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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내 안의 ‘여성혐오’를
치열하게 반성해야 할 때

by한겨레

‘미투’(#MeToo) 운동을 대하는 자세

내 안의 ‘여성혐오’를 치열하게 반성

한 연극인이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지난 19일 서울 창경궁로 30스튜디오에서 연 성추행 사과 기자회견에서 당사자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9년 고 장자연 리스트 공개됐지만

‘연예계는 원래 그래’ 가십으로 소비돼

사회적 매장 각오하고 피해 고발해도

‘꽃뱀’ ‘이상한 사람’ 마녀사냥 당해


최근 할리우드 이어 국내도 ‘미투’ 운동

시인 고은, 연출가 이윤택 등 도마 위에

단순히 문화계의 특수한 문제 아닌

여성혐오 문화가 낳은 병폐로 봐야

 

“장자연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미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둘만 있었어도 세상이 조금 은 달라지지 않았겠나.”

 

해시태그 ‘미투’(#MeToo) 운동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소셜네트워크 타임라인 한가운데에 던져진 이 발언은 적잖은 논란을 낳았다. 2009년 장자연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더 일찌감치 이 문제가 화두가 되지 못했던 건 피해 생존자들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로 읽힐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문제가 되자 발언의 주인공인 유명인사는 해명에 나섰다. 미투 운동을 특정 정치세력의 음모라고 몰고 가는 음모론자들과 여성 혐오자들, ‘미투 운동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분란만 남기지 않겠느냐’고 폄하하는 이들을 반박하고 운동을 지지하는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였다고.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는 그의 선의를 의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은 선의를 지니고도 얼마든 결례를 범할 수 있다.

그릇되게 소비됐던 ‘장자연 리스트’

2009년과 2018년 사이, 아니, 사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높인 생존자들은 꾸준히 있었다. 다만 그동안 꾸준히 꽃뱀으로 몰리거나 묵살당하고, ‘원래 이 바닥이 그렇게 더럽고 험하다’는 식의 체념을 강요당했을 뿐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연극연출가 이윤택에 대한 고발을 이어간 배우 이승비의 글을 보자. 그는 이윤택이 발성 연습을 핑계로 성추행을 저지르자 그 사실을 곧바로 국립극장 행정실에 고발했다. 그러나 이승비는 그 사실에 대한 어떠한 피드백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공연 횟수가 총 10회 중 7회에서 5회로 줄었다는 사실만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그는 그날 공연에 오르지 못할 만큼 깊은 충격을 받고 응급실에 실려 갔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연대의 손길을 뻗는 대신 최초로 국립극장 공연을 펑크 낸 배우라는 낙인을 찍어 마녀사냥을 했다.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던 건 피해 생존자들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그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실을 말하고 도움을 구하면 사람들이 내 말을 믿고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가 철저하게 무너진 세상에서, 커리어의 종말과 사회적 매장을 각오하며 고발에 나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미투 운동은 그 어려운 각오를 하며 목소리를 높인 이들이 꾸준히 등장해 세상의 불신과 싸웠던 역사가 누적되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 할 것이다. 마치 2000년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의 경험이 2016년 문화계 각 분야 내 성폭력 가해자를 고발했던 해시태그 ‘○○_내_성폭력’ 운동에 영감을 주고, 그 경험이 다시 오늘날 한국 내 미투 운동의 자양분이 된 것처럼. 혹은 미투 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연대를 통해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주자고 일어선 일과, 배우 로즈 맥가원이 하비 와인스틴을 고발해 미투 운동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일 사이에 10년의 역사가 있었던 것처럼.

 

돌이켜 보면 우린 장자연씨가 리스트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일을 진지하게 다루는 데 실패했다. 고인이 목숨을 걸고 남긴 고발은 종종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 착취도 참고 견뎌야 한다더라’는 식의 안줏거리 가십으로 소비되었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당대 톱클래스에 오른 여성 연예인들을 훑어보며 ‘분명 아무개는 스폰서가 있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떠드는 이들은 꾸준히 루머를 퍼 날랐다. 거대 보수언론 사주 일가의 이름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부각되자 갑자기 프레임은 ‘성 착취를 일삼고도 진실을 은폐하려 드는 사악한 보수언론 대 그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선량한 우리’라는 구도로 왜곡됐다. 이와 같은 현실을 고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영화감독들은 제 영화 속에 관습처럼 젊은 여성들이 도열한 룸살롱 장면을 삽입했다. 한국 사회는 젊은 여성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여성혐오적 강간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자성하는 대신 이 문제를 ‘연예계 일각의 문제’나 ‘부패한 권력자와 그에 유착한 보수언론의 문제’로 축소해 안전하게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연예계 종사자도 아니고 권력자도 아니며 보수언론을 구독하지도 않는 이들은 연예계와 권력자와 보수언론을 욕하는 것으로 손쉽게 이 문제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내 안의 ‘여성혐오’를 치열하게 반성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지난 19일 서울 창경궁로 30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성추행에 대해 사과한 뒤 극장을 나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물론 연예계나 연극계, 영화계 등 문화예술계의 특성에서 기인한 맥락이라는 것도 분명 있긴 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격성과 무례함, 괴팍함을 예술가의 광기 정도로 포장하는 기괴한 낭만주의나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상하 간의 위계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식의 수직적 집단주의, 고통을 견뎌내어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만이 진정한 예술가라는 식의 중세적 예술관, 그리고 시스템으로 인재를 육성하는 대신 ‘○○계의 큰 어른’을 개인 숭배하며 그의 주변에서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조직의 분위기 따위가 이와 같은 성적 착취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한국에 그렇지 않은 곳이 어디 있긴 한가? 우리는 무례하고 폭력적인 이들을 ‘사람을 대하는 데에는 서툴지만 사실 속내는 따뜻한 사람’ 따위로 수식하는 데 익숙하고, 어느 조직이든 기강을 바로 세우려면 위계질서가 중요하다는 식의 논리를 내면화한다. 고통을 이겨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식의 기괴한 말로 청춘을 위로하며, 시스템을 세우는 대신 탁월한 개인을 열렬히 숭배한다. 결국 그 어떤 고발도 그저 연예계의 문제, 연극계의 문제, 영화계의 문제로 국한해 읽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피해 생존자들의 말을 경청하라”

착취와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게 여성임에도 여전히 여성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도 이 문제가 단순히 문화예술계 일각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창구에는 고발에 나선 생존자들을 ‘꽃뱀’이라 비난하며 “연극계 꽃뱀 청산해주세요”라는 한심한 청원이 올라온다. 교과서 집필진이 이윤택과 오태석의 작품을 연극 교과서에서 뺀다는 기사 밑에는 “여성단체들은 뭐 하냐”는 댓글이 달린다. 아마 댓글을 단 이에게 몇몇 사실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이를테면 단체가 입장을 정리해 성명서를 발표하는 데는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나, 성명서를 발표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고발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 혹은 이윤택을 규탄하는 여성단체들의 성명서는 진즉에 나왔다는 사실 말이다.

 

국민청원이나 뉴스 댓글난은 누구나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구조이니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는 건 그렇다 치자. 유튜브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 정치 비평 유튜버는 배우 정려원이 연말 연기상 수상 소감에서 성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자는 발언을 남긴 일을 두고 뜬금없이 “여성운동은 성폭력의 만연보다 몸 로비와 꽃뱀의 만연부터 먼저 근절을 하라”고 훈수를 두며 운동을 하려면 구조를 봐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럼 아무리 일을 잘해도 기회를 얻어 성공하려면 힘 있는 남성들의 성적 요구를 견뎌야 하는 이 혐오스러운 구조를 만든 게 설마하니 여성이겠나? 심지어 한 유력 문인은 고은 시인의 비행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의 시가 화제가 되자 최영미 시인이 원래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맹비난에 나섰다. 피해 사실을 고발하면 ‘꽃뱀’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고, 지지발언을 하면 ‘몸 로비부터 근절하라’는 훈계를 듣고, 지지발언을 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면 ‘뭐 하고 있었냐’는 비난을 받는 상황. 이게 2018년 미투 운동에 나선 생존자들이 맞서야 하는 세상의 민낯이다.

 

불행히도 우린 앞으로도 더 많은 고발과 폭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미 고은, 이윤택, 오태석, 영화감독 조근현, 배우 조민기의 이름이 세상의 볕 아래 드러났고, 아직은 이니셜 뒤에 가려진 유명 연예인들의 이름도 하나둘 세간을 떠다닌다. 아주 길게 늘어날 그 폭로 속에서, 부디 우리 사회가 가해자만을 맹비난하고 끝내는 것으로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여성혐오적 강간문화에 대한 논의를 편리하게 피해가지 않길 기원한다. 이제 생존자들의 말을 겸허하게 경청하고, 우리 안의 여성혐오를 더 치열하게 반성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