄비를 가져오는 아이도 있었다. 후자의 아이들에게 아저씨는 매번 “너, 엄마한테 혼날걸” 하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번복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 아이들의 선택(혹은 각오)을 존중해줬다. 당시 우리들의 결정을 인정해주는 최초이자 유일한 어른이었다.

 

난 방앗간 한쪽 골방에서 살아 부모님이 항상 곁에 있던 탓에 단 한번도 그릇을 가져가 본 적은 없었다. 매번 돈으로 사먹지도 못했다. 대신 가재도구와 엿을 맞바꿔 먹던 아이들의 커다란 ‘엿 공’을 종종 핥아 먹었을 뿐이다.

 

더 이상 돈이건 그릇이건 들고 나오는 아이가 없어지면 아저씨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네모 뭉툭한 가위를 찔꺽거리며 사라졌다. 단 한번도 가위를 사용해 무언가를 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호박엿 자르는 데 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호박엿은 팔질 않았다. 어쩌면 엿장수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보통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