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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강희철의 법조외전

앞에선 ‘독립’ 뒤로는 ‘거래’…허울 벗겨진 양승태 대법원

by한겨레

다시 읽는 양승태 어록


“재판 독립 없이는 법원·민주주의 존속 못해”

취임사·퇴임사에서 사법부와 법관 독립 역설

이면에선 청와대와 “물밑 판결 조율” 의혹

상고법원 과잉집착, 재판을 흥정 대상 삼아

내부 반대 목소리 제압 위해 법관사찰 불사

“가시밭길 걸었다”던 그가 대답해야 할 차례

앞에선 ‘독립’ 뒤로는 ‘거래’…허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했다는 의혹을 둘러싸고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가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기사가 있다. 어떤 말이나 구절은 약간의 부연만 보태도 팩트를 보여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말과 행동이 대비될 때는 더할 나위가 없다.

“저는 사법부가 본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는 것이 대법원장의 책무라고 생각하며, 신명을 다하여 그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특히 재판의 독립 없이는 법원이 결코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없고, 민주주의도 존속할 수 없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함에 있어 어떠한 형식의 부당한 영향도 받지 않도록 저의 모든 역량을 다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양승태 변호사가 2011년 9월27일 대법원장이 되면서 내외에 공표한 취임사의 한 구절이다. 그는 최상급 표현을 빌려 ‘재판의 독립’과 ‘법과 양심에 따른’ 법관의 재판이 사법부에 얼마나 긴요한 것인가를 역설했다. 그런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이런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문건이 직속기구인 법원행정처에서 만들어졌다.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Blue House·‘박근혜 청와대’를 지칭)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 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임 중이던 2015년 11월19일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문건의 일부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에는 또 다른 내용도 들어 있다.

[압박카드] BH 국정운영 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 표명

 

● 우선, 그동안 사법부가 VIP(박근혜 대통령)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

 

①합리적 범위 내에서의 과거사 정립(국가배상 제한 등) ②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 판결(이석기, 원세훈, 김기종 사건 등) ③국가경제발전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판결(통상임금, 국공립대학 기성회비 반환, 키코 사건 등) ④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KTX 승무원, 정리해고,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 ⑤교육 개혁에 초석이 될 수 있는 판결(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VIP와 BH에 힘을 보태 옴

임 전 차장은 당시 법원 안팎에서 ‘양승태의 복심’으로 불렸다. 그런 그가 작성한 이 문건은 누구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조율’과 ‘의지 표명’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해 마지않은 ‘재판의 독립’과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양립 가능한 일인가.

 

그런 문건은 하나가 아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면담을 앞두고 임 차장은 ‘현안 관련 말씀자료’라는 것을 만들었다. 양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해야 할 말을 미리 준비한 것이다.

라. 과거 왜곡의 광정

 

(1)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음

(가) 과거 정권의 ‘적폐 해소’ ⇒ 무엇보다 먼저 왜곡된 과거사나 경시된 국가관과 관련된 사건의 방향을 바로 정립하였음

(나) 미래지향적인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 국가경제의 발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대통령이 추진 중인 노동·교육 등 4대 부문 개혁을 강력하게 지원해왔음

말하자면, ‘우리 사법부가 대통령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는 자화자찬이면서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밑밥’을 준비한 셈이다. 정권이 사법부를 찍어눌렀던 과거 군사독재 시대 양상과 달리 사법부가 먼저 사건과 재판을 ‘진상’하는 모양새다. 

앞에선 ‘독립’ 뒤로는 ‘거래’…허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친 뒤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차에 오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런데 양 전 대법원장은 2016년 9월22일 퇴임사에서 거듭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을 강조한다.

“오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이룩한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루어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입니다… 법관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서, 법관에게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을 따름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고지순한 나머지 휘하 법원행정처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을 까맣게 몰랐던 것일까.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법원행정처의 문건 제목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이라는 양 대법원장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개별 재판은 박근혜 청와대와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는 흥정 대상에 불과했다.

“사법부 최대 현안이자, 개혁이 절실하고 시급한 상고법원 추진이 BH의 비협조로 인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해야 함”

이번 의혹의 화근이 된 상고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홀로 세운 상상 속 누각이었다. 그는 상고법원에 대한 의지를 취임사에서 이미 예고하고 있다.

“재판은 충실하고 완벽한 심리절차를 거쳐 한 번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하는데도 패소한 측은 끊임없이 상소를 거듭하며 3단계의 절차를 다 거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오늘의 재판 현실입니다. 이로 인한 인적·물적인 낭비는 막대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재판 제도와 절차, 심급 구조, 법원조직, 인사제도 등 기존의 사법제도에 관하여 깊이 있는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있는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고, 상고법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양승태 전 원장의 개인적 소신이 곧 사법부의 목표가 된 것이다. 대법원, 특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추진을 위한 ‘돌격대’로 변신했다.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법관들의 목소리는 일사불란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간주됐다. 대표적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그 내부의 ‘인권 및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에는 ‘요시찰’ 딱지가 붙었다. 표 나지 않게 모임을 해체하거나, 소속 법관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어 탈퇴를 유도하는 방안 등이 세밀하게 검토됐다. 특정 판사에 대해서는 재산관계까지 파악했다. 박정희 시대에나 있었던 일이 사법부 내부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벌어졌다.

“2015. 5경 개최된 우리법연구회의 상고법원 관련 정기 세미나를 계기로 행정처에서는 상고법원 관련 내부 반대동향을 포착하고, 내부의 반대 목소리가 외부로 표출될 경우 입법 추진에 중대한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였으며, 기조실에서는 (인사모 예비모임 제안 무렵인) 2015. 7.6 경 ‘상고법원 관련 내부 반대동향 대응 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하였음.”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양승태의 복심’으로 불리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있었다. 그는 행정처 차장이 되기 전 기획조정실장 때부터 대부분 사안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특조단은 “임 전 차장이 갖고 있는 지극히 독단적인 정무적 발상”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자가발전’론에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역대 행정처 차장 중에 대법관이 못 된 사람은 1~2명에 불과하다. 임 차장의 눈앞에,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 대법관직이 있었다. 게다가 임 차장은 양 원장의 신임이 아주 두터웠다. 가만히 있어도 대법관이 될 판인데 그가 뭣하러 ‘자가발전’을 해서 무리를 했겠나.”(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

 

보고서는 누군가에게 보고될 것을 전제로 작성된다. 그래서 이름이 보고서다. 임 차장 바로 위는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뿐이다. 그런데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는 아예 이뤄지지 않았다. 임 전 차장은 “대법원장 관련 질문만 나오면 대부분 피했고”(특조단), 연락을 받은 양 전 원장은 조사를 거부했다. 대법원 셀프 조사는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 강제조사는 수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취임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말했었다.

“사법의 1차적 기능은 평화로운 절차에 의하여 당면한 분쟁을 해소하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기능은 법원과 재판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의 바탕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6년 뒤 퇴임사도 더 없이 당당하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다고 했다.

“국가 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의 행정을 총괄하는 일은 단 하루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가시밭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국민의 신뢰 증진이 대법원장인 저에게 주어진 법관으로서의 마지막 소명이라는 각오 아래 그 방향으로 모든 사법정책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특조단 조사보고서는 ‘양승태 대법원’이 그의 다짐과는 정반대 길로 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조단이 공개한 거의 모든 문건의 행간에는 양 전 원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제 어느 국민이 재판을 전적으로 신뢰할까. 사법부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재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 그의 입을 열어야 할 때다.

 

강희철 선임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