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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스피드·낭만 날개를 단 ‘야생마’ 머스탱

by한겨레

스피드·낭만 날개를 단 ‘야생마’ 머

포드 머스탱은 아마도 영화와 음악의 소재로 가장 많이 쓰인 차일 것이다. 스티브 맥퀸 주연의 1968년 영화 <블리트>에 등장했던 녹색 머스탱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영화 <식스티세컨즈>(2000)에서는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가 훔쳐야 하는 차 50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차로 등장한다. 도어스의 보컬이었던 짐 모리슨이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 <하이웨이>(2002)에서는 주인공의 애마로 등장한다. 뮤직비디오나 화보에 등장한 숫자는 거의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머스탱은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 20세기 미국의 ‘정신’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배우 신성일이 경부고속도로 개통식날 이 차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을 본 박정희 대통령이 “오래 오래 살라”며 격려 전화를 걸었다는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머스탱은 1964년, 리 아이아코카의 지휘 아래 태어난 차다. 늘씬한 디자인과 호쾌한 달리기 성능 덕분에 ‘스포츠카’로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 이 차는 기존의 스포츠카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 ‘스포츠카’는 V형 8기통 엔진을 싣고, 거대한 차체를 갖춘 것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가격도 비싸서, 평범한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차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아코카는 디자인은 멋지지만 크기가 작고, 가격도 저렴해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차를 목표로 했다. 설계 단계부터 당시 미국 차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4기통 엔진을 싣는 차로 기획됐고, 이후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아이아코카의 ‘도전’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판명됐다. 머스탱은 보수적인 미국 소비자들까지 사로잡으면서 베스트셀링 모델이 됐다. 4기통과 V6 엔진에 이어 V형 8기통 엔진을 싣는 고성능 버전도 등장했으며, 수많은 레이싱 카 제작자들도 머스탱을 이용해 고성능 스포츠카를 만들어냈다. 기존의 스포츠카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가 스포츠카의 대명사가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는 기존 스포츠카와 구분하기 위해 ‘포니카’라고 불린다.

스피드·낭만 날개를 단 ‘야생마’ 머

1964 Ford GT. 포드코리아 제공.

머스탱은 50년 넘게 생산되는 동안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했고, 흥망성쇄를 겪었다. 1970년대에는 지엠(GM)과 크라이슬러가 경쟁모델을 내놓고, 유럽산 스포츠카까지 합세하면서 인기를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라이벌 모델과 같은 수준의 트렁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디자인을 바꾸거나, 엔진 배기량을 키우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시장의 반응은 예상 외로 냉랭했다. 초심을 잃은 것으로 판단한 소비자들은 빠르게 머스탱에서 이탈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촌스러운 차’의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후일 아이아코카는 “소비자들의 마음은 머스탱을 떠난 적이 없었다. 머스탱이 소비자들에게서 떠났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포드는 2005년, 마치 1960년대의 1세대 머스탱이 살아 돌아온 듯한 디자인의 신모델을 선보이면서 긴 오명을 씻었다. 과거의 디자인을 살린 차는 당시의 레트로 붐을 등에 업고 소비자들의 인기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다양한 엔진을 실어 다양한 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후로는 모델체인지를 할 때도 1970년대 때처럼 ‘산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미국적 색채를 남기면서도 이탈리아의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인 쥬지아로의 회사에 의뢰해 세련된 이미지를 더할 수 있게 했다. 올 해 선보인 신모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헤드램프와 기다란 보닛, 날렵하게 떨어지는 지붕 라인은 1세대 머스탱을 연상케 한다. 효율과 성능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4기통 터보 엔진과 으르렁거리는 듯한 배기음이 특징인 V8 엔진 라인업을 갖춘 것도 다양한 소비자층을 만족시키기 위한 초창기 개발 이념을 잊지 않고 담아낸 결과다.


그러나 달리기 성능은 다르다. 초창기 머스탱이 달리기 위해 태어난 차가 아니라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고 싶은 차였다면, 신형 머스탱은 달리기 성능도 유럽산 스포츠카 부럽지 않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머스탱은 ‘스피드’보다는 ‘낭만’을 위해 태어난 차. 속도계 바늘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과 엔진이 연주하는 나지막한 노래를 즐기며 달리는 게 어울린다.

 

신동헌(자동차 칼럼니스트·<그 남자의 자동차>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