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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이혼했지만 우린 매일 만나요”

by한겨레

2016년 기준 혼인 대비 이혼율 38.10%

이혼 이후 관계도 다양한 형태

친구·동업 관계 유지하는 커플도

미움 털어내고 이해·존중하는 맘이 비결

“이혼했지만 우린 매일 만나요”

클립아트코리아

통계청의 이혼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대한민국의 총 이혼 건수는 10만7300건. 혼인 대비 이혼 비율은 38.10%로 무려 3분의 1가량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참고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서구식 사고방식, 서로 더 행복해지기 위한 해결책이라 여기는 젊은 세대의 ‘쿨’한 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이혼은 더 이상 숨기거나 감춰야 할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혼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상대에 대한 미움도, 분노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이혼이라는 과제를 겪어야 한다면 ‘제대로 헤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명하게 헤어지되 서로 공존하는 삶을 택한 두 이혼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리는 고교 동창…이혼하고도 여전히 친구

시끌벅적한 놀이동산. 40대 김희수(가명)씨가 막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와 솜사탕을 먹으며 깔깔거리고 있다. 그 옆에는 한없이 다정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동갑내기 한성수(가명)씨가 있다. 누가 봐도 다정한 부부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가을, 9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사이다. 태어나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줄곧 산 김씨는 남편 한성수씨와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17살부터 교제를 시작해 대학교를 졸업하던 29살에 결혼식을 올렸다. 20여년이 넘는 긴 인연을 뒤로하고 이혼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서로에 대한 권태감 때문이었다. 2012년에 딸을 출산하면서부터 둘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연애 시절의 설렘은 차치하더라도 서로 존중하지도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긴 연애 기간을 거치면서 서로 누구보다도 상대를 잘 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배우자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듯, 제대로 된 대화 한 번을 나눈 적이 없는 날이 늘었다. 집 안에서 타인보다도 못한 관계로 지내왔다. 대출금과 육아, 빠듯한 살림과 고부 갈등까지 폭풍처럼 다가왔다. 위기가 다가올 때마다 서로 폭언을 일삼는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이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모두의 축복 속에 한 결혼과는 달리 이혼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막 유치원에 입학한 아이 문제부터 양육비, 공동명의의 주택과 양가 부모의 반대까지, ‘결혼은 환상이지만 이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았다. 부부는 이별을 분노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단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분리의 과정으로 삼았다.

 

우선 이혼에 앞서 별거를 통해 상대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연애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낳기 이전까지의 관계와 현재의 관계를 고려해본 뒤 차분하고 정확하게 이혼을 준비했다.

 

육아 문제를 최우선으로 놓고, 부부로서는 실패했지만 아이의 부모로서는 각자 최선을 다하기로 합의를 봤다.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남편 한씨가 아이를 보살피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부인 김씨가 육아를 전담하는 것으로 규칙을 정했다. 공동 소유였던 주택은 소유권을 그대로 두되 임대 수익이 발생할 경우 절반씩 나누기로 했다. 주택을 정리해 절반으로 나눌 수도 있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생길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고자 결정한 일이었다. 아이에게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명하는 ‘장기적인 계획’도 세웠다.

 

지금은 남남이지만, 청소년기부터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였던 두 사람이기에 놀이동산이나 공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도 간다. 가끔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등산 등 운동을 함께할 때도 있다. 함께한 세월과 추억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남편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내 아이의 아버지잖아요.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불행하게 함께 살며 서로에 대한 미움을 쌓았던 과거보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현재가 훨씬 행복합니다.” 김희수씨의 말이다.

엑스 와이프는 가장 믿는 최고의 동업자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에 위치한 작은 카페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저렴한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30대 주인 커플의 친절한 서비스가 인근의 사람들을 단골로 끌어들였다. 이곳을 자주 드나드는 주민이라면 아내 정소영(가명)씨와 남편 남희원(가명)씨가 이혼한 사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들이 이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대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얘기해온 덕분이다. 부부가 결혼을 한 2013년에 카페는 문을 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정씨와 남씨는 결혼을 하면서 자영업을 해보기로 결심했고, 그동안 모아놓았던 자산과 은행 대출을 합쳐 카페를 차렸다. 월급을 주기적으로 받는 안정적인 직장인과 달리 자영업자에게 수입은 가장 신경 쓰이는 생활의 요소다. 손님이 많은 달과 그렇지 않은 달의 수익 차이에 불안을 느낀 남편 남씨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카페 인근에 저녁 손님을 겨냥한 와인 바를 열면서 부부의 사이는 서먹해지기 시작했다. 애초 와인 바를 반대했던 아내 정씨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강행한 탓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와인 바는 카페와 달리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수익이 떨어지고 대출 이자에 대한 압박까지 겹치며 다투는 날이 잦아졌고 부부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경제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서운함이 겹쳐 서로 원망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법적 절차 등 여러 가지 과정을 겪으면서, 이혼은 긴 인생에서 하나의 과정이자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아내 정씨는 고백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 벌어졌던 오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부부는 이혼 뒤에도 카페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비슷한 금액을 투자했으며, 같은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이기에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놓아버리기엔 아까운 가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낸 수익을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누는 것이 분쟁을 피하는 첫번째 방법이었다. 재료나 비품 구매 등 운영에 필요한 모든 금액은 미리 일정 금액을 넣어둔 공동통장에서 사용한다.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불편할 법도 한데, ‘공동투자자’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남편 남씨는 말한다. “하루 대부분을 카페에서 보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상생활을 공유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담백하고 깔끔하게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투자자이자 친구가 된 셈입니다.”

이혼

부부가 유지되어온 결합 관계를 해소하는 행위. 크게 협의 이혼과 재판 이혼이 있다. 재판 이혼은 조정 이혼과 소송 이혼으로 나뉜다. 최근 국내 한 재벌 총수 부부의 이혼 조정 실패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선 매해 10만건 이상 이혼이 이뤄지는데, 설과 추석 명절 뒤 신청 건수가 급증한다. 현재까지 최고의 이혼 위자료는 1999년 미국의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전 아내에게 준 17억달러(약 1조8200억원)다.

이혼 후 친구·동료로 지내는 방법

 

1. 부부 사이를 유지하던 때의 감정을 섣불리 꺼내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서운함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순간의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단 내가 준 상처와 아픔에 대해 먼저 생각할 것.

 

2. 아이가 있는 경우, 아이를 최우선으로 두고 생각하기. 부부의 감정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아이에게는 부모의 불화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육아 문제일수록 정확한 기준을 세우고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이 좋다.

 

3. 공동 소유의 재산이 있다면 정확하게 나눌 것. 이혼할 당시 제대로 재산을 분할해야 이후에 생길 수 있는 경제적 분쟁을 막을 수 있다.

 

4. 상대방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을 것. 이혼 후에도 과거의 인연을 현재의 상황이라 착각해 간섭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이혼을 한 이상, 상대방은 완벽한 타인이다. 지나치게 관심을 두거나 참견을 하는 행위는 폭력적이다.

 

5. 이혼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혼은 치부도, 잘못된 일도 아닌 하나의 삶의 과정일 뿐이다. 이혼에 대해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를 견지할수록 서로에 대한 상처도 빠르게 아문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