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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마지막 6년

by한겨레

경남 통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1일 별세

피해자에 멈추지 않고, 역사적 진실 알리고자 활동가로 살았던 삶 마쳐

이제 남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는 27명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2013년 3월 14일(윗줄 왼쪽부터), 2014년 12월 14일, 2015년 2월 7일, 2016년 6월 1일(아랫줄 왼쪽부터), 2017년 1월 14일, 2018년 2월 5일 촬영한 김복득 할머니의 모습. 이정아 기자

경남 통영의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101. 1918년 통영에서 맏이로 태어난 할머니는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22살 때이던 1939년 거제 장승포에 있는 고모 집에 가려고 부두에 나갔다가, 공장에 취업시켜 주겠다는 징용 모집자의 말에 속아 부산으로 갔다. 동생들을 키우는 홀어머니를 도와야겠다는 효심이 깊었던 할머니였다. 그러나 부산에서 김 할머니를 태운 배가 도착한 곳은 중국 다롄이었다. 일본군을 따라 중국에서 필리핀까지 끌려다니며 ‘후미코’라는 이름으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할머니는 1945년 해방 직후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김복득 할머니가 2013년 7월 16일 오후 김해문화의 전당에서 열린 창작 뮤지컬 '위안부 리포터'를 공연을 관람하기에 앞서 공연을 준비한 학생들을 만나 격려하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 무대는 김해지역연합 방과후 학교 뮤지컬반 학생들이 김 할머니의 자서전 '나를 잊지 마세요'를 토대로 만들었다. 김해/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김복득 할머니가 2013년 4월 6일 오후 경남 통영시 동호동 남망산 조각공원 입구에 세워진 위안부 추모비 ‘정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통영/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러나 김복득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1994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한 뒤,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활동가의 삶을 살았다. 2007년 일본 나고야와 2011년 오사카에서 열린 증언집회에 참여해 자신이 겪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경험을 증언했고, 2010년 일본 중의원회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또 2012년 통영여고 장학금, 2013년 경남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기금으로 2000만 원씩 기부했다. 평생 모은 전 재산이다. 그러한 김 할머니의 뜻을 기려 경남도 교육청은 2013년 그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 〈나를 잊지 마세요〉를 펴내, 도내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재로 사용하도록 했다. 경남도 교육청은 이 책의 일본어판과 영문판도 펴내, 일본과 미국에도 보냈다. 같은 해 통영 남망산공원엔 김 할머니를 상징하는 소녀상 ‘정의비’가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김복득 할머니가 경남 통영시 북신동 자택에서 거주하던 시기인 2013년 3월 10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왼쪽)와 마을 골목길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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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득 할머니가 2013년 3월 10일 경남 통영 자택을 찾은 일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왼쪽)와 사진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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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득 할머니가 2014년 7월 22일 경남도립 통영노인전문병원에서 매주 열리는 자원봉사자들의 노래자랑을 보러 가기 위해 립스틱 바르며 단장하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의욕적으로 활동을 펼치던 할머니가 자택 생활을 접고 경남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으로 입원하게 된 때도 2013년 가을이다. 딸처럼 할머니를 보살피며 지역 활동을 펼쳤던 송도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 대표는 “일상의 일을 손수 너무도 잘, 깔끔히 해 오시던 어머니는 심한 손 떨림과 함께 혼자서 일어서기가 힘들어지자 집에서의 생활이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병원생활을 시작하셨다. 언젠가는 다리가 다 나아서 꼭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꿈을 안고서...”라고 그 시기를 기억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김복득 할머니가 지난해 1월 14일 오후 경남 통영시 도산면 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에서 열린 100세 생신 축하연에서 케이크의 촛불을 끈 뒤 박수를 받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김복득 할머니가 2018년 2월 5일 정의기억재단이 수여한 여성인권상을 전달받으며 미소짓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내가 죽기 전 일본으로부터 잘못했다는 사죄를 받는다면 소원이 없겠소. 그래도 남은 소원이 있다면, 다음 생에는 족두리 쓰고 시집가서 남들처럼 알콩달콩 살아보고 싶소.”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되뇌었다는 소원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할머니의 작은 소망도, 일본의 사죄를 기다렸던 평생의 원도 풀리지 않은 채 할머니는 그 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둘러싼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자 애썼던 할머니의 발걸음은 여기에서 멈추지만 그 뜻은 남은 이들의 마음에 새겨져 다시 이어질 터. 김복득 할머니 고통과 아픔 모두 잊으시고 이제 편히 잠드시기를.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의

김복득 할머니가 2013년 3월 14일 경남 통영시 북신동 자택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통영/이정아 기자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