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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세상을 바꾸고 싶은 영화들

by한겨레

용산참사 그 이후 담은 ‘공동정범’

살아남은 철거민들 ‘악몽’ 재조명

국가폭력 책임 묻고 진상규명 촉구

 

‘방산비리’ 실화 바탕한 ‘1급기밀’

조직과 맞선 내부고발자의 피해

탄탄한 연기로 속도감 있게 풀어

 

‘택시운전사’ ‘공범자들’ ‘1987’ 등

역사·사회문제 다룬 영화 바람타고

‘인간성에 대한 희망’ 찾기

 

지난해 한국 영화 시장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막론하고 역사적·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흥행을 주도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노무현입니다>가 180만명,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명한 <택시운전사>가 1218만명을 동원했다. 공영방송 수난사를 다룬 다큐 <공범자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아이 캔 스피크>도 선전했다. 6월 항쟁의 역사를 녹여낸 <1987>도 600만명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순항 중이다. ‘적폐청산’을 내건 새 정부 출범에 발맞춰 영화계도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움직임에 동참한 셈이다. 올해도 연초부터 이런 흐름을 이어갈 영화 두 편이 잇달아 개봉한다. 과연 관객은 2018년에도 이들 영화에 공감하고 화답할까?

세상을 바꾸고 싶은 영화들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용산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다큐 <공동정범>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 망루에 화재가 발생한다. “철거민 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검찰은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로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철거민들을 사법처리한다. 꼬박 4년의 옥살이를 끝낸 이들은 지난해 연말에서야 특별사면됐다.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보였고, 용산은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갔다. 하지만 과연 모든 것이 끝났을까?

 

오는 25일 개봉하는 다큐 <공동정범>은 “끝나지 않은 용산의 악몽”에 대해 말한다. 2012년 김일란·홍지유 감독이 만든 <두 개의 문>이 법정진술과 채증 영상 등을 두루 살피며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집중했다면, 김일란·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은 참사 이후 철거민들이 겪고 있는 깊고 어두운 트라우마를 집중 조명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영화들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는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이충연 철거민대책위원장을 비롯해 경찰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복역한 철거민 5명의 인터뷰로 구성된다. “출소하고 나니 더 큰 감옥에 갇혔다”는 한 철거민의 말처럼, 이들은 참사를 겪은 뒤 끝없는 악몽에 시달린다. 일부는 알코올 의존 증세와 분노조절장애를 겪는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점차 원망과 불신으로 변해갔다. 진상규명을 위해 힘을 합쳐 싸우는 대신 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감정의 골을 깊게 파고 있었다. ‘공동정범’으로 함께 재판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갈등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2015년 진상규명을 위한 좌담회에서 비로소 모두 함께 마주한 생존자들은 억눌러왔던 분노와 억울함을 폭발시킨다. 카메라는 이 모든 과정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러닝타임 내내 길고 담담한 호흡으로 이어져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이들의 눈물과 한숨 앞에 모든 것은 그저 먹먹한 공감으로 다가온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영화들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는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자신을 책망하고 서로를 원망했던 그 시간도 결국 ‘국가폭력의 탓’임을 폭로한다.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는 한, 용산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부조리를 저격한 정의로운 군인의 싸움…<1급기밀>

<1급기밀>은 방산비리를 은폐하려는 권력집단에 맞선 한 군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1997년 국방부 조달본부 군무원의 전투기 부품 납품비리 폭로, 2002년 공군 차세대 전투기 선정 외압 폭로, 2009년 해군 납품비리 폭로 등 용감한 군 내부고발자들의 실화가 모티브가 됐다.

 

야전을 전전하다 승진에서 ‘물을 먹은’ 박대익 중령(김상경)은 국방부 핵심 요직 중 하나인 군수본부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발령이 난다. ‘출세의 고속도로’를 타게 된 기쁨도 잠시뿐. 항공기 부품 납품업무를 관장하던 박 중령은 공군 전투기 조종사 강영우 대위(정일우)의 문제제기로 한 미국 업체가 특혜를 받고 있음을 눈치챈다. 강 대위가 전투기 부품 결함으로 추락 사고를 당하자 박 중령은 부품조달 특혜 문제를 파헤치려 하지만, 상관인 천 장군(최무성)과 남 대령(최귀화)은 “식구들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며 방해한다. 박 중령은 기자인 김정숙(김옥빈)을 접촉해 방송을 통해 거대 비리를 폭로하려 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영화들

영화 '1급기밀'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는 군 수뇌부와 비호 세력, 그리고 이에 맞서는 한 군인과 기자의 싸움을 속도감 넘치게 풀어낸다. 전문적인 군사용어와 생경한 군 조직 체계 등이 발목을 잡을 법도 하지만, 이미 뉴스를 통해 보도된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이해가 그리 어렵지 않다. 주연 김상경을 비롯해 최무성·최귀화 등 조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잊힐 만하면 불거지는 ‘방산비리’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점, 내부고발자가 조직 안에서 겪는 고통과 피해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점 등도 후한 점수를 받아 마땅하다. 다만 플롯이 촘촘하지 않아 다소간의 비약이 눈에 띄는 점은 아쉽다. 진실을 폭로하는 마지막 과정을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세상을 바꾸고 싶은 영화들

영화 '1급기밀'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1급기밀>은 비전향 장기수 이야기를 다룬 <선택>(2003), <이태원 살인사건>(2009)에 이은 고 홍기선 감독의 ‘사회고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촬영이 끝난 직후인 2016년 12월 홍 감독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개봉이 미뤄졌고, 이은 감독이 바통을 이어 후반 작업을 맡았다. “영화의 역할은 우선 현실을 알리고 기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 인간 사회는 더욱 악화될 것이지만 인간성에 대한 희망은 버리지 않아야 한다. 영화는 그러한 희망에 관해 말하는 것”이라던 홍 감독의 소신과 뚝심이 담긴 유작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