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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재판 뒷거래 ‘말씀자료’가 “덕담”이라니…양승태의 ‘물타기’

by한겨레

상고법원 염두 국정협조 강조 내용

“봤지만 흔한 일탓 기억 안나” 해명에

법원 안팎 “재판독립 소신 있었다면

말씀자료 쓴 참모 문책하는 게 정상 

사실상 평소 철학을 참모가 담은 것”

문건작성 주도 임종헌은 정작 ‘승진’

재판 뒷거래 ‘말씀자료’가 “덕담”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자신의 집 근처 공원에서 판사 뒷조사와 재판 거래 의혹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사법부와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재판 뒷거래’ 논란의 중심에는 2015년 7월27일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자료’가 있다.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첫해부터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왔다는 점을 알아달라는 취지의 문건이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궁지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큰 핵심 물증이기도 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오찬회동을 앞두고 만들어진 말씀자료를 ‘봤지만 기억 안 난다’는 취지로 얼버무렸다. “그런 말씀자료는 신년하례식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준다. 청와대와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는 덕담용, 화젯거리 자료를 한 번 보고 버리지 외우고 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독립 원칙을 40여년 금과옥조로 삼아왔다”(기자회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최고법원 판결을 상고법원 도입의 흥정 소재로 삼아 대화를 나누라는 말씀자료를 ‘덕담용’이라고 용인한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법조인은 3일 “참모 조직에서 작성하는 말씀자료는 기본적으로 그걸 쓰는 사람(양승태)의 평소 철학을 담는다. (사안이 동일하다고) 박근혜 대통령 말씀자료를 문재인 대통령이 쓸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상식 밖 보고서’를 올려도 통용되는 분위기였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이어 “대법원장이라면 저런 말씀자료를 작성·보고한 사람을 문책하고 인사 조처를 하는 게 정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설령 실제 실행되지 않았더라도 재판독립을 흔드는 ‘예비음모’ 수준의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대법원장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비판했다.

 

말씀자료 문건은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지시로 작성됐다. 청와대 오찬회동 다음날인 2015년 8월7일, 임 전 실장은 행정처 기조실장에서 행정처 차장으로 ‘승진’했다.

 

‘말씀자료가 워낙 흔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양 전 대법원장 해명도 ‘물타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청와대 오찬회동을 상고법원 도입의 분수령으로 보고 ‘전략 문건’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등 총력전을 펴고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 역시 오찬에서 장시간 상고법원 도입을 설명했다가 배석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지청구’를 들을 정도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말씀자료 문건이 보고됐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부실 결론’도 도마에 올랐다. 특조단은 지난 4월24일 양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나눈 대화 등을 확인하려 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특조단은 지난달 25일 공개한 조사보고서에 “이 문건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박병대)에게 보고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김남일 김양진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