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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일용엄니’ 반찬 여왕 되다

by한겨레

배우 김수미 <수미네 반찬> 출연 인기 상승

덩달아 한식 밥상에서 반찬 주목도 높아져

"사계절 뚜렷한 우리나라···반찬 세계 무궁무진"

김수미 철학···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직

‘일용엄니’ 반찬 여왕 되다

배우 김수미. 사진 강현욱 (스튜디오 어댑터)

‘일용엄니’ 반찬 여왕 되다

평소 음식 전문가가 아닌 이가 ‘쿡방’, ‘먹방’에 출연해 음식과 맛, 그 역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을 못마땅해했던 내가 <티브이엔>(tvN)의 <수미네 반찬>에 출연 중인 배우 김수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반찬이 출발점이다. 반찬은 긴 한식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지만 주인공인 적은 없다. ‘밥맛 좋은 맛집’이 있건만 ‘콩나물 반찬이 맛있는 맛집’, ‘마늘종볶음이 맛있는 맛집’은 없다.

 

웬걸, 최근 달라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 음식 프로그램 <고독한 미식가> 시즌 7 한국편엔 ‘돼지갈비와 반찬의 무리’가 부제이고, 주인공 고로는 “반찬의 테마파크”란 말도 한다. 지난달 6일 방송을 시작한 <수미네 반찬>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여러 번 올랐다. 거기엔 반찬을 만드는 배우 김수미가 있었다. 동반 출연 중인 최현석, 여경래 등 유명 요리사들은 그가 만든 반찬을 먹고 예사롭지 않다는 표정을 짓는다. 수년간 음식 분야에서 갈고 닦은 실력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수미의 계량법 ‘눈대중’도 귀를 잡아끈다. 본래 OOkg식의 식재료 표기법은 서양에서 온 것이다. 지난 4일 녹화장에서 만난 여경래 중식 요리사는 “거짓말 안 하고 정말 맛있다”고 평을 한다. 불가리아 요리사인 미카엘 셰프도 “반찬이란 게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말한다. ‘라이징 스타’로 등극하는 반찬의 후광엔 배우 김수미만의 반찬 철학과 추억과 솜씨가 녹아 있다. 그를 지난 3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만났다.

반찬과 배우 김수미

‘일용엄니’ 반찬 여왕 되다

배우 김수미. 사진 강현욱 (스튜디오 어댑터)

케이블 채널 음식 방송치곤 높은 3%에 육박하는 시청률이다. ‘먹방’ '쿡방‘이 넘치는 시대에 인기 비결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방송이기 때문이다. 한식은 원래 감으로 조리하지 계량이 없다. 주방장의 관상까지 봤다는 궁중음식도 손맛이 만든 것이다. 어머니가 해줬던 맛을 생각하며 맛이 좋다고 하니 기쁘다.”

 

배우 김수미가 성공 요인 같다. 준비는 어떻게 하나?

 

“메뉴 전부를 내가 정한다. 음료, 재료 사는 곳까지 말이다. 명란은 속초 OO집, 풀치는 군산 OO집 식이다. 그래서 보통 머리 아픈 게 아니다.(웃음)

 

사실 반찬이 음식 프로그램에 주인공인 적은 거의 없다.

 

“눈뜨면 먹는 게 밥이다. 옛날에는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줬다. 지금은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지낸다. 누가 혼자 밥 먹는데 번거롭게 지지고 볶겠나.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 현상이라 어쩔 수 없다. 요새 주부들, 남편이 저녁밥 안 먹고 들어오면 짜증을 낸다. 그만큼 반찬, 밥 만드는 게 힘들다는 거다. 사다 먹고, 돈만 주면 김치도 다 바로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알약 하나 먹고 배부른 세상이 될지 모른다. 그러면 왜 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맛있는 거 먹으려고 사는 거다.”

 

‘김수미의 눈대중 계량’이 화제다. 제대로 된 맛은 찾기 어렵지 않나?

 

“간을 보면 안다. 전체적인 조화를 찾는다. 셰프들이 하는 것보다 내가 더 낫다.(웃음)”

 

동반 출연하는 최현석, 여경래, 미카엘 등은 유명 요리사들이다. 부담은 없었나?

 

“평생을 내 고향 전라도 반찬을 만들었는데 그들이 따라오겠나?(웃음) 마찬가지로 난 중국 음식 못 만든다. 그들이 얘기해주는 양식을 암기해서 집에서 해본다. 음식 만드는 거 재밌다. <전원일기> 찍을 때도 끝나면 배우들 다 가는데 나는 밭에서 채소 따 가져와 요리했다. 동네 사람들이 다 가져가라고 했다. 막 뽑아 와서 세수도 안 하고 바로 김치부터 담갔다. 그걸 나눠줬는데 다들 맛있다고 하니 좋았다.”

‘일용엄니’ 반찬 여왕 되다

배우 김수미의 옥상. 사진 김수미 제공

배우 김수미는 처음 만난 이한테도 손수 만든 음식을 나눠주는 걸로 유명하다. 70명이 넘는 스태프 점심을 챙긴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은 김수미표 음식을 먹어본 사람과 안 먹어본 사람으로 나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2003년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다. 그는 “김치 사업을 하던 때다. 뉴스를 보다가 피해 입은 지역의 할머니들이 다 떠내려가 김치도 없다는 얘길 듣고 팔 김치를 안 팔고 바로 트럭에 싣고 거제도에 갔다”고 했다.

 

‘사람에게 이로운 반찬’이 있을까? 결국 어머니의 반찬이 최고인가?

 

“제철 채소로 만든 게 제일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다. 어머니는 봄엔 시금치로, 여름엔 오이지로 맛깔스러운 반찬을 만들어주셨다. 사계절이 있으니 반찬은 무궁무진한 세계다. 발효된 김치는 얼마나 훌륭한 먹을거리인가.”

배우가 안 되었다면 난 소설을 썼을 듯

노래 <버무려>를 발표하고 <음식 그리고 그리움>, <김수미의 전라도 음식 이야기>,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 등을 출간했다.

 

“서강대 국문학과에 붙었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등록금을 줄 사람이 없었다. 그때 교수님 한 분이 ‘너는 배우 해도 되겠다’ 하시더라. 마침 <문화방송>(MBC) 탤런트 공채가 있으니 가보라 하셨다. 공채 3기에 뽑혔다. 하다 보니 배우 해도 되겠다 싶었다. 문학에 대한 허기는 늘 있었다. 내 책들 다 직접 썼다. (생생한 필체가 돋보이는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를 보면 1970년대 말 한 일간지에 칼럼도 연재했다.)”

 

부잣집 사모님, ‘욕 연기의 달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억척스러운 할머니 등 배역의 간극이 크다. 변신이 쉽지 않을 듯한데.

 

“간단하다. 인물 속으로 빠져들면 된다. 작가와 피디는 모종하는 이들이다. 열매를 맺는 건 배우의 몫이다.”

 

조폭 두목역도 많이 했다. 센 여자들이 대세다. 어쩌면 ‘걸크러시’의 원조인 듯하다.

 

“(박장대소하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 따라 하는 거다. 예전엔 오락프로그램에서 내숭 떠는 여배우도 많았다. 난 (수십 년 전에도) 안 그랬다. 나도 문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방송국 입장에서 보면. 상품이 포장만 좋으면 뭐하나. 매운 맛은 맵게, 단 것은 달게 팔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역할이든 오면 팔리도록 노력했다. 의상 협찬도 안 받는다. 그걸 받으면 찢어질까 조심스러워서 연기가 안 된다.”

‘일용엄니’ 반찬 여왕 되다

배우 김수미. 사진 강현욱 (스튜디오 어댑터)

‘일용엄니’ 반찬 여왕 되다

배우 김수미가 탄 각종 트러피. 사진 강현욱 (스튜디오 어댑터)

‘일용엄니’ 반찬 여왕 되다

배우 김수미가 쓴 책 등. 사진 강현욱 (스튜디오 어댑터)

인간 김수미는 당당한 사람

가난, 건강 악화, 사업 실패 등 고통이 많았다. 그래도 다시 일어섰고, 여전히 열정적으로 일하고 사람을 만났다.

 

“그건 아마 외로워서일 거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군산에서 농사짓던 아버지가 봄에, 어머니가 그해 가을에 세상을 등졌다.) 내 고통은 스스로 견뎌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거 같다. 나는 엄마이기도 했고. 여기서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방송국은 인기 없는 이와, 있는 이가 겪는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 점도 작용한 거 같다. 골 넣은 선수만 기억하지 않나. 요즘 월드컵 경기를 보면 ‘이게 인생사구나’ 한다.”

 

요즘 힘든 사람도, 마음이 아픈 사람도 많다.

 

“어차피 한 번뿐인 내 인생이다. 큰 부자는 이미 하늘이 내려준다. 그런 부자도 자식이 고생시킨다든지 한다. 인생에서 성공하면 좋겠지만 안 되면 어떠냐. ‘비참하게만 되지 말자’가 내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직이 중요하다. 내 좌우명은 ‘명예는 정직의 왕관’이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권력을 가졌어도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선거운동도 했다. 정치에도 관심이 있나?

 

“(1963년 문을 연) 쌍방울이 (1997년) 망하게 됐다. 한국 사람치고 쌍방울 내의 안 입는 사람 있었나. 전주 <문화방송>(MBC)에 출연해 살리기 운동에 참여했다. 망하게 된 데는 김영삼 정부에게 문제가 있다고 본 거다. 그래서 선거 운동했는데 정치엔 관심 없다. 정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정치판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거 같다.”

 

앞으로 계획은?

 

“일단 없다. 드라마든 영화든. 밥 가득 먹었는데 또 뭘 먹으려 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웃음)”

 

‘필’이 와야만 작품을 한다는 그는 <수미네 반찬>은 의외로 “필이 안 왔다”고 한다. “시청률이 3% 가까이 나왔다고 제작진이 기뻐하는데 나는 ‘이것도 시청률이냐’ 하고 답했다. 40%, 30% 시청률 겪은 나니까. 반찬 고민을 나도 하는데 그 해답을 (시청자에게) 주는 것 같아서 좋다.” 돈은 60살 넘어 써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그는 올해 일흔을 앞둔 예순아홉이다. 그는 친구가 소중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전 에세이 책에서 ‘친구는 사회생활의 스승이고 어머니와 같다’라고 했다. 그가 인터뷰에서 남긴 마지막 말은 “예스(YES)와 노(NO), 땡큐(THANK YOU)가 분명해야 해. 나와 친구가 되려면 돌려 말하는 거 안 된다. 난 ‘돌직구’다!”

반찬

밥과 함께 먹는 부식을 일컫는 말이다. 식단을 짜는 가사 노동자의 고민거리였던 반찬은 손이 많이 가고 낭비가 심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한식의 본령은 반찬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6일 방송을 시작한 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은 화려한 일품요리에 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반찬의 가치를 다시 보게 한다. 반찬을 만드는 배우 김수미의 손맛을 극찬하면서도 이를 엄마만의 일이나 재연 불가능한 영역에 두지 않고 눈대중, 손대중을 계량화해 전수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녹취 정리 정민석 대학생 인턴기자