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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흰 눈 뚫고 굽이치는
산길·물길

by한겨레

전국 꼬부랑 길·하천 여행…눈 녹고 출발해야 안전

지리산 여행길에 지안재·오도재 ‘지그재그’

수도리·하회마을·회룡포 등 물돌이 마을도 곳곳에

흰 눈 뚫고 굽이치는 산길·물길

경남 함양 지안재 굽잇길. 함양군청 제공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동요 <꼬부랑 할머니>(한태근 곡)의 첫 부분이다. 굽잇길 많은 우리나라 산길과 꼬부랑 고개를 걸어 넘는 허리 굽은 할머니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노래다. 산 많고 골 많은 우리나라에서 꼬부랑길, ‘지그재그’ 이어진 산길 없는 마을이 없을 터다. 강물이 산과 마을을 심하게 감싸고 도는 꼬부랑 물길, 물돌이 마을도 여러 곳이다. 전국의 ‘지그재그’ 산길·물길 여행지를 장태동 여행작가가 소개한다.

 

흰 눈 뚫고 굽이치는 산길·물길

한계령을 넘지 않을 수 없었다. 눈 내린 겨울 산 풍경, 굽이치며 달려 내려가는 지그재그 굽잇길 경치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대만큼 풍경은 아름다웠다. 한계령 정상에 차를 세우고 차 문을 열었다. 짜릿하게 찬 공기가 폐 깊숙한 곳까지 스며든다. 뼈대와 속살이 다 드러난 산줄기에 눈이 쌓였다. 흰 눈과 회색빛 기암절벽이 산수화의 깊이를 더한다. 그 사이를 비집고 구불구불 찻길이 이어진다. 겨울철 드라이브를 즐기기엔 험한 길이지만, 직접 와보지 않고서는 누릴 수 없는 호사다.

전국 지그재그 산길은 사진촬영 명소

굽이굽이 돌아가는 고갯길은 지리산에도 많다. 경남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길, 지안재를 넘으면 오도재가 나오고, 오도재를 넘어 지리산의 품에 든다. 지안재 산길의 굽이도는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7~8회나 좌우로 심하게 핸들을 돌리며 올라야 하는 고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겹쳐진 굽잇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내의 대표적인 꼬부랑길 풍경으로, 사진가들 발길이 잦은 곳이다. 지안재(지안치)는 ‘제한치’가 변한 것이다. 조선시대 고개 밑 마을에 말을 쉬어 가게 하던, 제한역이 설치됐던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지리산 정령치와 성삼재도 지그재그 굽잇길이다. 달궁계곡을 지나 성삼재 또는 정령치를 넘는 드라이브를 즐겨볼 만하다. 정령치는 마한의 왕이 진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명을 내려 고갯마루를 지키게 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성삼재 또한 마한의 장군 셋이 지키던 고개였는데 그 세 명의 장수 이름이 다 달라서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충북 영동에는 도마령이 있다. 고갯길 오른쪽은 940m가 넘는 천만산이고 왼쪽에는 1200m에 가까운 각호산이 자리잡았다. 천만산 아래는 천마령이, 각호산 아래는 민주지산이 이어진다. 그 사이를 비집고 산을 넘는 굽잇길이 바로 ‘도마령’이다. 도마령은 높이가 800m 정도이므로, 그나마 주변 산줄기 가운데 가장 낮은 곳이다.

흰 눈 뚫고 굽이치는 산길·물길

충북 영동 도마령의 굽잇길.

도마령을 넘어 용화를 지나 설천으로 가면 나제통문이다. 경상·전라·충청도가 접한다는 삼도봉도 민주지산 아래에 있다. 그러니 도마령을 넘는 그 길은 예나 지금이나 삼도가 모이는 접경지대였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주변 지명에는 특별히 군대와 관련된 것이 많다. ‘도마령’ 자체가 ‘말을 키우는 마을’ 또는 ‘칼을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었던 고개’라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또 고개 옆 ‘천만산’과 ‘천마령’ 부근에는 옛 성터가 남아 있고 능선 주변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마을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그곳은 군대에 쓰일 말을 조련하던 터였다. 당시 1000마리를 키웠던 데서 ‘천만산’ ‘천마령’ 지명이 나왔다고 한다.

흰 눈 뚫고 굽이치는 산길·물길

경남 산청 둔철산 기슭의 정취암으로 오르는 도로.

경남 산청군 둔철산 동쪽 기슭에 정취암이 있다. 암자로 오르는 길도 굽잇길이다. 지안재나 흑산도 산굽잇길같이 그 굽이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산으로 올라가며 굽이도는 모양이 봐줄 만하다. 암자가 절벽 위에 있다. 숲 밖에서 보면 바위절벽에 암자가 붙어 있는 모습이다. 암자 작은 마당에 서서 저 멀리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밀려오는 희미한 산줄기의 물결을 본다.

 

정취암은 신라 문무왕 6년에 의상대사가 지은 절이다. 정취암 부근에는 율곡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은 원효대사가 지었다.

산굽이 따라 돌아가는 물굽이

물도리동·수도리·하회마을·회룡포…. 모두 물길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형세에서 나온 지명이다. 물길은 산줄기의 비호를 받으며 마을을 품고 흐른다.

 

경북 예천 내성천이 품은 마을이 회룡포 마을이다. 물길이 ‘오메가’ 형상으로 마을을 한 바퀴 감싸고 흐른다. 그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회룡대 정자까지 올라가야 한다. 강물 안쪽은 모래밭이고 그 안은 논이다. 그리고 마을은 논 가운데 있다. 회룡대에서 내려와 회룡포 마을로 들어간다.

흰 눈 뚫고 굽이치는 산길·물길

경북 예천 회룡대에서 바라본 회룡포 마을.

회룡포 마을을 휘감고 돌아 흐르던 물줄기가 금천을 만나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합수지점에 삼강마을이 있다. 강 세 개가 만난다고 해서 삼강마을이 됐다. 그리고 그 마을에는 삼강주막이 있다. 삼강마을을 휘감고 돌아 흐르는 낙동강 물굽이 풍경을 보려면 범등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나뭇가지에 가려 시원하게 시야가 트이지는 않지만 굽이도는 물길을 감상하기엔 괜찮다. 전망대에서 다시 삼강주막으로 내려간다. 낙동강에 배 띄우고 놀았다던 옛이야기가 흐르는 삼강나루터 주막에 앉아 배추전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이들이 많다.

 

강원도 정선군 병방치에 오르면 굽이돌며 흐르는 동강을 굽어볼 수 있다. 병방치 스카이워크와 집와이어를 잇는 데크길 가운데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굽이돌며 흐르는 동강의 시퍼런 물줄기와 한반도 지형을 닮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병방치는 강과 절벽에 갇힌 정선 귤암리 사람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던 유일한 고개였다. 경사가 심해 ‘갈 지(之)’자로 길을 내야 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서른여섯 굽이를 다 돌아야 고갯마루에 다다를 수 있었던 그 길이 뱅뱅이재다. 뱅뱅 돌고 도는 길이라고 해서 뱅뱅이재라고 불렀다.

 

새벽밥을 먹고 집을 나서야 했다. 장에 내다 팔 것들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산길을 올랐다. 다리가 팍팍해지면 쉬었다 갔다. 고개를 넘나들던 사람들은 그곳을 지게목이라고 불렀다. 그 길에 지게목이 두 군데다.

흰 눈 뚫고 굽이치는 산길·물길

강원 정선 병방치 전망대에서 본 동강 물줄기.

남한강 물줄기는 굽이돌며 흐르면서 충주시를 지난다.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 장미산성이다. 장미산성, 이름 참 예쁘다. 영토와 사람을 지키는 보루이자 침략의 전초기지, 창칼과 화포가 서로의 심장을 겨눈 전장, 그 한가운데 자리한 성 이름이 ‘장미’라니! 보련이와 장미 남매의 슬픈 전설에서 이름을 따온 장미산성, 산성이 있는 산 이름도 장미산이다. 장미산성은 고구려의 성이다. 산성의 구축 시기에 대한 의견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 고구려 장수왕 때 남진정책으로 충주 지역을 점령했을 당시에 쌓은 성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성곽 위에 난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이 굽어지는 곳에 의자가 놓였다. 전망 좋은 곳이다.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 없다. 통쾌하다. 얼굴을 에는 칼바람이 오히려 상쾌하다.

 

남한강을 경계로 동쪽은 소태면, 서쪽은 앙성면이다. 산줄기와 남한강 물줄기가 어울렸다. 겨울산은 힘줄 불거진 팔뚝 같다. 힘이 느껴진다. 산굽이를 따라 굽이돌며 흐르는 남한강 물줄기는 평온하다. 강가에, 산의 품에 깃들여 사는 사람 사는 마을이 아늑하다.

Zigzag

지그재그. 알파벳 제트(Z) 또는 한자 갈지(之)자 형태나 그러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함. 프랑스어로는 ‘우여곡절’이란 뜻도 있음. 건축, 패션, 게임 등 일상생활에서 두루 쓰이고 있으며,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행동이나 인생을 상징하기도 함.

글·사진 장태동/여행작가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