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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이코노미 인사이트

‘안경앵커’ 임현주 “이젠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 지우려 해요”

by한겨레

‘안경 앵커’ MBC 임현주, 첫 인터뷰

“신선하든, 낯설든 새로운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

“세월호 얘기하는 게 정치적인 중립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아”

“손석희 선배 보러 JTBC서 MBC로 옮겼더니, 석 달만에 손 선밴…”

‘안경앵커’ 임현주 “이젠 예뻐야 한

5월21일.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에>처럼 안경 너머 보이는 하늘은 눈부시도록 맑았다. 이날 오전 상암동 MBC 2층 라운지에서 임현주 앵커를 만났다. 남색 스트라이프 정장 원피스에 깔끔한 베이지 구두 차림이었다. 이날 아침뉴스 <뉴스투데이>에서 쓴 ‘동그란 안경’은 그대로였다. 임 앵커는 4월12일 지상파 뉴스에서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남자 아나운서와 달리 여자 아나운서에게 안경은 ‘암묵적인 금기’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그동안 전화 인터뷰를 했으나, 실제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은 <이코노미 인사이트>가 처음이라 한다.

 

-MBC 아침뉴스 <뉴스투데이>는 언제부터 진행했나요.

“지난해 MBC 파업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26일부터 진행했어요. 5개월 됐네요.”

 

-안경을 쓰기 전에는 어땠어요.

“아침 6시부터 뉴스를 진행하려면, 새벽 2시40분에 일어나 회사에 와서 메이크업을 하고 방송에 들어가는데요. 하루 3~5시간밖에 잘 수 없어요. 자는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눈이 늘 피곤했어요. 매일 인공눈물을 한 통씩 썼을 정도였어요.”

 

-안경을 쓰고 진행하니 어떤 점이 좋아졌나요.

“속눈썹을 안 붙여도 되고 눈 화장 시간도 좀 줄어들었죠. 그 대신 뉴스를 챙겨보는 시간이 늘어나 뉴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안경을 쓰기로 결정한 건 언제였나요.

“3월 말께 아침뉴스를 진행한 뒤 신문을 봤어요. 평창 겨울올림픽 때 컬링 국가대표팀 김은정 선수의 안경 쓴 모습이 화제였지만, 실제 여성이 회사에서 안경을 쓰고 일하는 건 금기 아닌 금기라는 내용이었어요. 방송국에서도 암묵적으로 여성 아나운서는 안경을 안 쓰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때 ‘나부터 안경을 써볼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3주 뒤에 안경을 쓴 건가요.

“네. 안경을 쓰기로 하고 안경가게를 3군데 정도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사놓고 막상 쓰지는 못했어요. 시청자들께서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했어요. 프로답지 못하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뉴스투데이>를 같이 진행하는 박경추 선배에게 “안경 쓰고 진행하면 어때요?”라고 했더니 “한번 시도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박 선배에게 용기를 얻었죠.”

 

-반응은 어떠했나요.

“여러 언론에서 전화가 많이 왔어요. 진보 언론뿐만 아니라 보수까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거의 여성 기자 분이셨어요(웃음). ‘보수적인 방송국에서 어떻게 그런 시도를 했나’ ‘신선했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나’를 물었어요.친구들한테도 메시지를 진짜 많이 받았어요. 신기했던 건, 외국에서도 뉴스가 됐나봐요. 프랑스 <르몽드>에서도 다뤘다고 친구가 얘기해줬어요. 일본에서도 포털 1위에 올랐다고 해요. 홍콩, 태국뿐만 아니라 아랍에서도 화제가 됐다고 했어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제가 안경을 쓰기 전까지,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는 건, ‘금기 아닌 금기’라고 생각했어요. 여성 아나운서도 안경을 쓸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게 한 기회를 드린 것 같아요. 신선하든, 낯설든 새로운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주항공에서도 여성 승무원에게 안경을 쓸 수 있게 했죠.

“네, 그 뉴스 봤어요. 반가웠어요. 그 뉴스가 나온 다음에야 많은 사람이 ‘아, 그동안 안경 쓴 여성 승무원을 본 적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대요. 저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기내가 건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낀 승무원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한번 더 생각을 하게 되죠.”

 

-안경을 쓰고 난 뒤 변화가 있나요.

“안경을 쓰기 전엔 늘 하던 대로 화사한 속눈썹을 붙이고 전형적인 아나운서 이미지에 맞췄어요. ‘안경사건’(웃음) 뒤엔 여성 아나운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봤어요. 여성 아나운서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화제가 되고, 노출이 됐다는 게 화제가 돼요. 여성은 젊고 예쁘고 섹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있어요. ‘왜 여성 아나운서 수명은 짧을까’ 생각해봤어요. 아름다움과 젊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그런 것 같아요. 이런 평가는 본질과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아나운서의 본질은 뉴스를 잘 분석하고 시청자에게 신뢰를 주는 거거든요. 이렇게 본질이 아닌 것을 조금씩 끊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안경을 쓰면서부터는 완벽하게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려고 해요. 예전에는 화사하고 튀는 원피스를 입었다면, 이제는 편하고 심플한 옷을 입으려고 해요.”

 

-‘안경사건’으로 우리사회가 생각해 볼 게 있을 것 같아요.

“합리적이지 않는 금기나 관행을 생각해보고 깨나가면 좋겠어요. 관행을 깨는 사람을 응원해주고요. ‘작은 날갯짓’이지만, 이런 ‘작은 선택’이 모이면 좀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회가 될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관행을 깨는 일을 남녀 갈등으로 몰아가는 댓글을 본 적 있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성에게도 금기가 있어요. 그런 관행을 함께 풀어나가야 해요. 남녀 사이의 성 이슈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깨는 거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안경앵커’ 임현주 “이젠 예뻐야 한

임 앵커는 4월1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를 본 느낌을 이렇게 전했다. “본래 외출을 하지 않는 저녁 시간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 의 첫 상영에 맞춰 다녀왔다. 세월호의 진짜 침몰 원인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추적해나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이나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마지막 진실을 위한 앞으로의 시간들. 그동안 다하지 못했던 언론의 역할. 제작진에게 그리고 김지영 감독에게 깊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이에 대해 임 앵커는 이렇게 얘기했다. “앵커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SNS로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는 사람이 있어요. 맞아요. 앵커는 신뢰를 위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해요. 뉴스를 진행할 때 그 부분을 항상 조심해요.”

 

임 앵커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세월호를 얘기하는 게 정치적인 중립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많은 아이들이 왜 그렇게 어이없이 숨져야 했는지는 반드시 밝혀야할 과제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사건으로 숨진 아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죠. <그날, 바다>를 얘기한 건, 우리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임현주 앵커는 〈JTBC〉에서 2011년 12월 개국방송 때 마이크를 잡았을 정도로 ‘잘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MBC〉 손석희 선배를 좋아했고, 당시만 해도 보수적이던 〈JTBC〉와 맞지 않아 2013년 초 〈MBC〉로 회사를 옮겼다고 했다. 수습기간 3개월을 거친 뒤 손석희 선배와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눌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3년 5월 손석희 아나운서가 〈JTBC〉로 회사를 옮겼다. 임 앵커는 “이거 뭐지, 이렇게 아쉬워했죠”라고 말하며 웃었다.

 

임 앵커는 안경을 쓰면서 좀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했다. 그동안 뉴스를 진행할 때 많이 조심스러웠단다. ‘여자 아나운서가 뉴스 멘트를 바꿀 수 있을까’ ‘내가 그럴만한 능력이 될까’라고 고민하며 혼자 속앓이를 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공을 쌓고 지금보다 좀더 주체적인 아나운서가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가 말한 ‘작은 날갯짓’이 떠올랐다. 미세한 변화가 예상하지 못한 큰 결과를 낳는 ‘나비효과’를 상상해봤다.

 

글 정혁준기자 jun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