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성희롱, 갑질, 데이트 폭력 떠올라도…결론은 ‘로맨스’?

by한겨레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성희롱, 갑질, 데이트 폭력 떠올라도

<김비서가 왜 그럴까>(티브이엔)는 동명의 웹소설과 웹툰을 원작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재벌 2세와 여비서 사이의 밀고 당기는 긴장과 배우들의 매력이 상당하다. 외모, 실력, 재력을 모두 갖춘 남자이자 최고의 나르시시스트인 영준(박서준)의 능청스러운 잘난 척과 ‘츤데레’적인 태도가 재미의 절반을 차지하고, 김비서(박민영)의 지극히 단정한 행동들 사이에 드러나는 새치름한 미소가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드라마는 9년간 영준을 보필하며 ‘비서계의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김비서의 갑작스러운 퇴직 선언으로 출발한다. 영준은 무심한 척 파격적인 고용조건을 제시하지만, 김 비서는 거부한다. 그동안 일체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해 연애도 결혼도 못하였으니, 이제 내 생활을 찾겠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영준은 “그렇다면 그 결혼 내가 해주지”라며 느닷없이 청혼하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나르시시스트인 영준과의 로맨스는 불가능하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배려심 많은 남자와의 평범한 결혼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작은 꽤 참신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한 직장에 충성을 다 했고, 자기 이름을 ‘김미소’가 아닌 ‘김비서’로 쓸 만큼 직무에 몰입했던 그가 파격적인 대우에도 불구하고, 퇴직 의사를 표하다니, 정규직 되기가 지상 목표가 되어버린 세태에서 신선한 거부이다. 여기에 재벌 2세의 청혼에 감지덕지하지 않고 로맨스 불가를 선언하는 것은 더욱 놀랍다. 객체인줄만 알았던 존재가 자신도 주체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자기애로 가득한 영준과의 로맨스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은 정곡을 찌른다. 사랑이란 능력이나 매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매료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자아들 사이에서 배려를 주고받는 일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신선미는 여기까지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 없다는 ‘자뻑’으로 가득 찬 영준이 김비서를 상대로 펼치는 로맨스는 곧 효과를 발휘한다. 영준이 ‘블록버스터의 저주’라고 부른 물질공세는 김비서의 거부를 1회 만에 무력화시킨다. 이후 드라마는 흔한 ‘비서물’로 흐른다. 즉 로맨스 소설 <안전한 비서> <정비서의 슬기로운 생활> <비서의 정원> <네가 필요해> 등의 ‘비서물’이 보여주는 상투적인 로맨스와 큰 차이가 없다. 물론 드라마는 재벌 2세와 여비서라는 비대칭한 관계가 조금씩 균형추를 맞추기 위한 영준의 노력을 보여준다. 영준은 김비서를 ‘맞춤 슈트’에 비유하며 자신의 편한 소유물로 여겨왔으나, 차츰 연인처럼 대한다. 김비서 대신 자신이 운전을 하고, 데이트 장소를 직접 예약하고, 김비서의 상처를 소독해준다. 김비서 역시 영준이 짜온 데이트 코스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코스에 영준이 따라오도록 하며 일방적인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제스처를 취한다.

 

드라마는 이들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트라우마를 활용한다. 어린 시절 유괴를 당했던 트라우마로 스킨십을 주도하지 못하는 영준 대신 김비서가 스킨십을 주도한다. 또한 트라우마는 완벽해 보이는 영준이 지닌 결핍으로, 이를 김비서와 공유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로맨스를 특별하고 대등한 것으로 만든다. 겉으로 보았을 때 이는 진정한 사랑이 잘남의 공유가 아닌 결핍의 공유라는 의미를 실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사랑은 서로 발가벗는 것”이라는 박사장의 조언처럼, 트라우마가 이들 관계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주요 장치로 배치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이다. 트라우마는 오히려 이들의 비대칭성을 훨씬 본원적인 것으로 만든다.

 

과거 사건에 대한 온전한 기억은 영준만이 갖고 있다. 즉 9년 전 김비서가 영준의 비서가 된 이유나, 김비서 마음속에 심어진 ‘배려남, 오빠’의 심상도 모두 영준에게 귀속된다. 즉 트라우마는 결핍의 공유가 아니라, 영준에 대한 김비서의 내면적 종속을 뜻한다. 즉 트라우마가 불평등한 관계를 마치 대등한 관계인양 여기게 만들지만, 실상은 김비서가 영준에게 품는 자발적 복종의 알리바이인 셈이다. 이러한 서사는 소위 로맨스라 불리는 이성애 관계의 실체를 폭로한다. 즉 이성애 관계란 대등한 자아들 사이의 상호주체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보스와 비서’라는 극단적인 비대칭성이 상징하듯 ‘잘난 남자’와 ‘순종적인 여자’의 역할극일 뿐 아니라, 내면적 판타지를 경유해 자발적인 복종에 이르는 상태임을 요약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드라마에는 영준이 김비서를 찾아와 “이렇게 가깝게 스킨십을 해도 괜찮냐?”며 묻다가 같이 엎어지거나, 밤중에 김비서를 불러내 라면을 달라고 요구하거나, 김비서의 전화를 가로채 받으며 행동을 통제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성희롱, 갑질, 데이트 폭력 등이 연상되는 장면들이지만, 이런 논의는 무력해진다. 김비서의 ‘노’는 어느 순간 ‘예스’가 되고, 원천적으로 비대칭한 권력관계 안에서 로맨스와 성희롱은 구분되지 않는다.

 

안희정이 김비서에게 수시로 ‘담배’ 등을 사오도록 지시하고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기사와 ‘홀복’이 오피스룩에 수렴하는 세태 속에서 ‘비서물’이 티브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드라마 속 남녀 관계가 갈수록 비대칭적으로 되어 가는 세태와 드라마 속 김비서와 현실의 김비서가 휴지 한 장 보다 더 얇은 막으로 나눠져 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시대의 고민이다.

 

대중문화평론가 황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