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추운 겨울에도 회장님 오는 날엔 유니폼만 입고 서 있었어요”

by한겨레

박삼구 회장 성희롱 의혹 보도 뒤 승무원들과 ‘단톡’


“새벽부터 관리자들 나와 동원”

“식사때도, 화장실 가도 데려가”

“항공안전 조처 브리핑 빼기도”

“신입 교육 뒤 정례적 회장 인사”

아시아나항공 성희롱 의혹에 “사실과 달라“ 브리핑 미실시는 “확인하겠다”

“추운 겨울에도 회장님 오는 날엔 유

아시아나항공 항공기. 사진 아시아나항공 제공

“제 꿈이 사직서 내기 전에 박 회장 만행을 동영상에 담아 언론사에 퍼뜨리는 것이었는데, 누가 대신 알려준 것 같아 좋긴 한데 한편으론 씁쓸하네요.”

 

박삼구(73)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여성 승무원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하는 등 성추행 의혹 보도 후 승무원 ㄱ씨는 자신의 오랜 소망을 말하며 씁쓸해했다. 승무원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누구보다 컸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반면 박삼구 회장은 물론 회사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지난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도 “지켜봐 달라”고만 할 뿐이었다. <한겨레>는 지난 5일부터 이틀간 10년 이상 경력의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3명과 단체 카톡방에서 얘기를 나눴다. 가급적 그들이 말한 날 것 그대로를 옮긴다.

정기적인 ‘회장님 맞이’ 행사

박삼구 회장은 거의 매달 첫째 주 목요일 아침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타운)를 찾아 여승무원들을 만났다.

 

- ‘회장님 맞이’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행사인가요?

 

ㄱ 승무원

 

“예전에는 이렇게 정기적이고 공식적인 행사는 없었어요. 박 회장이 가끔 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사하는 정도였죠. 그러다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갈라서면서 정기적으로 오게 됐죠. 의기소침해진 회장을 위해 ‘기운을 드리자'는 중간 관리자들이 있었어요. 처음엔 ‘악수 좀 해드리라' 식으로 승무원들을 이용했고, 박 회장은 본인을 승무원들이 반기니까 좋아하고, 그걸 보면서 관리자들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승무원들에게 요구했죠. 어느 순간부터는 박 회장이 ‘요즘은 승무원들이 나를 대하는 게 예전 같지 않아’라는 말 한마디만 나와도 난리가 나고 그런 식이었죠.”

“추운 겨울에도 회장님 오는 날엔 유

- ‘회장님 온 날’을 어떻게 기억하세요?

 

ㄴ 승무원

 

“추운 겨울에도 박 회장 오는 날은 새벽부터 관리자들이 우르르 나와 있어요. (본사로 출근한 승무원들한테) 회사 유니폼 외 옷들은 벗고 들어가라고 합니다. 7cm 힐을 신고, 회장님 오실 때까지 20~30분을 내리 서 있어야 합니다.”

 

ㄷ 승무원

 

“승무원들은 추운 날, 개인 코트나 얇은 패딩 잠바를 입고 다니는데, 박 회장 오는 날은 회사 내에서 유니폼 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말라고 해요. 회장님 오는 날, 파트장들이 바깥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본관 들어갈 때, 외투를) 벗고 들어가라고 말하는 걸 직접 봤어요.”

 

- 비행을 앞두고 식사하는 승무원도, 화장실 가는 승무원도 예외는 아니라면서요?

 

ㄴ 승무원

 

“(회장님 오는 날은) 관리자들이 우르르 돌아다니며 밥 먹는 승무원, 심지어 화장실 가는 승무원도 따라와서 (회장님 맞이를 위해) 데려갑니다. 비행 전 식사 때도 회장님이 오면, 숟가락 놓아야 할 때가 많아요.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면, 그날 비행에 집중이 안 되고 실제 비행에서 꼭 실수가 생기더라고요.”

“추운 겨울에도 회장님 오는 날엔 유

- 직접 만났을 때 박 회장이 한 말 가운데 기억에 남는 말 있나요?

 

ㄷ 승무원

 

“‘내가 너희(여성 승무원들)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아느냐?’, ‘너희 보고 싶을 때마다 핸드폰 사진을 본다.’ 이제껏 저희랑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핸드폰에 저장해뒀다고 들었어요. 또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해서 복근 생겼다. 한번 만져볼래?’도 있어요.”

 

- 박 회장 맞이 행사에 참여해서 업무에 지장 받는 일이 있었나요?

 

ㄱ 승무원

 

“문제가 되죠. 브리핑 시간은 보통 10분인데, 이 시간에 하는 일이 비행기 안에 응급조치 키트는 어디에 있는지, 승객들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거든요. 국토교통부 관련 규정을 봐도 승무원들이 비행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돼 있어요. 그런데, 박 회장이 오면 이 브리핑에 참여를 못 하는 것이죠. 지난해 한 승무원이 장거리 비행을 가야 하는데, 박 회장 앞에서 ‘비행하러 가야 한다'는 말을 못하고 20~30분 붙잡혀 있다가 비행에 늦게 합류한 적이 있어요.”

 

- 신입 승무원들은 박 회장 사무실로 인사를 간다던데요?

 

ㄱ 승무원

 

“요즘은 교육원 수료식을 토요일 한대요. 수료식 하는 날 광화문 박 회장 직무실로 모든 승무원이 찾아가 인사를 한다고 하네요. 신입 교육 끝나고, 광화문에서 박 회장을 만나는 건, 매년 해온 일이라고 하고요.”

 

ㄴ 승무원

 

“2012년 승무원 교육 마지막 주엔 그 기수가 광화문에 가서 (박 회장 사무실이 있는) 27층으로 올라갔대요. 박 회장과 승무원들만 남는 것이죠. 덕담이랍시고 이런저런 얘길 나누는 거 같은데, 듣기로는 박 회장이 갓 입사한 승무원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모든 걸 이뤄서 부럽다고 생각하지만 하나 못 이룬 게 있다면 그건 비행탑승훈련 조교다. 그게 못다 이룬 꿈'이라 말을 했다고 해요. 조교는 승무원들하고 수영장 훈련을 하거든요.”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쪽은 신입 승무원들의 서울 광화문 사옥 방문은 “교육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또 브리핑 미실시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이와 관련된 보고가 없었다. 관련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추운 겨울에도 회장님 오는 날엔 유

바지 유니폼·단발머리 금지?

박 회장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승무원들의 외모나 의상을 제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바지 유니폼이나 단발머리 금지를 풀 것을 권고했다.

 

ㄴ 승무원

 

“(인권위원회 권고) 이후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봐요. 바지 유니폼은 강성 노조 조합원이나 입는 옷으로 찍힌듯한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용기로는 입고 다니기 힘든 옷이죠. 바지를 선호하는 승무원이 있다는 건 분명해요. 동료 중에도 바지를 신청했더니, 다음날 파트장이 전화해서 입을 거냐고 묻는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화까지 오니 무서워서 신청 취소했고요.”

 

ㄷ 승무원

 

“현재 바지 입는 승무원, 단발머리인 승무원은 소수고 이분들은 박 회장이 방문하는 매월 첫째 주 목요일엔 스케줄이 오프이거나 오후 출근이라고 합니다. 회장 눈에 아예 띄지 않게 다른 부서와 협의해서 조처하는 거죠.”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쪽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에어부산도 박 회장 기쁨조?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부산 여성 승무원들도 같은 피해를 봤다는 의혹도 나왔다.

 

ㄱ 승무원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글 보면, ‘저기(에어부산)도 똑같구나’라는 생각했습니다.”

 

ㄷ 승무원

 

“분명한 건 에어부산 승무원들도 불만이 많았더라고요.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 에어부산 직원들만 가입하고 쓸 수 있는 블라인드 앱 에어부산 게시판엔 ‘(박삼구) 회장님 접견 시 맞이하는 조가 나뉘어 있다. 팔짱을 끼고 리액션을 담당하는 이가 있고, 마지막에 박 회장이 돌아가려고 하면 ‘가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조까지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에어부산의 한 승무원 역시 <한겨레>에 “에어부산에서도 박 회장을 만날 때 (아시아나항공처럼) 비슷한 행사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에어부산 관계자는 “객실 승무원은 자체적으로 선발하다 보니 회장님을 만날 기회가 없어 서울로 훈련받으러 올라갈 때 마련한 자리”라면서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을 방지하려고 승무원들이 자유롭게 사전 질문 등을 준비한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관련 행사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톡에 참여한 ㄱ승무원은 “매년 성희롱 교육은 항상 하지만, 이런 일은 끊이지 않고 있거든요. 이번에 꼭 뿌리 뽑혔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회장과 아시아나항공의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박수진 최하얀 기자 jjin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