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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부릉∼, 파미르 고원을 달리다

by한겨레

8개월간 3만5천㎞ 달려 터키까지

여행지 주민 환대에 ’힘들다’는 생각도 잊어

태초의 지구를 가로지르는 느낌

2∼3년간의 모터바이크 세계 일주도 계획 중

부릉∼, 파미르 고원을 달리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중 키르기스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이동하며 잠시 멈춰 선 왕언실씨. 박두수 제공

부릉∼, 파미르 고원을 달리다

모터바이크로 세계 여행에 나서는 라이더들이 있다. 일반적인 여행지에서의 이동수단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길을 달린다. 라이더들은 길 위에서 다른 라이더와 현지인 그리고 동물들을 만난다. 섬이 아니지만, 분단으로 가로막혀있어 섬이나 다름없는 나라에 사는 국내 모터바이크 라이더들에게 그나마 접근성이 높은 대륙 여행 경로는 ‘유라시아 횡단’ 경로다. 그 길을 달려보고 또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라이더들은 끊임없이 배에 모터바이크를 싣는다.

 

유라시아 대륙.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세계 육지 면적의 40%를 차지한다. 유라시아 대륙 뒤에 붙는 단어 중 아마 가장 익숙한 단어는 ‘횡단 열차’일 것이다. 그러나 열차가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국내 라이더들은 각자의 모터바이크를 배에 싣고 러시아로 들어간다. 블라디보스토크항에 도착해 저마다의 여정을 떠난다. 도착지는 가깝게는 터키부터, 멀리는 포르투갈까지 다양하다. 터키까지는 1만1천㎞가량, 포르투갈까지는 1만4천㎞가량이다. 그 긴 여정에서 과연 무엇을 만날 수 있길래 라이더들은 쉼 없이 그곳을 향해 떠날까? 2016년 5월1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같은 배에 탔지만, 다른 여정을 밟으며 유라시아 대륙 모터바이크 여행을 한 왕언실씨와 김영준씨에게 그 매력에 대해 물었다.

 

왕언실씨는 먼저 당부했다. “여행도 많이 안 다녀보고, 체력도 떨어지는 내가 다녀올 수 있는 여정이니 누구든 겁내지 않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많은 라이더들이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왕씨는 스스로 도전가·모험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한다. 그런 그가 신혼여행을 대신해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 박두수씨와 함께 일본에서 시작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부터 터키까지 8개월 간 3만5천㎞를 여행했다. “편한 길만 선택해 가기, 가다가 힘들면 돌아오기. 이 2가지가 떠나기 전 원칙이었다.” 집에 있길 좋아하는 실내형 인간 왕씨가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합의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 여행은 애초 그 원칙을 지킬래야 지킬 수 없는 길이었다. “첫 여행지였던 일본에 한 달 있는 동안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했어요. 날마다 밤에 이혼하는 꿈을 꾸고.” 그러다 러시아로 향했다.

부릉∼, 파미르 고원을 달리다

몽골을 여행하는 중 많은 비로 강이 생겨 건널 수 없자 현지인이 불도저를 끌고와 왕언실씨 일행의 도강을 도왔다. 박두수 제공

돌아갈 생각만 하던 왕씨는 “러시아에서는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모터바이크 여행자에 대한 환대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모터바이크를 타면 끼어들기, 위협하기에 진이 빠지는데 러시아에서는 경적을 울려가면서 응원을 해줬다. 박수도 쳐주고, 꽃도 주고. 심지어는 기차의 기관사도 경적을 울려줬다. 여행하기 싫다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왕씨가 그 여행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것 중에 하나는 ‘사람’이었다. 분명히 하루 여정이면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었는데 중간에 멈춰야했던 왕씨. 먹을 것도 구할 수 없는 처지에 절망하고 있었는데, 그 길을 지나던 트럭 운전사가 빵을 한 덩이 주고 갔다고 했다. 몽골에서는 밤사이 온 비로 앞둔 길에 강이 3개나 생겼다. 그때는 주변 공사장에서 일을 하던 이가 불도저를 끌고 와 도강을 도와줬다. 그렇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여행을 이어갔다. 그들은 대륙 횡단에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

 

유라시아 대륙 모터바이크 여행 경로를 지도 위에서 따라가다 보면, 가장 궁금해지는 지역이 있다. 바로 중앙아시아다. 여행지로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 곳을 김영준씨는 모터바이크 여행을 하며 샅샅이 훑었다. 모터바이크가 없었다면 힘든 일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들른 나라만 7개 나라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를 다녀왔다. 김씨가 꼽은 대단한 풍경 중에 하나는 키르기스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이동하며 마주한 파미르 고원 한복판의 풍광이다. 김씨는 “4600m 정도의 고원에 파미르 하이웨이가 있다. 하이웨이(고속도로)라지만, 한국의 고속도로와는 다르다. 길 사이사이에 비포장 길도 섞여 있는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왕씨도 “아마 태초의 지구가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 싶었다”라는 감상을 남겼다. 김씨는 중앙아시아 여정 중 기억에 남는 곳으로 투르크메니스탄도 꼽았다. 그곳은 몇 안 남은 독재국가 가운데 하나다. 외국인이 관광을 위해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은 단 5일 뿐이다. 김씨는 “모터바이크가 하필 수리점도 없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고장이 났다. 겨우 모터바이크를 기차에 실어 항구로 가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왕씨는 타지키스탄의 어느 산 위에서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허허벌판에 멀리 고원이 펼쳐져 있었다. “내 시야가 닿는 데 중에 안 가본 데가 없더라. 그제야 내가 대단한 여행을 하고 있다 생각했다. 처음으로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어’라고 느꼈다.”

부릉∼, 파미르 고원을 달리다

파미르 고원. 박두수 제공

여행 뒤 두 사람의 결론은 다소 달랐다. 왕언실씨는 “여행을 다녀와 보니 ‘내가 사는 곳이 좋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터바이크로 국내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와서 모터바이크를 타고 다니며 풍경을 보니, 자연과 도시의 불빛이 뒤섞인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이 또 있더라. 앞으로는 국내 곳곳을 돌아다녀 볼 예정이다.” 김영준씨는 유라시아 대륙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를 모터바이크로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앞두고 있다. 당장 8월에는 러시아의 도시 마가단에서 출발해 ‘뼈의 길’이라 불리는 험로 모터바이크 라이딩에 나선다. 내년 3월에는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유럽을 간 뒤 남미부터 북미까지 종단을 할 예정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유럽으로 가서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향할 예정이다. 김씨에게 모터바이크 여행의 목적은 ‘도전’이다. “경관이 꼭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 험한 길을 모터바이크로 주파하면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 있다.” 험한 대륙 횡단 여행엔 역시 모터바이크가 최고다. 이미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봤지만, 그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바이크 전문 여행 상품도 있어요

 

모터바이크로 세계 여행이나 유라시아 대륙 횡단 여행을 하기 위해 1년가량의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게 국내 일반 라이더들의 실정이다. 꼭 그곳이 아니어도 모터바이크 여행지는 많다. 일본부터 동남아시아까지 모터바이크로 여행할 수 있다.

 

최근에는 모터바이크 여행 상품을 내놓는 전문 여행사들도 생겨나고 있다. ‘허브투어’는 모터바이크 국외 여행 상품을 여럿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은 일본 투어 상품이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투어 상품도 있다. 베트남 모터바이크 여행 상품을 내놓은 여행사도 있다. ‘랩터라이더스’는 모터바이크를 대여해주고, 여정 동안 가이드가 동행하는 베트남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꼭 여행사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 명의의 모터바이크와 이륜자동차등록증서(영문), 국제면허증(제 2종 소형 운전면허 취득 시 발급 가능) 등 몇 가지 필수 조건을 갖춘다면 일본으로 모터바이크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타이와 라오스 등에서는 현지에서 모터바이크를 빌려 타고 다니면서 여행을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국제면허가 없어도 모터바이크를 빌려주는 경우가 있으나, 경찰 등의 단속에 걸리면 벌금을 내야 하고, 사고가 났을 때 보험 처리를 할 수 없어 위험 부담이 크다. ‘이륜차 타고 세계여행’이라는 온라인 카페에는 모터바이크 해외 자유 여행에 대한 정보가 가장 많이 오간다.

모터바이크

두 바퀴에 엔진을 달아 움직이게 한 이동수단. 사륜차(자동차)보다 작고 연비도 좋지만, 도로 위에서는 무시·위협당하기 다반사다. 그러나 모터바이크 타기에 빠져든 사람들은 헤어 나오질 못함. 여행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기도 하는 모터바이크. 모터바이크 웹툰 <로딩>, <100cc>을 그리고 쓴 이지우 작가는 모터바이크 문화 중 ‘모토캠핑’을 최고의 즐거움을 꼽는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